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죠리퐁, 맛과 건강 챙긴 한국형 시리얼

함지현 2017. 12. 7.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영달 회장, 뻥튀기에서 힌트 얻어..1년간 연구 거듭
'즐거운·엄청난' 뜻의 '죠리'에 튀겨질 때 '펑'소리 더해 이름 지어
끊임없는 변화로 고객에 다가가..총 19억봉지 팔려
이데일리DB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 “뻥이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로 경제적으로 피폐했던 1960년대. 어느 길가에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뻥튀기 아저씨의 소리에 아이들은 귀를 틀어막는다. 아저씨가 쇠꼬챙이로 기계의 문을 열면 ‘펑’하는 소리가 온 거리에 울려 퍼진다. 곧이어 달큰한 뻥튀기 냄새가 퍼질 즈음 삼삼오오 몰려든 아이들은 뻥튀기 부스러기를 얻어먹기도 했다. 한입에 털어 넣으면 까칠함이 침과 함께 녹아 내리던 그 맛. 뻥튀기는 먹을 것이 부족했던 당시 아이들의 심심한 입과 고픈 배를 채워주는 일등 공신이었다.

다만 당시 뻥튀기는 튀기는 온도와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식감이 좋지 않았다. 영양소도 고루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뻥’튀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크라운산도’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크라운제과(264900)의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당시 크라운제과 상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뻥튀기는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인기 간식인 만큼 조금만 변화하면 식사 대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영양이 풍부한 과자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미국 출장길에서 미국인들이 아침 식사로 시리얼을 먹는 것을 보고 ‘한국식 시리얼’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몰두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윤 회장이 주목한 뻥튀기는 한국형 시리얼 ‘죠리퐁’으로 진화해 세상에 나왔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사진=크라운제과)
◇ 윤영달 회장, 열정으로 일궈낸 ‘죠리퐁’…경쟁자 없는 ‘원톱’

1960년대는 먹고 살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 아이들은 영양 부족과 불균형에 시달리기도 했다. 윤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먹기 간편하고 영양가 좋으면서도 저렴한 한국식 시리얼 과자 개발을 시도했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뻥튀기. 뻥튀기의 식감과 영양 성분을 보완하면 미국, 유럽 등에서 일상적인 식사 대용으로 자리 잡은 시리얼과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윤 회장은 집무실에 뻥튀기 기계를 사와 직접 여러 곡물을 튀겨가며 연구를 거듭했다. 당시 주로 먹던 옥수수·보리·좁쌀·팥·밀·쌀 등을 튀기고 또 튀겼다. 튀긴 곡물을 식사 대신 자주 먹어 끼니를 거르는 것도 허다했다. 밤새도록 기계를 돌려 기계가 터지는 바람에 묵동 공장을 다 태우는 사건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약 1년간의 연구 끝에 찾은 답은 ‘밀쌀’. 튀겼을 때 맛과 식감은 물론 포만감도 높고 영양도 좋았다.

특히 물리학을 전공한 윤 회장은 뻥튀기 기계 원리를 바탕으로 소형 수동 퍼핑 건(Puffing Gun)을 직접 만들었다. 퍼핑이란 기름에 튀기지 않고 고온·고압으로 순간적으로 팽창시켜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 하는 기술을 말한다. 1995년 모든 공정이 자동화됐지만 처음엔 수동식 기계였다.

밀쌀을 퍼핑 했을 때 느껴지는 씁쓸한 맛을 잡아 줄 수 있는 당액도 개발했다. 당액을 코팅하자 우유와 함께 먹었을 때 더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72년 8월 마침내 한국식 시리얼이 완성됐다

윤 회장은 제품의 이름에도 본인의 신념을 담았다. ‘내 아이에게도 먹일 수 있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아 ‘즐거운, 엄청난, 굉장한, 훌륭한’이란 뜻의 죠리(JOLLY)와 튀겨질 때 ‘펑’하고 나는 소리를 조합했다.

죠리퐁은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반적으로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당시 단순한 간식을 넘어 든든한 식사 대용으로도 먹을 수 있어서였다. 또 밀쌀의 고소함, 바삭함에 달짝지근함이 어우러진 맛이 우리 입맛과 잘 맞았다. 뻥튀기와 비슷해 친숙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엄청난 인기에 도매상들이 현금을 들고 죠리퐁 공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물량이 한정돼 있어 선착순으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공장을 풀가동했지만 물량이 부족했다.

당시 유사품도 10여 개가 출시됐다. 하지만 원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던 것은 여름 장마철이었다. 유사품은 고온다습한 날씨에 과자가 눅눅해지고 당액이 녹아 서로 들러붙는 경우가 잦았다. 시간이 지나면 덩어리가 뭉쳐져 딱딱하게 돼 먹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죠리퐁은 달랐다. 비법은 ‘네팅(netting) 건조’ 방식이었다. 코팅한 원료를 올려 위아래로 건조하는 이 방식 덕에 한알 한알 바삭한 맛을 유지했다.

죠리퐁의 히트로 크라운제과는 크라운산도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마침내 1976년 거래소에 상장했다.

출시 초기 패키지를 재현한 추억의 죠리퐁(사진=크라운제과)
◇ 끊임없이 변화로 소비자에 다가간다

1972년 출시돼 약 45년간 사랑을 받아온 죠리퐁은 현재까지 총 19억 봉지가 팔렸다. 국민 1인당 평균 36봉지 이상 먹은 셈이다. 제품을 모두 이으면 지구를 9바퀴 반 돌 수 있다. 누적 매출액은 6300억원에 달한다. 한때 죠리퐁 한 봉지에 몇 알이 들어있는지가 이슈가 된 바 있다. 회사 측이 정확히 밝힌 양은 76g 죠리퐁 한 봉지 기준 1636알이다.

죠리퐁은 이처럼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생산이 중단되거나 큰 위기에 처한 적은 없다. 오히려 IMF로 회사가 어려울 때 효자제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양 많고 실속 있는 간식으로 각광받으며 매출이 상승하기도 했다.

죠리퐁의 장수 비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소비자에게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다.

크라운제과는 색다른 맛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애플죠리퐁(1983), 땅콩죠리퐁(1984), 죠리퐁라이트 커피맛(1996), 와글와글(1996), 코코아죠리퐁(2010), 마시는 죠리퐁 초코샷(2012)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맛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중요한 부분. 현재 죠리퐁 100g당 식이섬유는 7.2g이 함유돼 있다. 이는 토마토 3.7개, 당근 2.8개, 바나나 5.5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조리퐁을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도 이어졌다.

그냥 과자로 먹어도 좋지만 우유에 타먹어도 맛있는 죠리퐁의 특성을 반영해 1995년 종이로 만든 숟가락을 봉지 안에 동봉했다. 시리얼로 먹는 경우가 많아 대용량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자 1998년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종이 숟가락을 넘어 진화된 플라스틱 숟가락을 도입했다. 드림볼스푼이라는 이름의 이 숟가락에는 조립완구가 붙어있었다. 32개를 모으면 ‘드림볼’ 공이 완성돼 모으는 재미와 공을 완성시키는 재미를 더했다.

2012년에는 손을 대지 않고 뜯자마자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세로로 긴 타입의 ‘마시는 죠리퐁 이지샷’ 패키지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우유와 잘 어울리는 맛으로 인해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레시피를 발굴해 즐기기도 한다. 죠리퐁 라떼와 죠리퐁 셰이크, 죠리퐁 빙수, 견과류와 꿀 등을 섞어 굳힌 죠리퐁 에너지바 등이 대표적이다.

이데일리DB
크라운제과는 국내 뿐 아니라 죠리퐁의 세계무대 진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2013년 국내 제과업계로서는 최초로 싱가포르 무이스 할랄 인증을 획득해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전세계 무슬림을 겨냥해 미국, 유럽 등으로도 수출하고 있다.

크라운제과는 최근 제과업계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에 맞춰 죠리퐁에도 다시 변화를 줄 채비를 하고 있다. 특히 맛이나 형태 등에 변화를 준 신선한 모습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윤영달 회장은 “우리 기술이 없던 시절, 우리 아이들에게 영양 간식을 만들어주겠다는 뚝심 하나만으로 만든 제품이 죠리퐁”이라며 “과자산업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려울 때도 기회는 찾아왔다.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함지현 (hamz@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