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이국종'이 만든 '벽을 넘어선 병원'

파리ㆍ이유경 통신원 입력 2017. 12. 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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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응급 의료지원 서비스 SAMU에 따라 환자가 발생한 현장에 의사가 직접 출동해 치료한다. 응급처치를 위해 에어프랑스 사 비행기와 TGV 기차, 선박도 지원받을 수 있다.

현대 프랑스의 응급의료 체계는 ‘SAMU (Service d’Aide Médicale Urgente:응급 의료지원 서비스·사뮈)’로 대표된다. 경찰·소방구급대와 구분되는 응급의료 시스템 SAMU는 ‘필요한 현장으로 병원을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SAMU는 의료 현장에서 탄생한 제도다. 마취과 담당의였던 루이 라렝 교수가 창시했다.

라렝 교수는 1955년부터 툴루즈 지방 응급의료팀에서 사고 현장을 직접 뛰어다녔다.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도 잦았다. 그는 교통사고 건수가 현저히 증가했는데도 오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만 응급 의료지원 서비스를 시행하던 현실을 비판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주창한 구호가 ‘벽을 넘어선 병원(l’hôpital hors les murs)’이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1968년 프랑스 정부가 도입한 통합 응급의료 관리 시스템이 SAMU다. 한국의 ‘119’처럼, 1978년 부여받은 공식 전화번호 ‘15’번으로 유명하다.

ⓒAP Photo 프랑스의 응급 의료지원 서비스SAMU는 ‘필요한 현장으로 병원을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총격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SAMU가 출동한 모습.

SAMU는 프랑스 전 지역에 센터 100여 곳과 SMUR(Services Mobiles d’Urgence et de Réanimation:긴급소생 운송서비스) 350여 개를 운영 중이다. SAMU 센터들은 프랑스 내 공립병원에 설치되어 있다. 각 센터의 임무는 15번으로 접수된 응급 상황에 답하고 적절한 의료·구급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사를 상시 대기시켜 24시간 전화에 응답하며, 빠른 시간 내에 환자의 상태에 적합한 답변을 해야 한다. 구급차 도착 이후에는 필요한 의료·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병원의 공석 상태를 알아본다. 최종적으로 환자가 병원 수속을 진행하는 것까지 확인하는 게 SAMU 센터의 몫이다. 한편 SMUR은 SAMU에 속해 UMH(의료운송단위), UTIM(집중치료 운송단위) 등을 운영한다. SMUR이 소유한 구급차는 두 종류로 나뉜다. 제1구급차는 외부에서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고, 제2구급차는 병원에서 다른 병원이나 요양기관으로 환자를 옮긴다. 이들은 SAMU의 요청에 따라 출동한다.

필요에 따라 SAMU는 소방구조대와 경찰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파리에서는 에어프랑스 사 비행기와 TGV 기차를 지원받는다. 가론 강이 흐르는 프랑스 남부 툴루즈 지방에서는 선박도 요청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파리 소방구조대(BSPP)는 고유의 응급의료 시스템을 갖추어 SAMU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BSPP와 남부 마르세유 지방의 해양소방대(BMPM)는 출동 시 군의관을 함께 파견한다. 본래 구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소방대원들의 응급치료를 담당했던 군의관이 구조 대상인 시민에게까지 의료 영역을 넓힌 것이다.

ⓒWikipedia 루이 라렝 교수(위)는 ‘벽을 넘어선 병원’을 주장하며 프랑스 전 지역에 SAMU를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SAMU는 응급 현장과 병원 잇는 컨트롤타워

응급처치 부족으로 사망하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 최근에는 체외순환기계(CEC)도 병원 밖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장비는 기계가 직접 펌프질을 해 심정지 환자의 몸에 피를 주입하는 장비로, 종전에는 병원 안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는 2011년부터 20㎏ 가까이 되는 이 기계를 응급의료에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병원 밖에서도 심정지 환자의 응급처치가 가능해졌다. 실제 파리에서는 심정지 환자 28%가 이 장비의 혜택을 받았다. 긍정적 효과가 검증되자 프랑스 리옹을 거쳐 벨기에, 영국, 스페인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파리 SAMU의 의사 대표 피에르 카를리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응급의료 시스템이 발전했어도 병원까지 빠르게 수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체외순환기계의 목적은 현장에서 직접 심정지 환자를 숨 쉬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SAMU 체계의 구체적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도움이 필요한 시민이 ‘15번’으로 전화를 하면, 응급의료 상담원(ARM)이 요청 사항을 확인하는 한편 전화 내용을 녹취한다. 간단한 질문으로 사태를 파악한 뒤 응급 정도가 경미하면 일반의에게 연결해 의료 조언을 해준다. 상황이 심각하다면 통제담당의(MR)에게 연결해준다. 통제담당의는 기본적인 의료 서류를 작성하고 구급차 출동 여부를 결정한다.

구급차가 출동할 때는 의사 1명, 마취 전문 간호사 1명, 구급차 운전사 1명이 팀으로 움직인다. 파견된 의사는 구급차에 설비된 의료기기와 약으로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한 뒤 심장기능·호흡·부상 정도를 파악한다. SAMU 센터는 응급 현장과 병원을 잇는 컨트롤타워가 된다. 센터는 현장에서 받은 환자의 자료를 기반으로 적절한 병원을 물색해 각 병원의 응급실 수용 상황을 확인하고 수술과 입원 준비를 요청한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전문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기도 한다. 파리에 있는 네케르 병원과 오텔디외 병원이 대표적이다. 전문 의료진으로 이름 높은 두 병원은 각각 소아과와 안과 전문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SAMU는 응급의료 상담원(ARM), 통제담당의(MR), 일반의 등으로 구성된다. 전문 상담원인 ARM은 빠른 판단과 정확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까다롭게 선발한다. ARM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공인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선임 상담원과 짝을 지어 직무를 배우게 된다. 이 인턴 과정에서 지원자는, 응급 환자의 심신 안정을 이끌어내고, 알맞은 의사에게 연결해주며, 위치를 파악하는 등 다양한 직무를 익힌다.

응급의료 담당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9년의 기본 의과 과정에 더해 2년간 추가 전문 교육과정(DESC) 중 ‘응급의료’ 과정을 밟아야 한다. 통제담당의가 되려면 병원이나 단체 내 응급의료 경험 또한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SAMU 센터 내에는 실무를 경험하기 위해 상주하는 의과대학 학생들이 많다. 구급차 운전자 또한 18주의 전문 교육을 거쳐 국가 자격증을 따야 한다. 간호사는 기본 과정 외에도 마취 전공(IADE)을 이수해야 한다. SAMU로 걸려온 응급의료 요청 전화는 매년 3%씩 증가해 2015년에는 1900만 건에 달했다. 이 중 28%는 전화 조언으로, 22%는 전문의 왕진으로 마무리됐지만 간단한 증상에도 심각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SAMU의 철칙이다.

‘움직이는 병원’을 목표로 SAMU를 만든 루이 라렝 교수는 올해 94세이다. 현재 그는 툴루즈 지방의 지역보건기구에서 원격진료 발전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라렝 교수는 원격진료의 의미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필요한 의료 행위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그에게 응급의료 시스템을 발전시킨 공로로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도뇌르 2급 훈장을 수여한 바있다.

파리ㆍ이유경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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