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이 일해도 월급 100만원, 우린 막내입니다

박정훈 2017. 12. 1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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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 방송작가 관련 설문조사 결과 발표.. "지나치게 낮은 급여 등 개선 필요"

[오마이뉴스 글:박정훈, 편집:김시연]

 <직장갑질 119는> "‘막내’라는 호칭 안에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연차가 낮은 작가라는 의미 외에도 업무 외적인측면에서 위계질서를 구분하고 그 질서 상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로 규정짓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밝혔다.
ⓒ pixabay
"방송계엔 '일은 막내가 다 한다'는 인식이 있고, 실제로 취재하고 섭외하고 스케줄 정리하는 그 모두가 막내 몫이다. 막내 작가 시절엔 하루만이라도 내 온전한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으로 친다면 100중 메인작가가 80, 막내 작가가 20을 가져간다. 당시 작가가 아니라 그저 막내로 여겨졌다. 아무도 막내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다."
- 김서란 전 작가

"막내 작가들이 보통 방송 출연자 섭외를 가장 먼저 한다. 외국 영화계에선 이런 걸 '캐스팅디렉터'라고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저 막내라고 부를 뿐이다. 사람을 섭외하는 일도 전문성이 있는 일인데, 막내라는 말은 그저 '더 배워야 할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방송작가유니온 사무처장 이향림 작가

프로그램 대본을 직접 쓰는 '입봉'을 하기 전의 방송작가들은 대체로 막내 작가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들은 막내라는 호칭에 대체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동 환경에 대한 불만도 컸다.

12일 <직장갑질119>와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숲은 지난달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방송작가 273명을 상대로 호칭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3%(196명)가 입봉 전까지 막내 작가로 불렸다고 발표했다.

조사에 참여한 작가의 72.8%(203명)는 막내 작가라는 호칭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고, '고민해 본 적 없다'는 응답은 20.8%(58명), 적절한 호칭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6.6%(18명)였다. 응답자 중에는 "ㅇㅇ(이름)야" "아가야" 등의 호칭을 들었다는 경우도 있었다.

막내 작가라는 호칭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로는 '업무 등 외부 일을 쉽게 시키는 존재처럼 각인된다는 것'이라는 응답이 67.7%(189명)로 가장 많았다. '작가 뿐 아니라 팀 전체의 막내로 취급받는 것 같다'는 의견은 54.1%(151명), '보조 취급을 받는 것 같다'는 의견도 37.2%(104명)로 그 뒤를 이었다.(복수 응답)

'어떠한 호칭이 가장 적합하냐'는 질문에는 43%(121명)가 어떠한 직급도 붙이지 않은 '작가'라는 호칭이 적합하다고 답했다. 그 뒤로는 '보조작가'가 14%(43명), '취재작가' 12%(35명) 순이었다.

막내 작가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묻자, 이들은 '지나치게 낮은 급여', '보장되지 않는 출퇴근 시간', '과도한 업무량의 적절한 분업화', '과도한 서열 문화' 등을 지적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100만 원 이하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최소 생계비는 가능한 급여가 지급되어야 한다. 밤낮없이 일하는 데 세금 빼면 100만 원도 안 된다",  "퇴근 후에도 전화기가 울린다. 막내의 사생활은 어디를 가도 보장되지 않는다" 등의 의견을 전했다.

설문에 응한 작가 가운데 5년 차 입봉 작가인데도 아직 막내 작가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팀 작가들이 연차와 연령이 높아서 막내가 됐다. 그런데 3년 차가 된 팀 조연출보다 인정을 못 받는 분위기다. 조연출을 작가보다 우대하는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섭외, 출연자 관리, 자료조사, 회의 준비 등 연출팀과 분담해야 할 일도 막내 작가 혹은 서브 작가가 책임지는 것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방송작가를 그만둔 뒤 책 <막내의 인생>을 쓴 김서란 전 작가는 "막내가 아니라 적어도 취재작가라고는 불러줬으면 좋겠다. 작가라고 부르긴 부르는데, 정작 프로그램에서는 '자료조사 - 김서란' 이런 식으로 이름이 나오더라. 어머니가 첫 방송 보고 '너 작가한다더니 자료조사 하러 갔니'라고 물어보시더라"라고 말했다.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숲을 운영하는 10년차 방송작가 서명숙씨는 "방송작가는 막내-서브-메인으로 이어지는 승급체계를 갖추고 있고, 막내작가의 일은 노동이 아니라 수련이라는 인식이 있다"면서 "막내작가라는 호칭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방송제작현장에서 막내라는 호칭을 고치는 것은 신입작가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오래된 도제시스템의 관행을 허무는 출발점"이라면서 "앞으로 막내작가의 이름을 찾아주는 추가적인 캠페인을 직장갑질119와 함께 실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작가유니온 사무처장을 맡은 이향림 작가는 "그림이 있다면 스케치는 막내들이 다 한다. 그런데 지금은 색칠하는 것만 그림 그리는 걸로 치는 듯하다. 막내 작가는 그저 서브와 메인으로 가는 한 단계로 여겨질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막내라는 호칭을 당장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안에 있는 내용을 바꾸는 것"이라며 방송작가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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