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깊은뉴스]고된 노동에 성희롱..한 해 4만 명 목숨 걸고 '실습'

2017. 12. 8. 20:1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더 경험하기 위해 업체로 현장 실습을 나갑니다.

일년에 4만 명 넘는 학생들이 나서는데 견디기 힘든 처우를 당하면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종국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20살 여성 A씨. 1년 전 현장실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터집니다.

[A 씨 / 특성화고 졸업생]
"근로계약서도 안썼고, (사장님이) 청바지가 너무 딱 달라붙는다고 토요일이 근무 날이 아닌데도 나오라고, 자기가 바지를 사주겠다는 거예요."

결국 두달도 안돼 그만 두고 학교로 돌아갔지만 또 한번 울어야 했습니다.

[A씨 / 특성화고 졸업생]
"네가 퇴사하고 나온 거니까 네 잘못이라고 하면서 저한테 벌을 주는 거예요. 저를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계속 다니라고 권유를 하고 있더라고요."

A씨는 학교가 성희롱 사실을 숨기도록 강요했다며 교사를 고소했습니다.

[김광민/ 변호사]
"학교 선생님은 성추행 사건을 알게 됐을 때는 고소할 의무가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추행 성희롱 사유를 쓰지 못하도록 강요를 한 거죠."

학교 측의 입장은 어떨까.

[학교 관계자]
"아휴, (성희롱 사실을) 쓰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죠. 재취업을 위해서 인성 교육이라든지 다른 또… 이렇게 교육을 하는 건데"

기계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남학생. 손가락이 퉁퉁 부어있고 10바늘 넘게 꿰맨 자국이 선명합니다.

[김모 군 / 현장실습생]
"신경이랑 혈관이랑 이런데 다 끊어져서 옆에 째서 연결한 거거든요."

석달 전 공장에서 혼자 일하다 다친 뒤 아직도 손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현장실습이 아니라 현장노예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모 군 / 현장실습생]
1,2주는 학생 취급을 해주는데 그 다음부터는 노동자랑 다름없는 그런 취급을 해주셔서...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경험한다는 취지로 1963년에 도입된 현장실습.

그러나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특성화고 재학생]
"기계과 다니는데 요리쪽으로 나가는 선배들도 봤고. 설거지만 하고 오거나”

구직사이트를 통해 아무데나 나가기도 합니다.

[차모 씨/ C 특성화고 졸업생]
"반에 30명 중에 절반이 '사람○'을 통해서 현장실습을 나가서… 인터넷 검색해서 (실습 회사)홈페이지라도 나오면 다행이에요."

이렇게 나간 업체에서 제대로 대우받을 리 없습니다.

[현장실습업체 관계자]
"아니 뭘 시키냐고, 저렇게 작고 자그마한데 부러질까봐 뭐라도 시키겠냐고."

통신사에서 고객들의 계약 해지를 막는 일을 해야했던 현장실습생 홍모 양 .

"나 콜수 못 채웠어"

밤늦은 시간까지 업무에 시달리다 올해 초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딸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도 끝내 병을 얻어 얼마 전 딸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홍 양 아버지]
"국회의원이나 사회 누구나 전부다 그때만 반짝하고 말지. 사고 나면 또 난리가 나고. 내가 아무리 외쳐 봤자 뭔 소용이 있겠어요"

죽을 만큼 힘들지만 그냥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취업률을 중시하는 학교가 현장실습을 포기생을 곱게볼 리 없기 때문입니다.

[특성화고 학생]
"힘들어도 참고 다닐 수 밖에 없죠. 다시 복교하면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을 저희가 망치는 거니까. 후배들한테도 안 좋은 거니까."

어린 학생들이 잇따라 희생되자 정부는 근로중심의 현장실습을 폐지한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김상곤 / 사회부총리]
"학생을 노동력 제공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 취업형태의 운영 방식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겠습니다."

하지만 4년 전 발표된 개선안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김경엽 /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정책국장]
"교육부나 교육청이 주도하고 관리하는 현장실습은 유지하겠다는 건데. 저는 되 묻고 싶어요 기존에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관리 감독해야 될 사항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지켰는지."

실습생들의 진로는 고려하지 않은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거셉니다.

[최모 씨 / 특성화 고교생]
"교통사고 난다고 차 없애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요. 음주운전 한 사람을 처벌해야지 술을 없애는 건 그건 아니잖아요"

대안으로 일을 시키는 대신 업체의 전담지도자가 기술을 전수해주는 학습형 현장실습이 제시됐지만 이 역시 의문입니다.

[조성신 /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교사]
"기업 입장에서는 고급 기술자가 새로운 직원(실습생)을 교육한다면 생산은 생산대로 안 이뤄지고 인건비 등 비용은 비용대로 드는데…"

"늘 잘 웃던 내 친구 민호야. 결석 한번 없이 성실하게 학교 생활 하던 내 친구 민호야.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고 다짐하겠다던…"

지난달 숨진 고 이민호 군은 차가운 시신이 돼서야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살려줘 너무 더워. 아직 고등학생인데 기계 고장나면 내가 수리해야 해.

혼자 공장을 지켜야 했던 이군은 효도하고 싶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산업역군의 꿈을 꾸며 현장실습에 투입됐던 어린 학생들은 묻습니다. 왜 목숨을 걸고 일해야만 하느냐고, 그리고 얼마나 더 죽어야만 하느냐고.

채널에이 뉴스 변종국입니다.

bjk@donga.com

연출 김지희
영상취재 김한익
글 구성 전다정 장윤경
그래픽 김민수 양다은

Copyright © 채널A.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