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비트코인 낳은 신기술 .. 금융 넘어 산업 전반 혁명의 불씨

류순열 2017. 12. 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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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거래장부' 블록체인 / 파급효과 어디까지 / 다가올 블록체인 시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8년 10월의 마지막 밤 역사적 논문 한 편이 세상에 공개됐다. ‘사토시 나카모토’ 명의의 ‘비트코인: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다. 가명의 저자는 “제3기관의 신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P2P(Peer to Peer)기반”이라고 소개했다. 비트코인 발행과 사용자 간 교환 과정에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 등 어떠한 중앙집중적 권력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혁명적 기술 덕분이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과 함께 세상에 등장했고,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첫 성공사례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많은 정보기술(IT)·금융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을 가능케 한 이 신기술에 주목했다.
“오 세상에 바로 이거야. 인터넷이 항상 갈구해왔지만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분산형 신뢰 네트워크가 우리 앞에 등장한 겁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해요.” 최초의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공동개발자이자 IT벤처업계 큰손인 마크 안드레센은 “블록체인은 컴퓨터과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근본적인 발명품”이라고 극찬했다. 

대체 블록체인이 뭐기에 세계적 IT리더를 그토록 감동시킨 것인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블록체인은 화폐 거래내역을 기록한 장부다. 핵심은 중앙집중형이 아니라 분산형이라는 점이다. 기존 금융거래는 금융회사의 서버에 거래기록을 보관하지만 블록체인은 가상화폐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의 컴퓨터에 저장된다. 그래서 ‘공공 거래장부’(Public Ledger)로 불린다. 거래 장부를 모든 사용자가 갖고 있으므로 해킹을 통한 위·변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보를 감추기보다 모두에게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보안성을 높인 역발상의 신기술인 셈이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심장은 10분 주기로 박동한다. 그 시간의 모든 거래가 검증돼 블록에 저장된다. 이 블록은 이전의 블록 뒤에 자전거 체인처럼 붙는다. 그래서 블록체인이다. 블록은 고난도 수학문제를 푸는 ‘채굴’(마이닝)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채굴자들은 채굴이라는 ‘거래증명’의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한마디로 블록체인은 지금까지 네트워크상에서 발생한 모든 거래의 총체다. 비트코인을 훔치려면 블록체인에 들어있는 모든 코인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블록체인은 그렇게 사용자 간 직접 거래에 신뢰를 불어넣었다.

압축하면 블록체인은 ‘거대한 신뢰 시스템’이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 연구센터장(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은 “전지구적 신뢰 컴퓨터”라고 표현했다. 문영배 나이스평가정보 CB연구소장은 “거래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미들맨(middleman·중매인)의 역할을 이제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보다 안전하게 하는 세상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세상을 뒤집는 혁명에 비유된다. “인터넷 등장만큼 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술”(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 “모든 분야에서 중앙집중형 모델을 사용자 간 모델로 재구성하는 혁명”(박성준 센터장),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인프라”(문영배 소장)라는 평들이 줄을 잇는다.

블록체인 생태계는 금융 분야에서 급속히 확산 중이다. 금융산업의 획기적 변화가 예상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서로를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두 당사자가 거래를 하고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 글로벌 금융이라는 거대한 동맥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블록체인 세상에서 독점 구조는 버티기 힘들다. 박 센터장은 “금융 부문에서 블록체인을 통한 개인간 거래가 활성화할수록 금융회사가 소멸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브로커, 금융전문 변호사도 예외가 아니다.

블록체인은 정치, 교육, 의료, 복지, 에너지 등 각 분야로 확산될 전망이다. 탭스콧 회장은 “블록체인은 파괴적인 기술로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이미 금융을 뛰어넘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블록체인 활용 사례들이 늘고 있다.

가능성 측면에서 의료정보 블록체인화를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지금은 교정치료를 받게 되면 해외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가 어렵다. 병원 간 진료기록 공유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에 나의 교정치료 과정이 기록된다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치료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이 횡령과 도난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기부나 원조문화의 불신을 걷어낼 수도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절차인 투표의 왜곡과 조작을 원천 차단해 정치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다. 이미 호주에서는 ‘중립투표블록’이라는 기관이 블록체인상의 투표를 활용해 민주주의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개혁 중이다.

공유경제(재화를 여럿이 공유해 사용하는 공유소비를 통해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는 경제활동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 기업들이 중개기업 없이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사업운용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임대차 계약의 경우 기간과 보증금을 구체화하고 양자가 확인할 경우 임대차 계약이 완료되는 식의 ‘스마트컨트랙트’가 블록체인 기술로 가능해진다.

아직 블록체인 세상이 활짝 열린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16∼2017년은 도입기였고, 향후 6∼7년간 성장과정을 거칠 전망이다. 걸림돌도 예상된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을 수 있고, 강력한 이익집단이 블록체인을 장악하려 들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과거 30년이 인터넷 시대였다면 향후 30년은 블록체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이 여는 세상은 과거보다 신뢰도가 높은 투명사회일 가능성이 크다. 탭스콧 회장은 “새로운 분산형 패러다임의 리더들은 모든 사람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경제적·제도적 혁신의 파도를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참고도서: 블록체인혁명(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 넥스트머니 비트코인(김진화), 블록체인 꽃길을 걷다(유안타증권)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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