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반칙이 통했습니다, 수시의 눈물

이도경 기자 입력 2017. 12.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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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 ‘불신의 그늘’

2010년 인천서 학생부 조작 이후
교육당국 대책 비웃듯 매년 발생
사립 교사가 딸 학생부 고치기도
정성평가 특성상 적발도 어려워

교육부 설익은 개편안 내놓으면
불안한 학부모는 사교육에 의존
문재인정부도 역대급 개편 예고
이번엔 악순환의 고리 끊어질까

유명 대학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자신의 논문 공저자로 끼워넣어 온 행태(국민일보 12월 8일자 1면 등 참조)에 독자들은 반칙으로 학력 대물림을 시도한 사례들을 연상했다. 교육부는 이런 의심스러운 사례가 나올 때마다 땜질식 처방으로 불신을 키워 왔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금수저 전형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부가 이번 논문 공저자 끼워넣기에 대해서는 발 빠르게 전수조사에 착수하고 제도 개선을 예고했지만 대입 결과와의 연관성 등까지 속 시원하게 밝혀낼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대입의 공정성을 흔드는 반칙은 근절될까.

반칙의 역사

현행 대입 전형은 학교생활기록부 위주의 수시모집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정시모집으로 나뉜다. 수시 비중이 최근 급격히 상승하면서 학생부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추세다. 따라서 반칙은 주로 학생부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그래픽 참조>. 2010년 인천의 한 특수목적고가 학생부를 조직적으로 조작했다 적발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이런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부유층 학부모로부터 청탁을 받아서, 때로는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학생부에 무단으로 손을 댔다. 담임교사, 과목교사, 학교 관리자 등 조작은 전방위로 이뤄졌다. 교육 당국은 인천 사건을 계기로 학생부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광주광역시의 한 여고에서 또다시 대규모 학생부 조작 사건이 터졌다.

경기도의 한 사립고에서는 최근 딸의 학생부를 대입에 유리하게 무단으로 고쳐 쓴 교사가 적발됐다. 해당 교사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논란이 커졌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인 ‘교원 부모 및 교원 자녀 동일 학교 근무 및 재학 현황’을 보면 부모인 교사가 자녀인 재학생과 함께 있는 고교는 전국 560개교로 집계됐다. 전체 고교의 24%에 해당한다. 이런 학생의 학생부는 부모의 직장 동료가 작성자인 셈이다.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있었고 앞으로도 터질 수 있다는 게 학종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이고 설득력을 얻어가는 상황이다.

이런 반칙이 완전히 근절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학생부를 대놓고 조작한 경우라면 적발과 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인맥을 통해 은밀히 이뤄지는 경우 금품이 오가지 않아 물증을 찾기 어렵고, 무엇보다 대입과의 연관성을 캐내기 어렵다. 평가자의 주관적 평가를 점수화하는 정성평가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사교육 기관은 끊임없이 부유층을 위한 새로운 대입 스펙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천외한 대입 스펙들이 유행하면서 부유층들은 이를 이용하고 교육부는 금지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사교육 업체들은 학생을 작은 회사 CEO로 포장해주기도 하고 특허를 출원한 유망한 발명가로도, 백일장에 입상한 소년 문장가로도 만들어줬다. 요즘 사교육 기관이 주목하는 스펙 중 하나는 무크(온라인 대중 공개수업)다. 정부도 국내 주요 대학들과 손잡고 케이-무크란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이미 중·고교생 회원이 3만명이 넘은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입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거액을 내고 급하게 대입 스펙을 만들면 요즘엔 통하지 않는다. 고1부터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25만∼30만원을 매달 내고 케이-무크를 포함해 소논문 작성까지 대입 스펙을 일괄 관리해준다”고 설명했다. 한때 소논문 활동은 일부 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의 전유물이었는데 최근에는 일반고까지 널리 퍼져 있다. 케이-무크도 이런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교육 업체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역대급 개편→사교육 기승 악순환

반칙이 횡행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건 다름 아닌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다.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략 이렇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 학교는 준비가 안 됐는데 덜컥 대입 제도를 손본다. 대입에서 불확실성이 증가해 학부모와 학생은 불안해지고 사교육 기관을 찾게 된다.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학부모와 학생의 고통이 가중되면 정치권은 이를 해결한다며 설익은 개편안을 또 내놓는다. 이런 ‘되먹임’ 구조가 끝없이 반복되는 상황이 고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생부 조작이나 논문 공저자 끼워넣기 같은 반칙도 이런 토대에서 가능해진다. 교육 당국은 지속적으로 수능의 대입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부 위주 전형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책을 펴 왔다. 학생부 위주 전형 비중 증가의 명분은 고교교육 정상화였다. 문제는 속도다. 수시 비중은 2009학년도 56.7%에서 2018학년도에 73.7%로 급증했다. 반면 정시는 43.3%에서 26.3%로 10년 새 반토막 났다. 선호도 높은 대학일수록 수시 비중이 높은 경향을 나타내는데 서울의 10개 주요 대학을 보면 2016학년도 수시 비중이 67.9%에서 2018학년도 74%로 껑충 뛰었다.

학교 현장은 물론 대학도 이런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학종을 실시하는 주요 60개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1명당 많게는 260명에 이르는 지원자 서류를 심사하기도 했다. 날림 심사가 진행되므로 꼼수와 반칙이 횡행하게 된다. 학생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는 점차 줄고 교사와 학부모 역량이 대입을 좌우하고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도 커졌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정착한 미국의 경우 입학사정관들이 운동선수 스카우트하듯 고교 교사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한 상태에서 수시로 학생의 인성과 발전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한국의 학종은 고교와 대학의 신뢰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도 학생도 교사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 급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도 ‘역대급’ 개편안을 예고한 상태다. 수능과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큰 폭의 변화여서 학교 현장 등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편안은 내년 6월쯤 윤곽을 드러내고 8월쯤 확정 발표될 예정이다. 대입제도 개편의 첫 실험 대상인 현재 중학교 2학년은 혼란에 빠져 있다. 나아가 문재인정부는 고교를 대학처럼 운영하는 고교학점제도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런 정책들이 교육계와 충분히 숙의되지 않은 채 몰아치듯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과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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