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미생물 죽이는 '항생제와 전쟁' 나선 이유는"

2017. 12. 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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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 김혜성 원장

‘입 안의 우주 미생물과의 공존’을 주창하고 있는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 김혜성 원장. 사진 박경만 기자

“내 몸은 미생물로 가득 찬 하나의 우주이고, 나는 이 우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이고 왕입니다.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은 몸 안 미생물을 박멸시켜 몸의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고 항생제 내성균(슈퍼박테리아) 출현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20여년간 치과병원을 운영해온 김혜성(51) 원장은 “항생제는 감염의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사에게 일종의 보험과 같은 약”이라며 “감염 가능성 때문에 항생제 처방을 남용하는 것은 환자와 인류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인의 도덕적 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처방률을 43%나 줄인 사례를 연구논문으로 발표해 지난달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SCI)급 치과학 저널인 <액타 오돈톨로지카 스칸디나비카>(Acta Odontologica Scandinavica)에 실렸다. ‘항생제와의 전쟁’에 나선 김 원장을 지난 7일 고양시 일산 사과나무치과병원에서 만났다.

임플란트 시술탓 치과 항생제 더 늘어
자체 가이드라인 만들어 처방 43% 줄여
‘드문 사례’ 논문 발표해 국제학술지 실려

“항생제 남용은 의료인 도덕적 해이죠”
‘미생물 공존’ 운동, 식이요법 등 저술도
“대학 때 꿈꾼 실천적 지식인의 길 찾아”

“우리 몸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미생물이 있고, 그 작은 세계 안에는 생명의 모든 신비가 들어 있어요. 나를 괴롭힐 수 있는 미생물은 극소수인 100여종에 불과한데 이것을 소독하려고 모든 미생물을 박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김 원장은 항생제 투여는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료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항생제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세계적으로 항생제 사용이 감소 추세이지만 아직도 30~50%의 항생제가 불필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임플란트 시술 확대 등으로 치과에서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으며 평균 10% 안팎의 항생제가 치과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가 항생제 사용 줄이기에 나선 것은 본격적인 미생물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먼저 2015년 1월부터 석달간 사과나무치과병원에서 시행된 약 3만건의 진료 중 항생제 처방과 무관한 진료를 빼고 1만2711건의 진료 내용을 분석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13명의 치과의사가 기준이나 과학적 근거 없이 개별지식에 의존해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었다. 임플란트 1차 수술에서 91.7%, 소수술에서 60%나 처방됐다. 환자가 남자이거나 나이가 많을 때, 치과의사가 여자일 때 처방률이 높았고 의사의 나이가 많을수록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그동안 공부한 미생물학적 근거들을 모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교육에 나섰다. 항생제는 뚜렷한 감염의 징후가 있을 때, 또 그것이 확산될 것이 우려될 때에만 처방하고, 사랑니를 뽑거나 임플란트를 심을 때도 광범위 항생제를 미리 처방하지 말고, 중범위 항생제를 먼저 처방하도록 했다. 광범위 항생제는 모든 세균에 영향을 미쳐 슈퍼박테리아가 더 잘 출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클릭만으로 처방하지 못하게 하고, 처방 이유를 표시하도록 해 통계를 내고 매달 발표하도록 했다. 그 결과 가이드라인 시행 전과 견줘 항생제 처방이 43% 줄었으며, 감염이나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항생제 투여는 미생물학적, 면역학적, 임상학적 다양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이 아닌 작은 병원에서 과학적 문헌에 기초해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만들어 항생제 처방을 낮춘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생제 연구를 통해 일상까지 바꿨다. 가능한 한 약을 멀리하고, 미생물과의 공존을 생각하며 평소 몸관리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잘 먹고 많이 움직이기, 장 미생물 조절을 위해 배설이 잘되는 음식 먹기 등이다. 그는 최근 3년간 300번 이상 산을 오른 등산 마니아이기도 하다.

서울대 치과대학과 컬럼비아대 치과대학원을 나온 그는 지난해 <내 입속에 사는 미생물>에 이어 최근 <내 안의 우주, 미생물과의 공존> 등 미생물 관련 책도 잇따라 펴냈다. “미생물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경이로움 그 자체죠. 자신의 유전자를 주위의 유전자들과 실시간으로 교환하며 생명력을 높이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는 50대에 들어서 ‘입 안에서 우주를 본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는 아무리 크게 벌려도 용적이 100㎖ 정도밖에 안 되는 입속만 보고 있는 자신이 답답하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금은 미생물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치과의사 직업에 감사합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접속해 미생물 관련 저널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항생제와 미생물 연구에 나선 것은 건전한 지식인으로서 살고 싶어서다.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25년간 확장을 계속하면서도 전문분야 지식과 밥벌이에만 머물고 사회와 자연의 근본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에 늘 불편함이 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인 건강 문제에 대해 일정한 근거와 실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니, 이제 비로소 대학 때 꿈꿨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길을 찾은 느낌입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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