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거래량 세계 3위 한국, 제도화는 꼴찌
[경향신문]
비트코인의 제도권 금융시장 진입을 앞두고 비트코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 12월 1일만 해도 1비트코인(BTC)당 1만 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일주일 사이에 1BTC당 1만5000 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올해 초 1BTC의 가격이 1000 달러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년 사이에 1500%가 오른 것이다.
특히 한국의 비트코인 열풍은 세계적으로도 이슈다. 가상화폐(암호화폐) 정보 사이트인 코인힐즈(coinhills.com)에 의하면, 12월 8일 기준으로 전 세계 비트코인 환전액 중 한국 원화는 9.56%로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의 2%가 조금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과열이라고 불릴 만하다. 비트코인 열풍이 거품인지 아닌지는 전문가도 잘 모른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이 적정가격인지 아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갑자기 비트코인 가격이 바닥으로 갈 수도 있고 더 오를 수도 있는데 뭐가 맞는지는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환전액 1위인 일본(엔화), 2위인 미국(달러)에서는 법 테두리 내에서 가상화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한국의 가상화폐는 사실상 법 밖에 위치하고 있다. 거래소가 해킹당하고 전산장애로 1시간30분간 거래가 끊겼지만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법적 규제는 이제 막 논의되는 수준이다.
12월 10일,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시장에 첫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 소식을 ‘빅 뉴스’라 부르며 향후 비트코인의 가치가 올라갈지 아닌지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비트코인의 데뷔무대는 세계 최대의 파생상품거래소라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다. 12월 1일 CME와 CBOE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로부터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승인받았다. CME의 비트코인 선물거래는 최대 500BTC에 이르는 선물을 매수·매도할 수 있다. 1BTC의 가격을 1만5000 달러로 볼 경우, 최대 750만 달러에 이르는 비트코인 선물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CME의 선물 거래는 런던시간 오후 4시를 기준으로 체결된 선물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상하 20%를 넘어서는 주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가격 불안정성을 완화시킬 장치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이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겐 호재라고 봤다. 안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2월 7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선물이 기관투자가들의 참여를 끌어들일 것이라며 “그동안 개인의 투기심리에 의존해 움직였던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낮춰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연구원은 기관투자가가 비트코인의 적정한 가치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며 “비트코인이 진정한 투자자산의 위치를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 등 ‘큰손’들이 유입됨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오를 여지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좀 더 장기투자가 일반화될 것으로 보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비트코인 다음 가는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대한 파생상품 출시도 임박한 상황이라 가상화폐 시장의 파이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점점 일상으로 침투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의 비트코인의 지위는 묘하다. 비트코인 1일 거래량이 코스피 1일 거래량을 뛰어넘는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이 과정에서 세금은 붙지 않는다. 심지어 비트코인으로 수익을 본 사람도 세금이 없는 게 맞는지 신기해할 정도다. 한 달 월급 정도를 비트코인 등 여러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30대 회사원 신모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일주일 만에 크게 올라서 수십만 원을 벌었는데 세금을 안 내도 되는지 궁금했다. 주식투자를 할 때는 거래할 때마다 세금을 냈는데 나도 모르게 탈세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과세당국에서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12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7년 국세행정포럼’에서 김병일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가상화폐 과세와 관련한 발제를 했다. 여기서 김 교수는 미국, 영국, 일본 등 가상화폐 제도가 있는 나라의 경우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등을 부과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트코인이 재화라면 비트코인을 살 때 부가가치세를 내야 하고, 비트코인이 화폐라면 내지 않아도 된다. 가상화폐가 재화에 가까운지 화폐에 가까운지부터 논의를 해야 하는데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의 성격 규정도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국제적 경향에 따라 가는 게 낫겠다는 취지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업자의 가상화폐 관련한 사업소득 등은 소득세·법인세로 과세가 가능하고, 가상화폐도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산이기 때문에 현행 세법으로 상속세·증여세 과세도 가능하다. 다만 구체적인 재산 평가방법에 있어서는 관련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개인이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켰을 경우에는 현행 소득세법상 과세대상으로 열거되어 있지 않아 과세를 하기 어렵다고 봤다. 국세청에서도 김 교수의 지적대로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과세하는 방향이 옳다고 보고 있다.
세금문제와 더불어 가상화폐 이용자 보호 문제도 법적인 사각지대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세우는 문턱이 낮고, 거래소에 대한 규제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간혹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빗썸, 코인원, 코빗 3개 업체가 한국의 대표적인 가상화폐 거래소다. 2014년 일본에서 10만명 이상의 피해자를 낳은 비트코인 분실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은 없었지만 이미 국내 거래소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7월에는 빗썸의 직원 PC가 해킹되는 바람에 일부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어떤 이용자들은 비밀번호까지 유출돼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일도 있었다. 11월 12일에는 거래량 폭증으로 빗썸의 서버가 다운돼 1시간30여분가량 거래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 사이 빗썸이 취급하던 가상화폐 비트코인 캐시의 가격이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몇몇 비트코인 캐시 투자자들은 빗썸 측에 대한 법적 대응을 통해 피해액을 배상받겠다고 나섰다.
당시 피해자인 이용진씨는 “거래소의 서버가 멈춘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한 시간이 넘게 거래가 안된 것이 처음이었을 뿐”이라며 “거래소에서 자신들의 서버가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서버를 증설하지 않고 방치를 했기 때문에 거래소 측의 과실이 있다. 그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전산장애에 관한 소송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변호사들도 쉽게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빗썸 서버다운 피해자들 중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을 진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씨 등 몇몇 피해자들은 적절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승소가 가능할지 변호사들마다 이야기가 다르다. 아직 여러 변호사들을 만나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12월 5일 국회 정무위의 가상화폐 공청회에 참석한 한경수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피해자들이 실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도 피해내용이 다 다르다. 어떤 분은 꾸준히 거래를 하다가 전산장애 때 거래를 못해서 돈을 잃은 분도 있고, 가상화폐를 갖고만 있다가 전산장애를 당한 분도 있다. 피해자마다 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피해를 인정받더라도 100% 배상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거래소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조차 없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가 전산장애가 아니라 아예 거래가 중단됐을 경우 이용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신뢰할 만한 사업자들이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기관으로부터 감독도 받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금을 갖춘 사업자 들이 거래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 변호사는 “가상화폐의 가치는 끝도 모르게 올라가고 있는데 지금은 신고만 하면 누구나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다. 자본금을 갖추거나 아니면 책임준비금을 확보한다든가 해서 정부가 인·허가를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 의원 10명은 지난 7월 가상통화를 법적으로 정의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가상통화를 취급하는 사업자의 경우 5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춰야 하고, 이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인적·물적 설비를 갖춰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사업자가 시세조종행위나 자금세탁 등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8월 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발의된 이후 여지껏 국회에서 전혀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 제도화 요구와 달리 정부는 가상화폐 열풍을 ‘투기’로 보고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9월 29일 금융위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 회의를 열고 모든 형태의 가상화폐 공개(ICO)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11월 28일엔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가상통화가 투기화되고 있다. 마약 거래 같은 범죄나 다단계 사기에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현상이나 병리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도 말했다. 12월 8일에는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국내 거래소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말도 나왔다.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을 총괄하는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 금지 보도에 대해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의 심각성과 대책에 대해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 중에 있으며, 아직 구체적인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한 증식하는 비트코인
전 세계에는 알려진 가상화폐만 1300종이 넘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가상화폐들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 가상화폐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엔 널리 알려진 가상화폐에서 하드포크를 통해 새로운 가상화폐를 분리해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포크란 쉽게 말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다. 포크는 다시 신버전과 구버전이 호환되는 ‘소프트포크’와 신구 호환이 불가능한 ‘하드포크’로 나뉜다. 소프트포크가 이뤄질 경우 채굴자를 제외한 다른 이용자들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가상화폐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반면, 하드포크가 이뤄진 경우 구버전과 신버전은 서로 다른 가상화폐로 나뉜다. 현재 가상화폐 시장에서 시가총액 3위(약 240억 달러)인 비트코인 캐시는 8월 1일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되어 생성된 것이다. 비트코인 캐시가 성공적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안착하자 하드포크를 통해 비트코인에서 분리해나가려는 많은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10월 24일에는 비트코인 골드가, 11월 24일에는 비트코인 다이아몬드가 새로 비트코인으로부터 하드포크를 통해 탄생했다. 12월과 내년 1월에도 비트코인의 하드포크로 탄생할 비트코인X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알려진 것만 해도 비트코인 플래티넘, 슈퍼비트코인, 비트코인 실버, 비트코인 우라늄, 비트코인 캐시플러스, 비트코인 갓 등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각 가상화폐별로 차이점은 있다. 비트코인 캐시는 블록의 크기를 1MB에서 8MB로 늘려 거래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골드는 전용 채굴기(ASIC)가 아니라 그래픽 처리장치(GPU)로 채굴할 수 있어 문턱을 낮췄다.
비트코인이 무한증식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가지 원인을 꼽았다. 우선 비트코인처럼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가상화폐가 갈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 없이 개인의 채굴로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는 시스템이고, 수백만 명이 비트코인을 이용하고 있다. 단순 이용자, 채굴업자, 개발자, 거래소 사업자 등의 이해관계도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비트코인의 주도적인 흐름에 동의하지 않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신규 코인이 점점 생기기 어려운 상황을 들 수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한국에서 가상화폐 공개(ICO)를 금지했다. 미국, 영국 등에서도 ICO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드포크가 가상화폐의 ‘분열’로 비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의 가격은 연일 상승하고 있다. 비트코인 캐시와 비트코인 골드도 가상화폐 생태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하드포크가 발생하면 기존 가상화폐 소유자들은 배당을 받는 것처럼 새로 생긴 가상화폐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처음 비트코인 캐시가 생겼을 때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떨어졌는데 이제는 학습효과가 생겨서 하드포크가 발생하면 오히려 호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비트코인X의 출현은 계속될 것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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