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장관 출신의 170억원짜리 특혜성 지원 요청

2017. 12. 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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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대통령 친분 거론하며 교육부에 개인 시설 매입 압력 의혹…교육부는 거절
김화중 전 장관 “형편 어려운 학생 돕는 사업, 정부 지원 필요”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 대황강 옆 약 13만3천m²(4만여 평) 땅에는 똑같은 모양의 이층집 109채가 들어서 있다.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화중 전 장관과 남편인 고현석 전 곡성군수가 2007년부터 수도권 은퇴자들을 위해 조성한 강빛마을이다. 강빛마을 한쪽 옆에는 사단법인 독일유학후원회에서 운영하는 숙식형 독일 몰입교육 시설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무상교육 시설이다. 2013년 강빛마을이 완공돼 입주를 시작했지만 사업은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은퇴자 마을 조성과 교육 사업 모두 여의치 않았다. 때마침 이른 대선이 치러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이들은 정부에 170억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교육 사업을 하겠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지원 요청은 특혜였고 요청을 진행하는 과정도 부당했다. <한겨레21>은 옛 참여정부 인사가 어떤 과정으로 특혜성 예산을 정부에 요청할 수 있었는지 심층 취재했다. _편집자

지난 11월29일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에 위치한 강빛마을 펜션의 전경. 이날 펜션의 숙박객은 <한겨레21> 취재팀을 제외하고 한두 팀에 불과했다. 정용일 기자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화중 전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인 지난 8월부터 정부에 특혜성 예산 170억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장관 본인이 소유한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의 기숙형 독일어 교육시설(50억원)과 김 전 장관의 남편인 고현석 전 곡성군수가 대표로 있는 밸리홈(공동출자 사업체)이 소유한 강빛마을 펜션 50동(120억원)을 교육부가 매입해달라는 것이 지원 요청의 주요 내용이다. 이번 요청은 교육 사업을 위한 필요 경비 지원이 아니라, 개인 소유의 교육시설과 펜션을 정부가 매입해 위탁 운영을 하게 해달라는 방식이어서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김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친분 있는 여야 의원을 활용해 교육부가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압박했고, 교육부 담당자 등에게 연락해 문재인 대통령, 여당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의 친분을 거론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가 170억원 내려달라”

김화중 전 장관이 8월 이후 교육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한 민원의 핵심은 ‘교육부가 특별교부금 170억원을 전남 교육청에 내려주라’는 것이다. 전남교육청이 이 예산을 독일유학후원회(이하 후원회)에 지급하면, 후원회가 곡성의 기숙형 독일어 교육시설과 강빛마을 펜션을 매입한 뒤 교육청에 기부채납하겠다는 것이다. 후원회는 김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은 사단법인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숙식비만 받고 교육은 무상 제공하는 기숙형 독일어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독일어 교육 사업의 운영비는 후원회가 펜션을 위탁 운영한 뒤 그 수익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게 김 전 장관의 구상이다.

이런 김 전 장관의 요청 내용은 교육부와의 면담 과정에서 바뀌었다. 처음에는 후원회가 펜션과 교육시설을 매입한 뒤 교육청에 기부채납하겠다는 안이었지만, 이후 교육청이 직접 펜션과 교육시설을 구입해달라는 안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같다. 정부가 사업성 여부가 불투명한 강빛마을 펜션과 독일어 교육시설을 매입한 뒤 그 운영권을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왜 교육부에 이런 요청을 했을까. 그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자신의 교육 사업이 공익적 목적을 가졌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지난 1년 동안 개인 재산을 털어 독일어 교육 사업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무상 교육은 현재까지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지만 후원금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김 전 장관의 독일어 교육 사업은 지난 1월에 시작됐다. 현재는 5기 수강생 31명이 곡성 기숙시설에서 독일어 강의를 듣는다. 1기부터 시작해 이 과정을 거쳐간 학생과 현재 교육받는 학생을 모두 합치면 68명이다. 이들은 곡성 교육시설에서 6~8개월 동안 몰입식 독일어 교육을 받는다. 한 달에 50만원인 숙박비는 자부담이지만, 교육비는 무료다. 대학의 약 90%가 등록금이 없는 국립대학인 독일 대학의 입학을 허가받을 수 있는 B2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7월에는 후원회의 부설 평생교육시설로 ‘유럽유학아카데미’를 설립해 신고를 마쳤다.

김 전 장관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만 졸업한 학생이나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든 학생에게 독일 유학의 길을 열어줘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B2 시험에 합격한 학생은 7명 응시자 가운데 총 3명이다. 이 교육과정의 운영 책임을 맡은 김옥선 조선대학교 독일어문화학과 교수는 “B2 시험의 평균 합격률은 35.7%다. 이 교육을 거쳐간 학생들의 합격률은 평균 42.8%로, 몰입교육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돈 이득을 생각한 것 아니다”

고현석 전 곡성군수(왼쪽)와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한겨레/ 한겨레 김정효 기자

교육 사업의 취지는 좋더라도 이러한 예산 집행은 전형적인 특혜성 예산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먼저 김 전 장관은 자신이 소유한 교육시설(50억원)과 50동별로 각각 소유주가 있는 펜션(120억원)을 정부가 구매해달라고 요청했다.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돈을 지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 소유의 재산을 정부가 매입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더 큰 논란이 예상되는 것은 지원액이다. 현재까지 학생 68명이 거쳐간 것에 불과해 아직 지속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만한 성과가 없는 사업에 무려 170억원을 요청했다. 김 전 장관은 이에 대해 “한 해 최대로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인원은 200명이다. 200명을 위해서는 매년 10억원가량 드는데 (매번 교육부에서 지원받기보다) 펜션을 사주는 형식으로 한 번만 돈을 내주면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 펜션 수익으로 교육 사업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교육시설과 펜션을 매입하면 그 돈은 현재 건물을 소유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곡성 강빛마을 펜션 왼쪽에 있는 2층 건물 9개동으로 이뤄진 교육시설은 모두 김 전 장관의 소유다. 그는 교육부가 교육시설을 매입해줄 경우 이 자금으로 “우선 빚을 갚아야 한다. 이 시설을 짓는 데 46억원이 들어갔다. 융자가 26억원쯤 된다”고 말했다. 50동 규모의 펜션 매입금 역시 각각의 소유주에게 돌아간다. 이런 방식이 ‘사적 이득’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에, 김 전 장관은 “돈 이득을 생각했다면 시골에 올 이유가 없다. 여기에서 교육 사업을 애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또 있다. 펜션 사업이 성공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김 전 장관은 펜션 운영 수익으로 교육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현재 펜션 사업은 적자다. 강빛마을 펜션 50동은 2016년부터 코레일관광개발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코레일관광개발의 ‘강빛마을 펜션 운영 실적’을 보면 2016년 2900만원의 적자를 봤다. 올해도 1천만원 적자를 낸 상황이다. 코레일관광개발이 내놓은 차기 운영 전망을 봐도 2018년부터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지만, 2018년 3천만원, 2019년 4천만원, 2020년 4500만원 규모다. 해마다 10억원가량 들어가는 교육 사업에 투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김 전 장관이 의도한 대로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면, 김 전 장관은 교육 사업을 위해 졌던 거액의 빚을 털 수 있고, 펜션 소유자들은 적자 운영인 펜션을 정부에 떠넘길 수 있게 된다. 고현석 전 군수는 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한겨레21>에 “하다보면 (특혜성 논란에) 틀림없이 부딪힐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 시설이 김화중의 것이 아니면 괜찮은 일이고, 김화중이 갖고 있으면 안 되는 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육 사업을 시작해놓고 보니 스스로는 힘이 없었다. 학생들을 보니 교육 사업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김 전 장관의 요청을 ‘지방교육재정법 시행규칙’에 어긋나며 사단법인의 자산 취득에 국비를 활용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거절했다. ‘지방교육재정법 시행규칙’에 의하면 국가시책 특별교부금은 유아, 초·중등 및 특수교육으로 지원 범위가 한정돼 있어 일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시설에는 지원할 수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원 요청을 거부한 이유를 묻는 <한겨레21>에 “검토 결과 특별교부금 교부 원칙에 맞지 않아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원 불가’ 방침이 전해진 뒤에도 여야 의원을 통해 예산 지원이 이뤄지도록 교육부를 압박했다. 김 전 장관은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나 교육부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 김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지난 대선 운동 중에 설훈 의원이 펜션을 방문해 학생들이 독일어 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고 갔다. 학생들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해 교육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걸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설훈 의원실 쪽에선 “(처음에는) 좋은 아이템이니 적극 검토해보라는 취지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두 번째로는, 김 전 장관 쪽에서 ‘예전에 비슷하게 지원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그 부분을 (교육부에) 검토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최종적으로 지원 불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설 의원실 쪽에선 “우리 쪽에서 민원을 처리할 때는 연간 50명 정도의 학생 교육비를 지원해달라는 내용으로 들었다. 지원 규모는 정확하지 않지만 3억원 정도였다”며 전체 지원액이 17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밝혔다.

교육감도 교육부를 찾았다

11월29일 곡성 강빛마을에서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 정용일 기자

김 전 장관은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을 통해서도 지원을 요청했다. 김 전 장관은 “교육부에서 만나주지 않아 유성엽 의원에게 얘기했더니 그 자리에서 교육부 차관에게 전화해 김화중 전 장관을 만나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성엽 의원은 “김 전 장관 부부와 친분이 있어 교육 사업의 취지를 듣고 교육부에 지원 가능한지 검토해보라고 했다. 며칠 뒤 안 된다고 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 전 장관은 교육부 담당자에게 수차례 전화해 지원을 압박했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 권양숙 여사와의 친분, 참여정부 장·차관 모임인 ‘10년의 힘’과의 인맥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차관은 이 과정에서 “이 사업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도 넣으려고 했던 사안이다. 교육부 쪽에서도 나라를 움직이려면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원 요청을)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면 이건 하실 것이다. 이런 얘기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독일어 교육 예산 지원 요청은 전남교육청을 통해서도 교육부에 전달됐다. 김 전 장관은 170억원의 지원 내용이 담긴 공문을 8월23일 전남교육청 평생교육팀에 보냈다. 교육청 관계자는 “김 전 장관 쪽 제안서가 취지는 좋지만 교육청 차원에선 어려운 내용이라 교육부에 그대로 올려보냈다. 교육청이 매입해서 그대로 그쪽에 위탁해주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법률적 정비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장만채 전남 교육감은 최근까지 교육부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장 교육감은 “정확히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난달쯤 (서울에) 갔다. 수차례 교육부에 얘기했는데 교육부 쪽에서 어렵다고 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프로젝트 규모가 170억원으로 크다보니 담당 부서에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 교육감은 170억원으로 개인이 소유한 시설을 매입하는 것이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에 “개인이 얼마를 투자했는데 얼마의 이득을 남겼고 하는 부분을 따져봐야 한다. 이 사업이 가시화하면 여러 평가를 거칠 텐데 사업 지원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개인의 이득을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규정만 바꾸면 지원 가능”

김화중 전 장관 부부는 여전히 예산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놓지 않고 있다. 법적 부분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현석 전 군수는 평생교육시설 지원이 되지 않는 지방교육재정법 시행규칙과 관련해 “그건 교육부 내부 규정이라고 들었다. 교육부 장관이 고칠 수 있다.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하고 해볼 만한 일인지 먼저 결정하고 연구해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교육부 안에서 조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장관도 “그동안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이 곡성에 한 번도 내려와보지 않았다. 현장 조사를 하고 진위를 파악한 뒤 행정이나 법률적 검토를 한 다음, 안 된다는 이유를 납득하게 설명해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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