'개미박사' 최재천 교수 "여왕개미가 새 시대 리더의 표상"

2017. 12. 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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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박사' 최재천 이대 석좌교수
국립생태원장 3년 경험 담은 경영서 출간
"생명사랑·비정규직 갑질에만 엄격
잘 노니까 직원들하고도 잘 풀리더라"

[한겨레]

사진 메디치

“제게 리더가 되라고 한다면 여왕개미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 규범 몇 가지 정하고 나대지 않고 뒤로 숨는 여왕개미가 새 시대 리더의 표상이 돼야 한다.”

‘개미 박사’로 잘 알려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지낸 4년여 기간 발견한 경영 십계명을 담은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를 출간했다. 대학에서 일할 때도 그 흔한 보직 한 번 안 맡아본 교수가 갑자기 국립생태원이란 큰 기관의 책임자로 가게 돼 마음의 부담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생태학연구소를 지어달라고 환경부 장관에게 요청하고, 국립생태원의 밑그림을 그린 그가 정작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직을 회피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의 원장 생활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2013년 10월 초대 원장에 취임한 뒤 2016년 12월 퇴임할 때까지 매년 관람객 100만명을 유치했다. 환경부가 요구한 연간 최소 30만 관람객의 3배가 넘는 성공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무릎을 꿇고 키 작은 아이와 눈을 맞추며 시상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퇴임하면서 원내 게시판에 올린 ‘다섯 가지 경영원칙’도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① 절대로 군림하지 않는다
② 내가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려 했다
③ 절대로 뒤로 숨지 않는다
④ 전체와 부분을 모두 살핀다
⑤ 결정은 신중하게 내리되 결코 오래 끌지 않는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13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책은 안 쓰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제 팔을 비틀다 못해 팔을 꺾는 수준으로 괴롭혀서 쓰게 됐다”고 운을 뗐다. 그는 “기업인은 예외로 하고, 예산을 받아서 운영하는 공공기관 기관장이나 대학 총장처럼 망하려고 해도 망할 수가 없는 일인데도 자기 것 챙기느라 망가뜨린 분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라도 써야겠다는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탈권위적인 모습으로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바비큐 파티를 열어 직원들과 “교수 때는 아내가 지방대학교에서 일하고, 중고생인 아이가 집에 있어서 항상 저녁 6시면 퇴근하고 집에 갔다. 아이 재우고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매일 4시간 동안 논문 읽고, 책 쓰고 온전한 제시간을 가지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회식을 습관적으로 하는 ‘밤무대 남성’들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폄하하고는 했다. 그런데 원장이 돼서는 충남 서천 관사에 혼자 살며 거의 매일 회식하고 볼링치고 당구치고 내가 ‘밤무대의 황태자’로 살았다. 잘 노니까 직원들하고도 잘 풀리더라.”

하지만 중요한 원칙은 강조했다. 최 원장이 직원들에게 겁을 준 일이 딱 두 번 있었다고 한다. 생명 사랑과 비정규직 갑질 문제였다. “경비원이든 환경미화원이든 생태원에 일하시는 분이 이상한 거 잡아드시고, 아무거나 막 죽이는 게 내 눈에 걸리면 해고하고 나도 사표 쓸 거라고 했다. 두 번째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대하는 태도가 말이 안 되게 하면 해고할 거라고 했다. 원장인 나부터가 비정규 임시직이지 않나. 먼저 자리 차지한 정규직들은 무섭더라. 나이가 10살 많은 사람한테도 비정규직이면 갑질을 하고 무례하게 대했다.”

3년간의 원장 생활 동안 근무평가 제도를 바꾸지 못한 점이 제일 아쉬웠다고 한다. “이놈의 평가제도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되더라. 남을 도와주면 나만 망하니까, 협업이라는 것 자체가 현재 근무평가제도에선 불가능하더라. 오지랖 넓은 놈, 자기 것도 다 못 챙기면서 남 도와주는 정신 나간 놈이 평가를 잘 받도록 해야 좋은 조직이 될 수 있는데…”

원장으로 일하면서 감시와 음해도 수없이 겪기도 했다. 최 교수 때문에 원장이 되지 못한 이들의 제자였던 직원 등이 정부, 국회 등에 투서를 수없이 넣었다. 운전기사와 수행비서가 경영본부 쪽에 최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데 시달리다가 사람을 다시 뽑기도 했다. “6개월을 하고 나니 북한의 김정은이 부럽더라. 투서를 뿌리는 어떤 직원은 공개처형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냥 안고 갔다.”

임원들도 좀처럼 원장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사권은 원장에게 있었음에도 본부장들이 이미 인사안을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정관에도 없는 본부장 회의를 열어 자기들끼리 사안을 결정하고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사실 이건 환경부 잘못도 있다. 원장을 다른 임원(본부장)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임명장을 주고, 원장이 제청하는 형태로 다른 임원들을 임명해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고 원장하고 임원 다섯명이 같은 날 한 줄로 서서 임명장을 받으니, 다른 임원들이 원장을 선임 임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기관장을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엔 이렇게 대답했다. “보수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이지만, 제가 진보 성향에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까 국정감사에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 정의당 국회의원들도 별로 공격을 안 하셔서 비교적 편안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거다. 우리는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다. 침팬지만이 아니라 쥐도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공감 따위 짓’은 일찌감치 접고 입시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슬픈 현실이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은 공감능력이 무뎌진 대표적인 분 중 한 분이 아니었나 싶다. 7시간 동안 국민 대부분은 내일처럼 발을 동동거렸는데, 멀쩡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는 거 자체가 비인간적이고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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