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중국은 됐고 남조선 나오라우"

남문희 기자 입력 2017. 12. 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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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이 방북 기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지 못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대 발표'를 이어가면서 중국 특사의 방북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11월17~20일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의 방북을 시진핑 주석의 ‘중재 외교’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중재 외교는 미국과 북한의 요구 사항을 중간에서 중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쑹타오 부장 방북 이틀 전 11월15일(미국 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대 발표’로 중국의 중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11월8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쌍중단(freeze for freeze)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에 동의했다”라고 밝혔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중국의 중재안이다. 중국이 미국과 북한 양자의 요구 사항을 절충해 제시한 중재안으로 북한도 동의한다. 그런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이 중재안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필 그 내용을 중국의 대북 특사 방북을 코앞에 둔 시점에 발표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11월1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이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과 회동했다.

중국이 쌍중단을 대체할 새로운 중재안을 준비한 것도 아니라서 쑹타오 부장의 중재 외교는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다. 남은 건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의 당 대 당 외교뿐이었다. 쑹타오 부장이 북측에서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리수용 국제부장만 만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궁금한 점은 미국의 태도다. 쑹타오 부장 방북 하루 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낸다. 큰 움직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라고 트위터에 썼다. 마치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한 뉘앙스였다. 정말 기대했을까? 그렇다면 특사 방북 이틀을 앞두고 중재안을 무력화하는 발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11월16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발언 역시 묘한 울림을 주었다. 그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무기를 수출하지 않으면 대화를 위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며 미국 측 대화 조건을 제시했다. 전날 트럼프 발언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역시 중국 특사의 방북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이전 행정부와 달리 중국에 북한과의 대화 중재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과 2~3개의 대화 채널을 가지고 있다”라는 ‘깜짝 발언’으로 주목을 끈 지난 9월30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면담한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이 “중국이 중재한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미국의 직접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압박이지 중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중국이 중재해 북·미 대화가 이뤄지면 중국의 영향력을 키워주는 꼴이 된다. 미국이 직접 북한과 채널을 열어 주도하거나 부담이 덜한 러시아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의도가 이번에도 드러났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 직접 대화의 실상은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은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10월 말로 예정됐던 오슬로 1.5트랙(반관반민·半官半民) 대화가 무산된 이래 의미 있는 대화는 더 이상 없다고 할 수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11월10일 베이징에서 베트남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한과 2~3개 채널이 가동 중이고 첫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 속에 북·미 대화의 실상이 담겨 있다. 채널은 유지되나 실속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미국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AFP PHOTO 11월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시아 순방 관련 대국민 보고를 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의 중재 아닌 압박 원해

북·미 대화는 어디에서 막혔을까? 지난 10월25일자 미국 NBC 방송은 조지프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이례적 행동’에 대해 보도했다. 그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외교 노력이 막바지인데 백악관이 외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라며 하소연했다고 보도했다. NBC는 시시때때로 터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대북 발언과 정제되지 않은 트윗이 틸러슨 장관이나 고위급 특사 파견 등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힘겹게 한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그 자세한 내막을 북·미 간 1.5트랙 대화에 참여한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국장이 11월13일자 <폴리티코>와 인터뷰하면서 밝혔다. 디매지오 국장은 자신이 6월 평양에 갔을 때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했다”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8월에 최선희 국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대화를 하려 했지만 북한에 억류 중인 3명의 미국인 문제 때문에 틀어졌다고 한다. 그다음 북·미 간 대화 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북한에 대한 “완전 파괴” 발언 이후 이뤄졌다고 한다. 북측에서 트럼프 발언의 진의가 뭔지, 특히 ‘트럼프의 최종 단계’가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디매지오 국장은 11월7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한 관리들은 핵무기 추구가 북한의 자위권 차원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재앙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대화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꼬마 로켓맨”이라거나 “작고 뚱뚱하다”라고 모욕하면서 대화의 창이 점점 좁아졌다고 한다. 디매지오 국장은 <폴리티코>와 인터뷰하면서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트랙 2(민간 채널) 접촉의 내막을 이제 밝혀야 할 만큼” 대화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태임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 NBC 방송이 조지프 윤의 하소연을 보도한 다음 날 일본 TBS 방송은 최선희 국장과 조지프 윤 대표 사이 개최될 예정이었던 10월 말 오슬로 회담이 북측의 요구로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북·미 대화에 대한 북한의 지금 입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은 현 시점에서 북·미 협의를 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를 강요하는 불평등한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즉 ‘핵 포기를 요구하는 대화에는 응하지 않으며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게 북한의 속내다. 미국의 전략무기 전개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에 북한도 위협감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건 맞다. 지난 8월이나 9월처럼 ‘말 폭탄’을 주고받는 국면은 원치 않는다. 지금은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미국 본토까지 연장하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새롭게 염두에 둔 파트너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지난 10월20일부터 이틀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핵비확산회의에 참석한 최선희 국장의 태도가 이를 암시한다. 최 국장은 ‘미국에는 강경, 일본에는 냉담, 한국에는 대화의 여지(<아사히 신문> 10월24일자)’를 남겼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우리 정부 관계자도 “한국에 대해서는 발언을 굉장히 조심했고 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라고 밝혔다. 해외의 북측 관계자가 참여하는 국제 학술회의를 기획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한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당분간 활로를 열겠다는 것이 북한의 새로운 방향인 것 같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한국 외교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내 끝에 찾아온 ‘외교의 시간’이 북한의 시간 벌기에만 이용당하고 끝나지 않도록 종합적이고 치밀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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