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에 버림받은 보수.."역린을 건드렸다"

안재용 기자 2017. 12. 1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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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보수의 몰락-②버림받은 보수(下) 보수정권의 파트너 '관료', 최순실 게이트에 '배신감'.. '합리성' 의심
/자료=한국갤럽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패한다. 16개 광역단체장중 민주당이 7석, 한나라당이 6석을 챙겼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오세훈), 경기지사(김문수)를 간신히 이긴 덕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기초단체장 숫자는 민주당 92석, 한나라당 82석이었다.

이명박 정부 중반이어서 중간 평가 성격이 짙었다. 선거전 여론은 예측불가였지만 관료사회 흐름은 달랐다. 보수 성향의 관료집단 내 ‘반MB’ 기류가 강했다. “경고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주된 이유로 MB정부의 ‘공적 마인드 결여’를 꼽았다. 기업을 대하듯 국정을 운영하는 ‘보수 아마추어’에 대한 반대였다.

이들중 대다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 보수의 가치 속 국가에 대한 애정, 국정 운영 경험 등에 대한 믿음이 컸다.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수 정권-관료의 파트너십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착각이었다. 장관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르는 허수아비였고, 국가 운영의 중요사항이 비선실세라고 불리는 비제도권 인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됐음이 드러났다. 관료들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셈이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13년 9월 취임 7개월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며 "복지부 장관으로서 한계와 무력감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공약 수정과정의 어려움은 표면적 이유다. 진 전 장관은 대통령과 독대조차 하지 못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퇴임 당시 "솔직히 이 자리는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고 자조했다. 부처의 수장인 장관이 아무런 자율권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소신을 지킨 관료들은 '나쁜 사람'이 됐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체육국장 재직 당시 대한승마협회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가 강제 퇴직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 등 많은 공무원들이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보수 정권 9년의 민낯을 지켜본 관료들의 실망감은 커져갔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는 엘리트의 ‘역린’을 건드렸다.
지난해 10월24일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료들의 분노는 정점을 찍었다. 그들에게 대통령 연설문 수정은 보수정권에 등을 돌리게 된 '역린'이었다. "정책에 대해 전혀 모르는 강남 아줌마에 휘둘렸다"는 자조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 금융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연설문에서 '동으로 간다'고 하면 나라가 동으로 가고 '서로 간다'하면 반대로 간다"며 "공무원들이 전 정권에 가장 실망한 부분"이라고 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 당시 "해경을 해체한다"고 돌발발언을 내놓자 정부는 해경을 없애고 국민안전처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편입했다.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일로, 대통령 발언 한 마디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다른 관계자도 "연설문에서 단어 하나가 바뀔 때마다 행정부 정책이 바뀐다"며 "대통령 연설문에 우리 정책 한 줄을 넣기 위해 공무원들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을 준비하는데 정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의해 수정됐다"고 분개했다.

엘리트 관료들이 보수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형성 과정과 맞물린다. 대한민국에서 엘리트 집단은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입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후에도 사법고시, 행정고시, 박사 학위 등을 넘어 엘리트가 된다.

한국의 보수가 냉전 반공주의와 자유시장주의의 느슨한 결합이라고 할 때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보수'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현대 대한민국을 뒷받침하는 사상인 법학과 경제학, 행정학 등을 토시 하나까지 암기하고 논리를 뼛속까지 체화해야 겨우 합격의 문턱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고는 보수적이지만 체계적이고 꼼꼼한 논리로 무장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산층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다.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중산층 이상을 소득을 버는 전문직'이 바로 그들이다. 헌데 이들의 합리성이 보수정권의 ‘권위주의’ ‘공적 마인드 결여’ ‘권력의 사유화’ 등과 부딪치는 경험을 했다는 분석이다. 권순정 리얼미터 실장은 "수구적인 보수는 한국당에 계속 머물러 있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합리적인 보수는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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