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삶, 그리고 주거권] 주거정책 쏟아지는데.. 대상자들은 "그게 뭐죠?"

박세환 기자 2017. 12. 12.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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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장 괴리 없애야

옥탑방 29세 청년은…
임대료 싼 행복주택 신청 가능
보증금은 버팀목 대출로 충당
서울시, 임차보증금 융자해줘

집만 있는 노인은…
LH 등에 시세 3억 주택 팔면
20년간 매달 147만원씩 받아
공공임대주택 우선 입주권도

월급의 22%를 월세로 내는 옥탑방 청년 문준현(가명·29)씨와 집은 있지만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강영호(가명·79) 할아버지. 두 사람은 법이 정하는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2006년 주택법(현 주거기본법)을 근거로 설정된 최저 주거기준은 전용 입식 부엌과 전용 수세식 화장실, 전용 목욕시설 중 1개라도 없는 가구 또는 침실이나 면적이 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를 뜻한다.

지난해 전체 가구의 약 5.4%인 103만 가구가 최저 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옥탑방의 사회초년생과 집만 가진 70대 노인보다 더 열악한 주거환경에 있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적 주거취약계층은 아니라도 현실적인 주거문제를 겪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주거복지 정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데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경우 그런 정책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른다.

“종류 많고 너무 복잡한 공공임대”

준현씨 같은 사회초년생은 ‘행복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젊은층 주거 안정을 위해 철도부지 등 국공유지를 활용해 조성한 주택이다. 주로 역세권에 있고 최대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전용면적 16㎡(원룸형) 규모의 경우 월 임대료는 7만원 정도. 다만 보증금이 3400만원으로 비싼 편이다. 버팀목 대출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

서울시도 39세 이하 사회초년생을 위해 임차보증금 융자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의 보증금 2000만원 이하, 전용 60㎡ 이하 주택 및 주거용 오피스텔에 입주한 계약자에 한해 지원한다. 대출한도는 임차보증금의 80% 범위 이내다.

현재 청년주거지원제도로 중앙정부는 행복주택·사회주택·전세임대·디딤돌대출·버팀목대출·월세대출 등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희망하우징·리모델링형사회주택·한지붕세대공감 정책을 도입했고, 경기도는 임대보증금 이자지원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제도를 갖췄어도 서민이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데 있다. 수혜조건이 모두 조금씩 다르고 지원규모도 판이하다. 제도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공공임대주택은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매입·전세임대주택, 5년·10년·50년 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등으로 나뉜다. 역시 입주자격, 임대기간, 임대료 등 임대 조건이 모두 제각각이다. 공공임대는 무주택 서민을 위해 중앙·지방정부가 저렴하게 빌려주는 집인데, 한국만큼 종류가 많고 복잡한 나라는 없다. 예산을 투입하는 주거복지 정책이 즐비하지만 그만큼 중구난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주거복지, 누구나 쉽게 접근토록”

강 할아버지도 주거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1∼6월) ‘연금형 매입임대’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금융공사 등이 만 65세 이상 고령자가 보유한 도심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을 사들여 1·2인용 소형주택으로 리모델링(재건축)한 뒤 청년과 신혼부부 등에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집을 판 고령자에게는 주택 매입 금액을 매달 연금 형태로 분할 지급한다.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권리도 준다. 시세 3억원짜리 주택을 팔고 20년간 연금을 받을 경우 매달 147만원을 받을 수 있다. 보유한 주택을 매각하는 형태여서 집을 담보로 맡기고 연금을 받는 역(逆)모기지 방식의 주택연금보다 월 연금액이 훨씬 많다.

그러나 강 할아버지는 이런 정책이 내년부터 시행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정부도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느끼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주거복지 로드맵이 담긴 책자를 들어 보이며 “저희도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거복지 정책이 ‘공공임대 100만 가구 공급’ 같은 양적인 부분에 치우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이들이 필요한 혜택을 실제로 누리도록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러 정부를 거치며 이름만 다른 정책을 계속 새로운 것처럼 포장해 내놓다보니 정책 수요자의 제도 접근성이 너무 악화됐다”며 “주거복지 제도를 수요자가 쉽게 파악해 신청하고 누릴 수 있도록 제도 접촉의 끈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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