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광풍 .. 한국은 '그라운드 제로'

박현영.정진우 2017. 12. 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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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세보다 프리미엄 23% 붙어
24시간 365일 거래 '중독성' 강해
일부 투자자들 새벽에 가격 확인
저금리 지속돼 마땅한 투자처 없고
북핵 리스크 등 정치 변동성도 한몫

직장인 천모(34)씨는 지난 3월 직장 동료 추천으로 암호화폐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천씨가 비트코인을 사는 데 쓴 돈은 첫 투자금 2500만원을 포함해 총 7000여만원.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 돈은 1억8000만원으로 불었다. 천씨는 “비트코인에 8~9개월 투자해 지난 8년간 직장 생활로 모은 돈보다 더 큰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일확천금을 벌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하고 투자자 카페에서 최신 정보를 얻느라 회사 생활에 소홀해졌다. 상사로부터 “비트코인에 신경 쓰느라 회사 일을 부업으로 여길 거면 사표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 비트코인은 급등락을 반복하며 가격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천씨의 일과는 이렇다. 오전 6시쯤 일어나자마자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한다. 출근길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식사하는 대신 온라인 카페 게시글을 확인하며 정보를 모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업무 중에도 수시로 가격을 확인하고 퇴근 후에는 곧장 집이나 근처 카페로 가서 암호화폐를 연구한다. 개·폐장시간이 있는 주식 시장과 달리 암호화폐는 24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쉽게 ‘중독’된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하면서 천씨 같은 ‘암호화폐 좀비’가 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10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이 10배 이상 오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비트코인 투자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유독 과열 조짐을 보인다.

7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에서 비트코인 열풍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 투하지점)’가 됐다”고 전했다. 투자 열풍 과열로 한국에서 비트코인은 최근 국제시세보다 최고 23%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거래됐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7일 오후 6시 현재 1비트코인 국내 가격은 1919만원으로, 세계 평균 시세(1643만원)보다 약 276만원 비싸다.

이는 한국 내 거래량이 많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6일 하루 동안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21%가 원화로 결제됐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불과하다. “한국이 자기 체급(역량)보다 과한 펀치를 휘두른다(punches above its weight)”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앞서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도 “전 세계에서 암호화폐 투자 열기가 한국보다 뜨거운 곳은 없다”고 보도했다. NYT는 “한국 인구는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원화 거래액은 달러 거래액보다 많다”고 전했다. 미국·중국 같은 곳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몇 년에 걸쳐 차근차근 성장한 것과 달리 한국 시장은 1년 전부터 급작스럽게 성장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유독 암호화폐 열풍이 강하게 부는 이유는 뭘까.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주변에서 암호화폐로 큰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생기면서 그에 따라가는 ‘동조현상’이 일어난다. 한편으론 장기 저금리 시대를 거치며 일반 서민 입장에서 투자할 곳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정학·문화적 요소 때문이란 견해도 있다. 블룸버그는 북핵 리스크, 대통령 탄핵사태와 같은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국내 투자 대신 어느 나라에서나 거래할 수 있는 ‘무국적’ 성격의 암호화폐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의 고위험·고수익 투자 성향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한국은 과거부터 주식 연계 파생상품 선호도가 높았고, 2011년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주식 파생상품 거래가 가장 활발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의 ‘투기성’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열풍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박 센터장은 “정부가 암호화폐 분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 중심을 잡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암호화폐 거래소 게이트코인 관계자는 “한국에서 비트코인이 지나치게 많이 거래되는 걸 감안할 때 이른 시일 안에 해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모집(ICO)을 금지한 데 이어 이달 초 암호화폐 주무부처를 금융위원회에서 법무부로 바꾸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암호화폐를 투기 수단으로 규정하고 규제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가치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를 투기 수단으로 규정하고 규제 일변도로 흐르는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박현영·정진우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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