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사면 돈번다고?"..가상화폐 차익거래 주의보

전준범 기자 2017. 12. 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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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전세환(32)씨는 얼마 전 가상화폐 차익거래(arbitrage)에 관심이 생겼다. 같은 가상화폐라도 외국과 한국의 시세가 다르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후였다. 특히 미국에서 사는 비트코인 가격이 한국보다 23% 싸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이달 7일(현지시간) 기사가 그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블룸버그 제공

전씨는 “현재 가격 차이가 좁혀지긴 했으나 국내 거래량이 많은 만큼 한국 시세가 다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격차가 다시 벌어질 때 차익거래에 나서면 나도 인터넷상의 고수들처럼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감을 가진 사람은 전씨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이 글로벌 평균보다 높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해외 거래소와 국내 거래소간 차익거래에 관심을 갖는 이가 늘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선 이런 투자 방식을 ‘재정거래’라고도 부른다. 반면 금융당국은 가상화폐가 무분별한 투기를 부추긴다며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쉬운듯 쉽지 않은 차익거래

이론적으로는 국내외 거래소간 가상화폐 차익거래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시세가 저렴한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산 뒤 비싼 거래소로 옮겨 현금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걸림돌이 제법 많다. 우선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할 순 있지만, 현지 은행을 통해 가상화폐 관련 계좌를 개설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방법이 외국에 사는 지인에게 현금을 보내 가상화폐를 사도록 부탁한 다음 이를 다시 국내 거래소로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다.

친구 한 명 잘 사귀면 해결될 문제 같지만 이 대안의 걸림돌은 해외송금 한도다. 현행법상 개인이 송금 목적에 대한 소명없이 해외로 보낼 수 있는 금액은 연간 5만달러(약 5500만원)다. 5만달러 이상이면 송금 사유를 밝혀야 하는데 어느 시중은행도 ‘가상화폐 구매’를 정당한 목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조선일보DB

물론 5만달러 미만을 송금해 투자하면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대꾸하면 딱히 더 할 말은 없지만, 차익을 노리고 해외송금까지 하는 투자자 가운데 ‘연간’ 5만달러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기대수익 규모에 만족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럴 바엔 국내 거래소에서 저가매수·고가매도 전략을 취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툭하면 널뛰기를 거듭하는 가상화폐 시세도 차익거래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이달 8일 오전 10시까지만 해도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2481만6000원에 거래됐다. 같은 시각 글로벌 시세는 1996만2444원이었다. 약 24%나 가격 차이가 난 것이다.

그러나 5일 후인 12월 13일 오전 8시 기준으로 보면 한국 시세는 1920만9000원, 글로벌 시세는 1923만557원으로 역전됐다. 해외송금은 현지 은행의 수취인 확인 절차 등에 따라 1~2일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에 얼마든지 가상화폐의 국내외 시세가 뒤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소액 해외송금 전문업체를 통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업체가 개점휴업 상태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상화폐 차익거래를 통해 ‘의미있는’ 수준의 수익을 얻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투기 광풍 안돼”…가상화폐 옥죄는 정부

한편 정부는 투기 조장, 국부 유출 등의 부작용을 염려해 가상화폐 규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때문에 투기 과열, 범죄 증가 등 국민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규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비트코인 열풍을 방치하면 심각한 왜곡·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비트코인 시세(빨간색)와 글로벌 시세(파란색) 움직임 / 빗썸 제공

정부는 이달 15일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규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투자 실명제, 자금세탁 방지 등의 수행능력을 갖춘 거래소에 한해 예외적으로 영업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은행권도 이같은 정부 움직임에 보폭을 맞출 조짐을 보이고 있어 가상화폐 차익거래는 앞으로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KDB산업은행은 내년부터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에 필요한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IBK기업은행(기업은행(024110))도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중단할 계획이다. 지난 9월부터 신규 발급을 중단한 우리은행(000030)도 기존 가상계좌를 연내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도이치뱅크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트코인은 불과 1시간 사이에도 1000달러 이상의 급등락을 반복한다”며 “지금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내년에는 비트코인 변동성으로 촉발된 금융시스템 문제가 실물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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