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제 패트리엇이 예멘 미사일 격추? 증거 없다"

이경희 2017. 12. 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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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예멘 반군이 쏜 미사일 요격" 주장
NYT, 전문가 영상 분석 결과 "탄두 못 맞혀"
탄두는 목표대로 리야드 국제공항 타격
미 국방부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 시스템. [AP=연합뉴스]
사우디 아라비아는 지난달 4일(이하 현지시간) 예멘 '후티' 반군이 발사한 부르칸 H2 장거리 미사일을 수도 리야드 상공에서 격추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사우디에 제공한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성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미사일 탄도 착륙 지점 분석 결과 격추 증거는 없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국영 언론의 발표 다음날, 일본으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일본도 해당 시스템을 사용하는 14개국 중 하나다.

"우리 시스템이 미사일을 공중에서 때렸다.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지 보여준다. 누구도 우리가 만든 걸 못 만들 것이고, 이제 우리는 전세계에 그걸 팔고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오른 타격 사진과 영상 분석에 따르면 이 같은 이야기는 틀렸을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전문가 연구 그룹이 증거를 분석한 결과 미사일 탄두는 사우디 방어체계의 방해를 받지 않고 목표물인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 바로 옆을 타격했다.

탄두는 국내선 터미널 근처에서 폭발해 승객들이 자리에서 뛰쳐 나올 정도였다. 부르칸 H2는 중동을 통과해 600마일(약 970㎞)을 비행했다.

사우디 당국은 NYT의 문의에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몇몇 미국 당국자들은 사우디가 미사일의 어느 부분이라도 타격한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타격 증거가 전혀 없어서다. 오히려 빠른 속도와 힘 때문에 탄두와 몸체가 분리됐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미사일 타격 능력을 수년간 키워왔다. 그들은 이란과 북한에 대응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 기술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왔다.

미국 미들버리 국제관계연구소 제프리 루이스는 "정부가 시스템의 효용에 대해 거짓말을 했거나, 오보를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미사일. 2012년 자료 사진. 이란은 예멘과 북한 등의 미사일 개발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사우디가 미사일을 발사한 뒤 파편이 리야드 시내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넓은 부분에 집중 투하되는 게 포착됐는데, 이는 이븐 칼던 스쿨 옆 주차장이었다. 또 다른 영상에선 고속도로에 떨어진 파편이 포착된다. 파편이 흩어진 거리가 광범위한 건 폭발이 그만큼 위력적이었다는 뜻이다.

버간 2호는 목표물 근처에서 탄두와 몸체가 분리되도록 설계된 미사일이다. 몸체가 분리된 뒤에도 작고 단단한 탄두는 목표물을 향해 계속해서 비행한다.

사우디 정부는 미사일을 요격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이 증거로 제시한 리야드 시내에 떨어진 파편에서 탄두는 없었다. 요격을 했다 쳐도 탄두는 못 맞히고 이미 분리돼 땅으로 떨어지는 미사일 몸체만 맞췄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일부 미국 관료는 몸체조차 요격했다는 증거가 없고, 비행 압력 때문에 조각 나 떨어졌을 뿐이라고도 말했다.

리야드 시내에서 미사일 파편이 떨어지던 당시, 리야드 국제공항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한 남자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폭발 직후의 공항 영상에서 사람들은 일제히 창가로 다가갔다. 구급차가 달려오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도 영상에서 포착됐다. 후투 반군 대변인은 미사일이 공항을 목표물로 잡았다고 발표했다.

NYT는 미국 정부는 과거에도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효과를 과장해왔다고 지적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은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을 거의 완벽하게 방어했다고 주정했지만 2년 뒤 공개된 후속 분석에 따르면 거의 모든 방어는 실패했다.

패트리엇은 미 육군의 탄도탄 요격 미사일로 중고 고도를 방어하는 시스템이다. 잇단 미사일 전쟁이 이어지자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실전에 배치하기로 했다. 사드를 사들여 자국에 배치하는 첫 사례다. 사드는 낮은 고도에서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패트리엇과 달리 대기권 밖에서 요격한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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