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체 야민정음, '세종머왕'도 껄껄 웃으실걸요"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17. 12. 12. 11: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10대 청소년들이 즐겨쓰는 '급식체'
- 수수께끼 같은 한글 표기법 '야민정음'
- 언어 표현의 다양성 증대 측면도 있어
- 개방적이었던 세종대왕도 좋아하지 않을까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진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한번 해석을 해 보세요.

‘오늘 날씨 실화냐? 에바참치 춥다. 핫팩 붙여야 할 각. 빼박캔트 인정? 어, 인정. 동의? 어, 보감.’

여러분, 얼마나 알아들으셨어요? 이게 일명 '급식체'라고 불리는 말투랍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해서 급식체라고 불리는 건데요. 이 급식체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지금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말투랍니다. 대체 급식체 정체가 뭔지 좀 알아보고요. 또 이런 언어의 유행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짚어보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진호 교수 연결해 보겠습니다. 박 교수님, 안녕하세요.

◆ 박진호>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제가 앞에서 읽은 그 문장. '오늘 날씨 실화냐? 핫팩 붙여야 할 각? 빼박캔트. 동의, 어 보감.'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웃음)

◆ 박진호> 저도 처음에는 좀 의아하고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마는, 저도 인터넷 찾아보고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고 해서 좀 많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실화냐' 이거는 예컨대 오늘 날씨 영하 10도라는데' 그거 진짜냐', '정말이냐'라는 뜻을 재미있게 써서 실화냐 이렇게 표현하는 것 같고요.

◇ 김현정> 진짜 춥냐?

◆ 박진호> 네. '빼박캔트'라는 말 참 재미있는데 빼도 박도 못하고 약간 이런 뜻을 빼도 박도의 첫 글자 '빼박' 따고 하지 못한다를 영어의 캔트(can't)를 써가지고 이렇게 쓰는 겁니다.

◇ 김현정> 아, 빼박은 저는 대충 이해했는데 캔트가 할 수 없다의 캔트(can't) 예요?

◆ 박진호> 네. (웃음)

◇ 김현정> '각이냐'는 뭐예요? 뭐뭐 할 각이냐.

◆ 박진호> 이거는 원래 당구 칠 때 이런 각도에서 이렇게 치면 어떻게 될 각이다, 이런 말에서 온 것 같은데 '내가 예상컨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뜻으로 무슨 무슨 각이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 같습니다.

◇ 김현정> '핫팩 붙여야 할 각'이거는 그러면 '핫팩 붙여야할 상황이다.' 이 소리예요?

◆ 박진호> '오늘 너무 추워서 아마 핫팩을 붙여야 될 것 같다.' 이런 뜻이고요.

◇ 김현정> '동의?' 물어보니까 '어, 보감' 이건 뭐예요?

◆ 박진호> 이거는 '동의 어, 보감' 아시기 전에 '인정, 어 인정.' 이것부터 먼저 공부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김현정> 네. '인정? 어 인정.' 이건 뭐예요?

◆ 박진호> 이거는 인정하느냐, 내 말에 동의하느냐 그냥 명사 인정만 써서, '인정?' 이렇게 물어보고 대답할 때 네 말에 동의한다고 할 때 '인정' 하는데요. 이거를 초성만 따서 'ㅇㅈㅇㅇㅈ' 이렇게 쓰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정하고 물어보는 것 같은 뜻으로 동의 이렇게 물어봤을 때 ‘동의보감’이라는 책하고 같은 말이 들어 있으니까 물론 동음이의어입니다마는 '동의?' 할 때 '어, 동의'라고 답할 거를 '어, 보감' 답하는 식입니다.

◇ 김현정> (웃음) 예를 들면 또 어떤 말이 있습니까?

◆ 박진호> 혹시 '오지고, 지리고'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 김현정> 아니요. 저는 처음 들어봐요. 오지고, 지리고가 이게 무슨 말이에요?

◆ 박진호> 기존 사전에도 있고 옛날부터 쓰던 말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훌륭하다, 최고다.' 그리고 제가 하나 문제 더 내볼까요?

◇ 김현정> 그러세요, 급식체.

◆ 박진호> ㄱㅇㄷ. 뭔지 아시겠습니까?

◇ 김현정> ㄱㅇㄷ?

◆ 박진호> 이런 거는 초성체라고 해서 요즘 또 젊은 세대들이 어떤 말 앞에 강조하는 뜻으로 ‘개’라는 말을 많이 붙이는데요.

◇ 김현정> 많이 붙이죠.

◆ 박진호> 그래서 예컨대 이 쇼핑몰에서 사는 것보다 저쪽 쇼핑몰에서 사는 게 개이득이다 이런 말을 많이 쓰는데 개이득을 초성만 따서 초성만 따서 'ㄱㅇㄷ' 그렇게 많이 하는데. 이런 초성체도 요즘 유행인데 넓은 의미에 급식체 포함될 수 있을 것 같고요.

◇ 김현정> 진짜 어렵네요. 급식체라는 게 말 표현의 유행이라면 야민정음이라고 해서 표기하는 문자의 유행도 있다면서요.

◆ 박진호> 이게 또 재미있습니다. 명칭이 왜 야민정음이냐면 디시인사이드라는 사이트 안에 여러 가지 갤러리가 있는데 특히 야구 동호인들이 모이는 야구 갤러리에서 아마 이런 풍습이 처음 시작된 모양입니다.

◇ 김현정> 거기서부터 시작된 말투군요.

◆ 박진호> 그래서 야구 갤러리의 약자를 따서 야민정음이라고 하는데요.

◇ 김현정> 예를 들면 어떤 게 야민정음이에요?

◆ 박진호> 이것도 제가 퀴즈 형식으로 내볼게요.

◇ 김현정> 퀴즈 많이 내시는데 땀 나네요. (웃음)

◆ 박진호> '댕댕이'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웃음)

◇ 김현정> 땡땡이 그런 거예요, 땡땡이?

◆ 박진호> 그게 아니고 멍멍이, 개, 강아지를 뜻하는 말인데요.

◇ 김현정> 댕댕이가 어떻게 멍멍이예요?

◆ 박진호> 댕자하고 멍자가 혼동되기 쉬운 글자들이거든요.

◇ 김현정> 여러분 한번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댕댕이라고 쓰고 멀리서 보면 그게 멍멍이로 보인다?

◆ 박진호> 그러니까 '댕'자하고 '멍'자하고 헷갈릴 수 있죠.

◇ 김현정> 그렇네요.

◆ 박진호> 그래서 일부러 그걸 이용해서 멍이라고 써야 될 때 댕이라고 쓴다던지 거꾸로 댕이라고 쓸 때 멍이라고 쓴다든지.

◇ 김현정> 또 어떤 게 있어요, 그러면?

◆ 박진호> '띵작.'

◇ 김현정> 띵작이 뭐예요?

◆ 박진호> 명작입니다, 명작.

◇ 김현정> 띵자도 띵 디귿 2개 쓰고. 멀리서 언뜻 보니까 진짜 명자같이 보이네요.

◆ 박진호> 그러니까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거죠. 재미를 추구하거나, 읽는 사람이 추리를 해야 되는데, 한번 추리해서 맞혀봐라, 이런 수수께끼부터 출발을 했고 많이 쓰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쉽게 알게 돼버린 것이죠.

◇ 김현정> 급식체도 통 못 알아듣겠는 말투인데, 야민정음도 지금 유행하고, 그 밑에 숨겨져 있는 심리는 뭘까요?

◆ 박진호> 앵커께서도 그랬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어렸을 때 청소년 시절, 젊었을 때는 기성세대는 우리랑 생각이 달라서 말이 잘 안 통한다 그런 생각이 많고요. 젊은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많고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끼리 하는 말을 오히려 더 기성세대는 못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뭔가 은어라든지 젊은이들만의 표현을 만들어내는 성향이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있는데요. 이런 현상이 더 강화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 김현정> 하기는 저 학교 다닐 때 생각해 봐도 그러니까 80, 90년대에도 '와따, 당근이다, 열라' 이런 말 썼어요. 교수님도 그런 거 있었죠, 학교 다닐 때.

◆ 박진호> 많았죠.

◇ 김현정> 맞아요. 그러면 국어학자가 보시기에 국문학자가 보시기에는 이 급식체, 야민정음 딱 듣고 교수님은 어떠셨어요?

◆ 박진호> 기발하고 참 재미있다.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라고 생각해서 아주 껄껄 웃고 재미있게 생각을 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셨어요? 이거 사실은 언어 파괴고 한글 파괴 현상 아닌가 싶은데 국문과 교수님이 제일 앞장서서 막으셔야 될 분 아니에요?

◆ 박진호> 사실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에 대해서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종대왕께서 만약에 이런 야민정음 같은 걸 보시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실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마는 뭐 그런 부정적으로 보고 우려할 부분도 조금 있긴 있지만 그건 오히려 너무 과장되어 있고, 그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측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어떤 식으로요?

(사진=자료사진)
◆ 박진호> 일단은 먼저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서 제가 반론을 펴자면 야민정음이 한글 파괴라는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 애초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이렇게 쓸 걸 염두에 두진 않았을 것 같고요. 그래서 일종의 세종대왕의 의도에 벗어나서 한글을 좀 색다르게, 기존의 규범을 파괴하고 쓰는 건 맞는데요. 그런데 한글은 왜 파괴하면 안 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죠. 한글 뿐 아니라 모든 문화적 창조물은 창조자의 손을 일단 떠나면 창조자가 애초 의도한 대로만 사용된다는 법이 없습니다.

많은 창조물들이 애초의 의도를 벗어나서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있고 그렇게 창조자의 의도를 자유롭게 벗어나다보면 2차적인 발명도 생겨나고. 그로부터 창조적인 아이디어, 발상법도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그런 사례가 긍정적으로 기여한 경우가 많이 있죠. 그리고 야민정음도 그렇지만 급식체도 그렇고 이거를 우리말과 글을 파괴한다고만 볼 게 아니라 똑같은 의미,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을 더 다양하고 다채롭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 다양성, 우리의 언와와 문자와 관련된 문화 다양성을 증대시킨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요.

◇ 김현정> 오히려 다양하게 만들고, 풍성하게 만드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 박진호> 다채롭게 되고 풍부하게 돼서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하긴 개중에 과한 건 자연스레 소멸하고 어떤 건 사실은 저 예전에 썼던 그런 말들 중에도 지금까지도 남아서 사용되고 사전에 오르는 것들도 있고. 알아서, 언중들 사이에서 도태될 건 도태되고 보기에 좋다, 쓰기에 편하다하는 것들은 살아남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거죠 교수님?

◆ 박진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교수님 보시기에는 세종대왕이 지금 이 급식체나 야민정음을 들으신다면 세종대왕님도 껄껄껄하실 수 있다 이런 생각이신 거예요?

◆ 박진호> 예. 세종대왕의 당시 개방적인 성품을 고려하면 야민정음에 대해서도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 김현정> 그래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네요, 정말 그러고 보니까. 오늘 교수님, 해 주신 말씀들 다 '실화'죠?

◆ 박진호> 네. 금방 응용하시네요. (웃음)

◇ 김현정> (웃음) '빼박캔트' 이런 것 기억하면서 10대 아이들과 소통해 보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 박진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진호 교수였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 홈 바로가기]

[CBS 김현정의 뉴스쇼]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