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우아한 삶

매거진 2017. 12. 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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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스테이 196에서 만난

주말에는 문을 닫는 카페의 주인 양승철, 이진영 씨 부부. 오래된 것들을 사랑하는 그들의 욕심 없는 집에는 온화한 시간이 흐른다.


스테이196 카페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되는 풍경. 남편이 직접 신축한 건물인데도 오래된 듯한 분위기가 난다. 내부는 아내의 감각으로 빈티지하면서도 내추럴하게 꾸몄다.


처음부터 완벽하길 바랐으면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좀 서툴러도 살면서 매만지면 되지, 그랬죠.


단둘이서 이곳 살림을 꾸려나가는 양승철, 이진영 씨 부부의 단란한 모습


“저희 둘 다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지금도 우리가 어떻게 이걸 시작했을까 얘기하곤 해요(웃음).”

전남 장성, 한적한 시골 마을. 양승철, 이진영 씨 부부는 살던 집 마당 한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건물을 하나 더 짓고 카페 문을 열었다. 이름은 번지수를 딴 ‘스테이196’. 수줍음 많은 아내 진영 씨는 그저 사는 데 필요해서 하나하나 고친 것들이라 모자란 점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처음부터 완벽하길 바랐으면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좀 서툴러도 살면서 매만지면 되지, 그랬죠.”

각종 공사를 도맡았던 이 집의 ‘기술자’ 남편 승철 씨가 그래도 아내의 감각 하나는 인정한다며 곁에서 거들었다. 부부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사실 이곳엔 그래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어설프고 투박하기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듯하고 편안한 이야기들. 아내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남편이 실현한 이곳엔 새것과 옛것이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다. 예스러운가 하면 이국적이기도 한, 묘한 분위기에 제주도로 여행 온 기분이라고 말하는 손님도 더러 있었다.


창가의 벤치에 드리운 야생화 자수 / 곳곳에 놓인 빈티지 소품과 드라이플라워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살림집 외관


너른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세 채의 건물이 빙 둘러 놓인 이곳은 승철 씨의 고향집이다. 카페 별채는 1975년 아버지가 지은 창고였고, 살림집 건물은 수십 년 훌쩍 넘겼으리라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릴 적 가족이 다 함께 광주로 나가 살면서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이곳에 승철 씨가 아내, 딸과 함께 돌아오게 된 건 5년 전이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는 남은 생을 옛집에서 보내고 싶어 하셨고, 부부는 집을 고쳐 함께 이사하기로 했다.

“거의 방치되었던 집이라 괜찮을까 싶었지만, 새로 지을 여유는 없었어요. 목수를 불러다 작업을 맡기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직접하고 그랬죠. 그라인더로 서까래, 기둥 등을 다듬고 핸디코트도 손수 바르고요.”하지만 생각보다 더 일찍 세상을 등진 어머니는 아들이 매만진 옛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다. 대신 지금은 승철 씨가 태어났던 그 방에서 부부가 잠을 자고 생활한다.


넓은 마당에도 손님을 위한 테이블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카페 별채의 가장 안쪽에 마련된 룸


5칸짜리 창고였던 카페 별채는 원래 살림집 면적이 넉넉하지 않아 거실 겸 차실로 쓰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벽 철거와 트러스 시공, 전기 공사, 바닥 난방까지 모두 승철 씨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카페 본동도 혼자 지었다. 직접 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고 몸도 고됐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조금 어설프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어떤 분은 ‘돈 들만 한 건 하나도 안 했네’ 그래요(하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곳곳에서 빛나는 아이디어를 숨길 수 없다. 카페 별채 카운터는 창고에 있던 자개장을 활용해 만들었고, 철거할 때 나온 상량으로는 조명을 만들어 달았다. 라탄 백, 치즈 그레이터로 만든 조명도 멋스럽다. 벼룩시장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진영 씨가 그동안 하나둘 모은 빈티지 소품은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고유의 멋으로 분위기를 더한다.


다정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
세월의 흔적이 물씬 묻어나는 살림집 내부


누군가 이 공간을 마음으로,
오롯이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친정어머니가 물려주신 재봉틀이 놓인 카페 창가. 어디 하나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나둘 모아 두었던 손때 묻은 조명과 쿠션, 소품 등이 아늑하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잘 말린 꽃을 담은 바구니와 벼룩시장에서 몇천 원씩 주고 산 오래된 그릇들


“사람 손을 많이 타니까 집도 버거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잔디도, 꽃과 나무도 쉬어야지 싶어서 원래도 일주일에 이틀은 쉬었어요. 좋아서 오시는 분들에게 엉망인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잖아요.”

스테이 196은 주말에 문을 닫는다. 최근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손님이 몰리자 고민 끝에 내린 특단의 조치다. 좁은 시골길에 차가 붐비는 등 동네에 괜한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외진 곳에 손님이 찾아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는 부부는 누군가 이 공간을 마음으로, 오롯이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산 지 5년째이지만 카페는 이제 첫 겨울을 맞았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 온실을 만들 준비를 한다던 두 사람은 사계절, 매 순간 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정원이 참 놀랍고 기특하다고 말한다. 풀과 나무, 꽃, 바람, 햇빛…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자연을 돌아오는 봄엔 더 잘 가꾸어 찾아주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빈티지 홈>이라는 책의 소제목이 너무 좋아서 처음엔 카페 이름을 ‘따뜻하고 우아한 삶’이라고 지었죠. 제가 꼭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하는 진영 씨의 목소리가 흐르는 음악 속으로 잔잔하게 흩어진다.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이곳에서, 손님은 그저 잠시 숨을 고른다.


페 별채 출입구 쪽 모습. 평소 컬러풀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진영 씨의 감각이 돋보인다.


취재협조_ 스테이196 www.instagram.com/stay_196

취재_조고은 | 사진_홍덕선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7년 12월호 / Vol.226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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