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 근로시간 단축 논의, 지금 어디에 와 있나

윤범기 2017. 12. 11. 0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 기대 vs '준비부족' 우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은 큰 호응을 얻었다. 과로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 던지 화두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 처음 출마했을 때부터 이 구호를 이어받아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 공약으로 추진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 후인 지난 10월 16일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더는 계속되어선 안 된다"며 다시 한번 근로시간 단축을 강조했다. 또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초과 근무를 용인하는 정부 행정해석을 고치겠다며 국회와 재계를 압박했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

◆근로시간 68시간→52시간 단축 '발등의 불'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9시까지 근무하는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하루 12시간씩 월~금 5일간 근무하기 때문에 이미 주중 60시간을 근무한 셈이다. 그런데 주말도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나와서 주말 당직을 서야 한다. 주말에 나와서 8시간쯤 일한다면 일주일에 68시간을 일한 것이다. 현행 제도하에선 이런 근무시간도 허용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정하고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규정해 총 52시간까지만 허용한다. 하지만 일주일이 주 5일인지, 주 7일인지는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고용부는 그동안 일주일을 휴일을 제외한 5일로 해석했다. 즉 주중 5일간 52시간 근무가 가능하고, 주말 근무는 별도로 계산한 것. 이에 따라 현재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주 40시간+평일 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으로 총 68시간까지 가능하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바로 이런 행정해석이 '과로사회를 당연시한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문 대통령에 이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주당 68시간 근로를 인정한 고용부의 행정해석 지침에 "문재인 정부에서 사과드린다"며 행성해석 폐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가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즉시 5인 이상 사업장까지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들고, 사용자가 이를 어기면 2년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정부의 행정해석에 기대 68시간 근무를 당연시해왔던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8일 오전 국회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임이자 위원장과 의원들이 근로시간 단축안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논의하고있다.[사진=김호영기자]
◆재계, 행정해석 폐기보다 법 개정 선호

당초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대전제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유예기간을 충분히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3일 여야 3당 간사는 현행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되 3단계로 나눠 순차 적용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재계는 이조차도 너무 성급하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잠정안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재계는 이제 정부의 행정해석 폐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가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의 행정해석이 폐기되면 현재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사업장은 당장 모두 불법 사업장이 되기 때문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7일 오전 국회 환노위를 찾아 홍영표 환노위원장과 3당 간사를 면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가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하러 온 것이다. 박 회장은 회동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얼마 남지 않았고 행정해석 폐기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빨리 입법화해서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개정안을 처리한다면 내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실현된다.

◆휴일수당 150% vs 200%

하지만 아직 개정안 처리까진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바로 휴일 수당 문제다.

국회 환노위가 각당 간사 간 합의됐던 개정안을 무산시킨 이유는 휴일 수당을 얼마나 줄것인지가 간사에게 위임된 바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수당도 휴일근로 할증률 50%만 적용해 기본급의 150%를 지급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휴일근로는 연장근로(50%)이면서 휴일근로(50%)이기 때문에 수당을 100% 할증해 200%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여야 간사들은 휴일근무수당의 할증률을 현행 50%로 유지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과 정의당, 노동계가 휴일근무수당 100% 할증을 주장하면서 소위 차원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동계는 휴일 수당 2배가 관철되지 않으면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대법원도 휴일근무수당을 통상임금의 2배로 계산할지 1.5배로 계산할지를 놓고 14건의 소송을 심리 중이다. 대법원은 다음달 18일 이와 관련한 공개변론을 연다. 대법원 선고는 변론 종결 뒤 2~3개월 이내에 나올 전망이다.

[윤범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