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스마트카가 괴물로 돌변한다면?

최용성 2017. 12.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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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Tech Talk-98] '모놀리스(Monolith)'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지? 첨단 기능의 스마트 자동차가 괴물(?)로 변해 사람을 곤경에 빠트린다는 내용의 이탈리아 영화다. 올봄 국내에서도 개봉했다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디지털 시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킹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언젠가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 영화가 퍼뜩 떠올랐을 뿐이다.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 몇 가지 리뷰를 둘러봤는데, 썩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아닌 거 같다.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인간의 아둔함을 말하려는 것인지, 기계문명의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들이 눈에 띄었다. 여자 주인공의 이상한 행동과 관련한 여혐 논란도 있었다(이런 SF 스릴러 영화가 왜 여혐 논란에 휘말렸는지 개인적으로는 무척 궁금하다).

뭐, 이 글이 영화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니 궁금하신 분들은 다른 경로를 통해 천천히 감상하시면 되겠다. 어쨌든 영화는 놀라운 성능을 갖춘 방탄 슈퍼카(이름이 '모놀리스'다)에 아이가 갇힌 상황을 설정하면서 시작된다. 차 안에 홀로 있던 아이는 스마트폰을 갖고 놀다 자동차 잠금장치를 건드리고 만다. 주인공인 젊은 엄마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차문을 열어보려고 하지만 헛수고다. 자동차는 강력한 잠금 기능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낮의 무더위로 차 안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갇힌 아이의 생명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후에 끔찍한 악마가 돼 버렸다. 기술을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기계 혹은 기술에 대한 비관적 미래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실수로 인해 기계를 제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실수가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갖고 일부러 기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해킹(원래 해킹이란 말은 네트워크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는 좋은 의미의 말이고, 악의적으로 네트워크에 침투하는 '크래킹(cracking)'과는 구별된다) 같은 것 말이다. 이미 인류는 해킹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인터넷 등장 이후 빈발한 사이버 공격은 전 지구적 문제로 커졌다. 각종 기기들이 점차 디지털화하면서 해킹 피해도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PC나 서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스마트폰 등 네트워크와 연결된 모든 컴퓨팅 장치에서 해킹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다. 자동차가 내연기관으로 작동하는 기계에서 디지털 전기장치로 발전하면서 해킹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실제로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의 보안 연구팀은 1년 전쯤 미국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S' 문제점을 발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차내 시스템에 침투한 다음 원격제어로 문을 열거나 운전 중 차량의 와이퍼, 브레이크 등을 작동시키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려 주목을 끌었다. 텐센트 측은 "테슬라 전기차의 정보단말기인 웹브라우저와 리눅스 시스템의 취약한 곳을 뚫었고, 이어 차량제어 네트워크(CAN)에 접근할 수 있었다"며 "여기에 가짜 명령을 보내 테슬라 전기차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텐센트 연구팀의 지적을 받아들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명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원격으로 시동을 걸거나 자동차를 잠그는 전자키를 해킹해 고가 차량을 훔쳐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시중에서 30만원 정도만 주면 살 수 있는 주파수 조작기로 집 안에 있는 전자키를 작동시켜 차 문을 여는 수법이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주파수 해킹을 막아주는 전자키 지갑이 등장하고 핸들에 잠금장치를 달아 놓는 사람도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자동차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하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운전이라고 하는 '불편하고 힘든' 행위를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오토매틱 기어에 익숙해진 나머지 수동기어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요즘 대다수 사람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운전을 하지 않는 대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또 다른 생산적(혹은 창의적이라고 포장된)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율주행차라는 게 네트워크와 연결된 디지털 덩어리라는 데 있다. 이런 디지털 기기는 지금 내가 사용하는 PC처럼 언제든 해킹당할 수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테슬라 전기차의 보안 취약점 같은 것이 무수히 많을 테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악성 바이러스를 심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특히 자동차 해킹은 컴퓨터 내 자료가 사라지거나 자금이 유출되는 문제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영화 '모놀리스'에서 본 것처럼 문명의 이기는 순식간에 인류를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물론 사람 운전이 더 안전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조만간 펼쳐질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 가장 유명한 사업 분야로 '보안'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운전하지 못하는 인간과 자율주행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니,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의 장난인가.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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