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가다]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인터뷰.."당장 천둥칠 가능성은 낮지만 이미 무색무취의 가스가 가득 차 있다"

예루살렘|심진용 기자 2017. 12. 1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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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 정도 구름이 모였다고 소나기가 오고 천둥이 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하지만 예루살렘과 중동 지역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무색무취의 가스가 가득 차있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야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를 11일(현지시간)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만났다. 중동전문가인 인 교수는 지난 9월부터 히브리대 트루먼연구소 방문학자로 이스라엘에 머물고 있다. 인 교수에게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의 배경과 이후의 파장과 전망을 물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11일(현지시간) 예루살렘 히브리대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심진용 기자

-트럼프 선언의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국내 문제가 컸다고 본다. 러시아 스캔들 사태가 이어지고 있고, 지지율도 워낙 낮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다는 건 자기 공약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전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했을 거다. 결국 선언도 국내 유권자들, 유대계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본다.”

-아랍의 분열을 틈 탄 전략적인 한 수라는 평가도 나오는데.

“그렇게까지 고려한 것 같지는 않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선언을 두고 잡음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선언으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이스라엘의 650만 유대인들을 즐겁게 하는 대신 14억 무슬림들을 등돌리게 하는 선택이다. 전략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적을 최소화하는 레토릭을 찾는다. 트럼프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어떤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개인으로선 좋을 수도 있다. 부패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데 일거에 이슈를 전환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국민들 그리고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유럽의 소수 유대인 공동체나 유대교 회당이 앞으로 조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을 겨냥한 테러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것도 가능한 일이다.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반유대주의다. 유럽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심하게 겪어왔나. 그 반유대주의가 또다른 형태로 촉발될 수도 있다. 유대인들이 마냥 기뻐하고만 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관리를 해야할 것이다.”

(전날 스웨덴 예테보리에서는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유대교 회당 정원으로 화염병을 던져 3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랍 입장에서 이번 선언이 가장 곤혹스런 나라는 어디라고 보나.

“사우디와 요르단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특히 고민이 많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인가.

“사우디를 지탱하는 3개의 축이 있다. 첫째 ‘왕실의 결속’, 둘째 ‘오일머니’, 셋째 ‘이슬람’이다. 무함마드의 권력 승계 문제로 왕실은 혼란스럽고, 오일머니는 이미 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선언은 개혁을 말하는 무함마드가 마주한 첫번째 도전이다.”

-사우디 내부의 반발이 문제라는 건가.

“트럼프와 손잡고, 이스라엘에 접근하더니 결국 이런 상황이 됐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트럼프를 향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무함마드의 입장은 어떤가

“미국의 도움 없이 국가 안보가 유지된다는 확신이 없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의 권력 승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무함마드도 트럼프의 성정을 알고 있다. 미국과 선을 긋는다거나 거세게 항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무함마드가 미국 편을 든다거나 이슬람을 저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비친다면 성직자들이 이제는 못견디겠다고 들고 일어설 수 있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요르단은 어떤가.

“똑같은 딜레마다. 국가 수입의 상당수가 서방 원조로 나온다. 그래서 요르단은 전통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온건한 외교를 펼쳐 왔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요르단에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요르단 하심 왕가야 말로 원래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가 아니었나. 그 2개 성지를 사우디가 가져갔고, 결국 마지막 남은 성지 예루살렘 알아크사를 관리하는 것으로 이슬람 정체성을 지켜왔다. 사실 트럼프 선언에 제일 먼저 소리치고 나서야 할 나라가 요르단이다. 하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힘 또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장 공세적으로 나올 곳은 어디인가.

“이란과 터키는 이 상황을 정치적 도구화할 수 있다고 내심 생각할 것이다.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내부의 목소리들을 바깥으로 돌리는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란은 뒤에서 원론적인 메시지만 던지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시리아 내전 이후 미국은 물론 아랍과 이스라엘 모두의 적이었던 이란이 지금 상황에서 열을 낼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내부를 추스릴 여유를 가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트럼프의 선언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여지는 있나.

“초강대국 미국이 선언 차원이지만 이스라엘 지지를 확실히 했다. 지금이야 전세계가 미국을 비판하고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 미국의 뒤를 따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그런 나라들을 상대로 하나씩 이삭줍기식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얻을 것은 있어도 국민 안전 차원에서 얻는 것은 없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트럼프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을 환영했다. 지난 10일에는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유럽연합(EU)을 ‘겁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1일 제만 등 유럽의 반이슬람 정치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이나 외신에서 3차 인티파다 같은 엄청난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나도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8일 다마스커스 게이트 현장에서 상황을 봤는데 아무리 봐도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CNN을 보면 당장 아마겟돈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CNN이나 알자지라 보도는 배경을 좀 감안할 필요도있다. CNN은 트럼프,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을 워낙 싫어하니까.”

-당장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건가.

“이건 깔아둬야 한다. 2010년 12월17일 튀니지 작은 마을 시드부지드에서 26세 노점상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했을 때, 그 누구도 그 사건이 ‘아랍의 봄’으로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카이로도 테헤란도 트리폴리도 아닌 튀니지 작은 마을에서 채소 행상하던 이가 좌판 뺏겨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튀니지는 물론이고 리비아, 이집트, 예멘이 뒤집어졌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치달았다.”

-어떤 우연한 일로 사태가 갑자기 악화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중동과 예루살렘은 이미 무색무취의 가스가 차 있는 상황이란 걸 감안해야 한다. 지금 평온해 보여도 평온한 게 아니다. 인화물질이 가득차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물론 당장 인티파다가 벌어질 것이라는 식으로 단언하는 건 위험하다.”

-트럼프의 선언이 일종의‘충격요법’으로 지금까지의 교착 상황을 흔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동의한다. 그동안 ‘2국가 해법’이 중동 평화를 위한 핵심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2국가 해법이 빈사 상태라면 일단 전기충격기 돌려서 심폐소생술이라도 해봐야지, 왜 다 팔짱끼고 있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2국가 해법이 정말 죽어버리든, 아니면 혹시라도 다시 살아나든 우리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번 선언은 너무 센 방법이기는 하다. 한편을 완전 적으로 돌려버리는 거니까.”

-그렇다면 트럼프가 다른 대안까지 말할 수 있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트럼프도 대안은 없다. 이번에도 수도 선언만 했을 뿐, 영토 문제는 당사자끼리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입장에서야 국내정치가 우선 목적이었으니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패키지를 내놓은 건 아니다. 트럼프가 교착 상황을 흔든 것은 맞지만, 이후를 끌고 나갈 힘은 없다. 불편부당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완전 포기한 결과가 됐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11일(현지시간) 예루살렘 히브리대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심진용 기자

-지금 상황에서 국제사회와 한국은 어떻게 해야하나.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1967년 이전 상황을 전제로 새로운 협상을 하는 것. 이제까지 국제사회가 계속 얘기해왔던 게 결국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학자 입장에서야 2국가 해법이 가능성이 낮고 다른 여러 가능성을 폭넓게 상상할 수 있지만 현실정치는 다르다. 2국가 해법 외에 아직 다른 대안이 없다. 당사자들이 정말 다른 대안을 찾고 합의하기 전까지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범인 2국가 해법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한국 역시 이에 동참하는 것이 맞다.”

-1967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게 참 어려운 문제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양쪽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줄 수 있는게 있을까.

“사실 협상의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가 협상 당사자가 없다는 거다. 이스라엘 정권이 계속 바뀌니까 일관된 입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슬로 협정 때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 있었고 모두가 이제는 평화 기조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5년 라빈 암살 이후 후계자는 당연히 페레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네타냐후가 정권을 잡았고 그전까지의 기조가 다 엎어졌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다.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주요 7개 부족 입장이 다 다르다. 핍박받는 하나의 공동체로 보이지만 실상 내부 알력이 심하다. 하나의 입장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번 선언처럼 트럼프의 종잡을 수 없는 성향은 큰 리스크다.

“대비가 필요하고, 그걸 위한 단서들도 있다. 수도 인정과 대사관 이전은 트럼프 공약에 있었다. 1주일 전부터 발표하겠다 얘기도 해왔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단서들을 다 뽑아서 준비를 해야한다는 거다. 그간 트럼프가 해왔던 발언들을 다 뒤집어보고, 지금 그의 생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트럼프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취할 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트럼프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거다. 그런 면에서 지난 2차례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잘 하신 것 같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데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았다. 트럼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친밀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트럼프와 골프 치다가 혼자 넘어진 걸 보고 많이들 비웃지 않았나. 그게 다 아베의 자산이 된다. 트럼프가 나중에 백악관에서 그 영상을 안봤을까? 그걸 보고 나쁘게 생각했을까? 외교에서 80%가 각료들간 공식 회담이나 절차로 이뤄진다고 한다면, 숨은 20%는 정말 머리를 잘 써가면서 해야한다. 지나치게 숙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더라도 할 수 있는 것 다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연설에서 장진호 전투를 꺼낸 게 좋은 예다. 미국은 전쟁의 역사를 철저하게 기억하는 나라다. 그런 걸 통해 현안을 넘어서는 뭔가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예루살렘|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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