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만이네요, 태안 앞바다 굴 까는 맛"

글·사진 권순재 기자 2017. 12. 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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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기름 유출’ 이겨낸 마을

“임자, 이런 날이 오네” 지난 5일 오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마을 주민 김형수씨(오른쪽)가 아내 박희자씨와 함께 오전에 채취한 굴을 손질하고 있다. 의항리는 2007년 태안 기름 유출사고 당시 모항리에 위치한 만리포해수욕장과 함께 기름 피해가 컸던 곳이다.

지난 5일 오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마을 주민 박희자씨(72)가 남편 김형수씨(76)와 함께 비닐하우스 안에서 오전에 채취한 굴을 까고 있었다. 박씨는 굴을 까는 도구인 조새로 굴 껍데기 모서리를 쪼았다. 박씨는 “맛 한번 보라”며 통통한 굴을 하나 건넸다. 신선하고 청량한 갯내가 입안 가득 감돌았다.

박씨는 “기름 유출사고 이후 한동안 굴이 제대로 자라지 않다가 2013년부터 굴을 캐기 시작했다”며 “올해 굴은 10년 만의 풍작으로 잘 영글었다”고 전했다. 박씨는 이어 “3년 전만 해도 굴의 상품성이 조금 떨어졌는데 이제는 바다가 기름 유출사고 이전으로 회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굴은 바닷속 유기물을 걸러 먹고 살아 수질오염에 민감하다. 굴이 잘 자란다는 것은 바다가 깨끗해져 유기물이 늘어나고 건강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7일은 태안에서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되는 날이다. 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선과 정박 중인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했다. 유조선 오일탱크에 구멍이 나면서 유조선에 실린 원유 1만2547㎘가 바다로 쏟아졌다.

이 사고로 충남 6개 시·군의 해안 70.1㎞가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기름띠는 조류를 타고 전남과 제주도 인근의 섬까지 375㎞나 퍼졌다. 사고가 나자 전국 각지에서 123만명의 자원봉사자가 현장을 찾아 밀려온 기름을 손으로 퍼내고 갯바위를 닦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양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는 빠르게 개선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유류오염센터가 진행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유출사고에 따른 생태계 영향 장기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2008년 태안지역 전체 해안의 69.2%에 달했던 잔존유징(기름이 지표면 아래로 스며든 정도)은 2014년 기준 0%로 바뀌었다.

충남 앞바다에서 대표적으로 잡히는 꽃게, 대하 등의 어획량도 회복됐다.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충남 꽃게 어획량은 2007년 4298t에서 사고 이듬해 3997t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5019t으로 늘었다. 대하의 어획량도 2007년 378t에서 2008년 89t으로 급감했지만, 지난해에는 499t으로 증가했다.

태안의 해안과 어장은 예전 모습을 되찾았지만 주민 건강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역학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태안군보건의료원 환경보건센터가 분석한 ‘태안지역 암 발생률’을 보면, 태안 주민의 전립선암 등의 발병률은 인구 규모 등이 비슷한 다른 해안지역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태안 남성의 전립선암 발병률은 2004∼2008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12.1명에서 2009∼2013년 30.7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충남 서천군(23.4명), 전북 부안군(28.7명), 전남 고흥군(22.8명)보다 높은 수준이다. 박명숙 환경보건센터 연구팀장은 “기름 유출사고 이후 현재까지 피해 주민 건강 영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기름 유출과 건강 간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글·사진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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