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아랍 뒤덮는 분노 .. '금요 합동예배'가 분수령

이희경 2017. 12. 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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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불안 심화/서안·가자서 유혈충돌.. 50여명 부상/이스라엘 해안가로 팔 미사일 발사/요르단·사우디·튀니지도 강력 반발/WSJ "중동의 美 파트너들 등 돌려"/대화파 압바스 팔 수반 입지 위축/이달 말 예정 美와 회담 취소 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한 여파가 아랍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들이 거주하는 서안 및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유혈충돌이 빚어졌고, 미국과 긴밀한 관계인 요르단에서는 대사관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중동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게 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지만, 외신들은 오히려 대안 없이 팔레스타인을 혼란에 빠뜨리는 외교적 실책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미국서도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이 7일(현지시간) 시카고 도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 선언에 항의하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시카고=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 전역으로 시위 확산

7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 등 여러 도시와 가자지구에서 수백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돌을 던지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 당국은 최루가스와 플라스틱 공을 동원해 시위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50여명이 다쳤다. 이날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미사일 2발이 이스라엘 해안가를 향해 발사됐지만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이라크 등 반미 정서가 강한 국가는 물론 미국과 군사·경제적으로 협력했던 수니파 국가들에서도 트럼프 결정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 군사기지가 있는 요르단 수도 암만의 미국대사관 앞에 시민 500여명이 모여 “요르단에 미국 대사관은 없다”며 대사관 철수를 촉구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미국의 ‘무책임한’ 결정이 중동 평화를 급속히 후퇴시킬 수 있다며 이틀째 미국을 비판했다. 튀니지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튀니스 등에서 평화시위를 이어갔다. WSJ는 “미국이 중동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국가들과 이미 멀어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현재 시위 양상이 2차 인티파다(2000년 9월 발생한 반이스라엘 민중봉기)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만큼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금요예배 이후 중동 상황이 향후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라는 예측이 제기된다. 실제 튀니지 노동조합 등에서는 금요예배 이후 시민들에게 거리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한 6일(현지시간)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불태우고 있다.
◆예루살렘 선언으로 점점 사라지는 대화 가능성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데다 예루살렘을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하지 않는 등 정치·외교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지적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임에도 이스라엘을 기준으로만 문제를 바라봐 미국이 분쟁을 조정할 능력이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성명 말미에 대화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히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이런 독자적인 행보는 미국과 팔레스타인 간 외교단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AP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집권당인 파타의 고위인사인 지브릴 라주브는 이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팔레스타인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며 이달 말 예정된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회동 취소를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수석협상가 사에브 에레카트도 “‘2국가 해법’을 폐기해야 한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책이 무의하다고 밝혔다. 2국가 해법은 1993년 오슬로협정을 통해 나온 것으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발생하기 이전 상황, 즉 예루살렘 서쪽은 이스라엘이, 동쪽은 팔레스타인이 통치하는 방안을 말한다. 특히 외교와 대화를 중시하는 압바스 수반의 입지가 트럼프의 선언으로 급속히 위축된 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니얼 쿠르저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압바스가 미국과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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