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보통'과 '저격수' 움직여 비자금설 기획한 '몸통' 있었나

박주연·강진구 기자 2017. 12.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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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사정당국 관계자 “주성영 수사 검찰, 제보자 박주원 알았을 것”
ㆍ참여정부 때 제보 MB 정부서 터뜨려…‘촛불정국’ 돌파용 의구심

국민의당 박주원 최고위원의 ‘DJ 비자금 제보’ 의혹이 알려진 8일 당 최고위원·국회의원 긴급연석회의에서 안철수 대표(오른쪽)가 모두발언에 나서자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박지원 의원(왼쪽)이 누군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박주원 국민의당 최고위원(59)이 2006년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59)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DJ) 비자금으로 추정한 100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를 제공(경향신문 12월8일자 1면 보도)한 곳은 서울 강남의 박 최고위원 개인사무실이었다. 당시 박 최고위원은 주 의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DJ 비자금 관련 자료를 주겠다”며 강남사무실로 은밀히 와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당국 관계자 ㄱ씨는 8일 “주성영 당시 의원이 2008년 10월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뒤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06년 당시 박 최고위원에게 DJ 비자금 관련 제보를 받은 상황을 상세히 말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최고위원이 이날 자신을 ‘DJ 비자금 의혹 제보자’로 지목한 경향신문 보도에 대해 ‘주 의원과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DJ 비자금이라고 특정해서 준 적은 없다’고 해명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한 것이다.

ㄱ씨에 따르면 주성영 당시 의원은 박 최고위원의 전화를 받고 늦은 밤 직원 한 명을 밖에서 대기하게 한 후 박 최고위원 사무실에 혼자 들어갔다. 박 최고위원이 2005년 6월 검찰에서 퇴직한 뒤 주로 머문 강남 사무실에는 자료를 잔뜩 넣어둔 커다란 박스가 놓여 있었다. 주 의원은 박스 속에서 파괴력이 있다고 판단한 3건의 문건을 추려냈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 시절 비리 의혹’과 ‘중앙선관위 전자개표기 교체 비리 의혹’ ‘DJ 비자금 100억원짜리 CD 의혹’ 문건이다. 주 의원은 상지대 비리 의혹은 2006년 4월, 전자개표기 교체 비리 의혹은 2007년 2월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공개했다. ㄱ씨는 “주 의원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박스에서 꺼낸 DJ 비자금 관련 자료에 국회에서 공개한 CD사본과 모 은행의 발행확인서가 같이 들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ㄱ씨는 “주 의원이 처음에 제보자를 발설하지 않았지만, 검찰에선 이미 제보자가 박씨일 걸로 보는 분위기였다”고 덧붙였다.

관건은 박 최고위원이 어디서 자료를 입수했고, 왜 주성영 당시 의원에게 건넸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당시 박 최고위원은 국내 정보시장에서 손꼽히는 ‘정보통’이었다.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8월 자살하기 전날 만났을 정도였다. 공안검사 출신인 주 의원은 당시 ‘저격수’로 유명했다. 최고의 정보통이 최고의 저격수에게 몹시 민감한 ‘DJ 비자금’ 의혹 자료를 건네준 것이다. 당시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박 최고위원은 그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경기 안산시장에 당선됐다. 주 의원에게 자료가 건네지고 2년 뒤 국회에서 제기된 ‘DJ 비자금’ 의혹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추가로 정보가 재가공된 정황도 보인다. 두 사람 뒤에 이 사건을 기획하고 밀어붙인 ‘몸통’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주성영 당시 의원이 2006년 받은 자료를 왜 2년이나 지난 후 공개했는지도 의문이다. ㄱ씨는 “당시 주 의원은 자료 진위를 확인차 그랬다고 검찰에 밝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자료의 진위 확인에 2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힘들다. 2008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해 표적 세무조사를 하던 시기다. 국세청 전직 고위 간부 ㄴ씨에 따르면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DJ 비자금’을 캐겠다며 독일 국세청장을 직접 만나러 간 일도 있다(경향신문 11월24일자 1면 보도).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촛불집회로 인한 위기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에 이어 DJ 비자금설도 제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0년 검찰이 주 의원을 통해 제보자가 박 최고위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왜 진상파악에 나서지 않았는지도 밝혀야 할 사안이다. ㄱ씨는 “주 의원은 검찰 수사 초기 제보자에 대해 계속 함구하다 세간의 오해와 압박이 심해지자 2010년 비리 혐의로 수감돼 있던 박주원 당시 안산시장을 교도소로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한 후 검찰에 제보자를 밝혔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최고위원을 조사하지 않았다.

주 전 의원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검찰에 얘기한 것은 다 팩트(사실)”라며 “당시 내가 검찰에 한 진술은 모두 상부에 보고됐을 것이고 지금도 검찰에 일지 형태의 보고서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가 입수돼 정치권에 넘겨진 경위, DJ 비자금이라면서 100억원짜리 CD 의혹을 제기하게 한 ‘진짜 몸통’이 있었는지 의혹은 부풀고 있다. 진상을 밝혀야 할 공은 다시 박 최고위원과 검찰에 넘어갔다.

<박주연·강진구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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