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봉10% 내라고?" 교직원에 기부금 쥐어짜는 지방大

김희래 2017. 12. 12. 1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수부터 행정직원까지 발전기금 명목 사실상 강제할당 "인사불이익 우려 월20만원 내"
교육부 대학평가 가점 받으려 사립대 기부금 '꼼수 모금'

재정난 허덕이는 지방사립대 편법모금 논란

"이달 말까지 기부금을 내라고 학과장이 기부금 유치 약정서를 돌리고 있습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일부 지방 사립대들이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기부금을 사실상 강제 할당하고 모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려 학교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쥐어짜고 이를 이용해 정부의 대학평가에서도 유리한 점수를 받으려 꼼수를 쓰는 것이다.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사비를 털어 기부금을 내는 등 '울며 겨자 먹기'로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한 교원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강원도의 한 사립대에서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사실상 강제 기부금 모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일주일 안에 1년 연봉의 10% 규모 기부금을 유치하도록 학교 측에서 요구하고 있다는 것. 글쓴이는 "시일이 촉박해 사비로 충당해야 할 상황이지만 인사고과 등 불이익이 두려워 이의 제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교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강제 할당하고 모금하는 관행은 이 학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8년간 등록금 동결에 이어 2014년부터 대학 구조개혁이 진행되면서 지방대 정원이 대폭 줄어들자, 돈줄이 마른 다수의 지방 사립대가 재정 마련을 위해 교직원을 압박하고 있다. 기부금 할당 및 모금 대상에는 전임 교수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은 비전임 교수와 행정직원들까지 포함됐으며, 비전임 교수들은 재임용 탈락 등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기부금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

전남 조선대 관계자는 "우리 학교는 등록금이 10년간 동결됐다"며 "사정이 어렵다보니 학교 측에서 교내 행정직원들을 대상으로 2013년 2억원, 2014년 2억원, 2015년에는 5억원가량을 모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들로부터 받은 것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10억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며 "올해도 발전기금 명목의 모금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대구 계명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계명대 관계자는 "4년 전부터 매달 20만원씩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며 "형식적으로 강제성은 없다지만 윗선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참여하는 교직원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2013~2015년 3년간 전체 사립대 기부금 중 지방 사립대 기부금 비율은 각각 25.0%, 27.3%, 29.6%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 이에 대해 김귀옥 민교협 공동상임의장은 "재정난이 심각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이미 3~4년 전부터 만연해 있던 일"이라며 "대학들이 기부금 모금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부의 대학평가 항목 중 하나인 '법인전입금' '교육비 환원율'과도 연관이 있다"고 진단했다.

법인전입금은 대학 재단이 대학에 얼마나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했는지 평가하는 항목이다. 교육비 환원율은 대학이 등록금 수익 대비 장학금 등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줬는지 평가하는 항목이다. 다시 말해 기부금이 법인 발전기금으로 들어간 후 학교 운영비로 쓰이거나 장학금으로 쓰이면 대학평가 시 유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의장은 "위기에 처한 지방 대학들은 대학평가에서 조금이나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부금 모금에 교직원까지 동원하는 꼼수가 생겨난 것"이라며 "기부금을 쥐어짜기보다 대학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다양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재정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대학평가 주체인 교육부도 이 같은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에 나섰다. 교육부 대학평가 담당자는 "2018년 대학역량진단 시에는 법인전입금 항목과 관련해 문제점을 보완한 새로운 평가 방식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재단에서 학교로 얼마나 많은 돈이 투입됐는지만을 봤던 기존 방식에서 재단 재정 규모 대비 학교 투입금의 비율 형식으로 평가 방식을 변경할 방침이다. 이 경우 학교가 모금한 돈이 재단으로 들어간 뒤 다시 학교 재정에 쓰이더라도 대학평가에서 현재만큼 유리한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재단으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질수록 재단의 재정 규모가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법인전입금 외에도 대학들이 편법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는 방식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점검 및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희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