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애착손상 못 알아채면 '정서적 흙수저' 된다

2017. 12. 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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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전문가들이 말하는 '애착손상'

[한겨레]

지난달 11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감정코칭협회 학술대회에서 마크 라이닝턴 박사가 ‘아동과 성인의 애착과 트라우마 치료’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왼쪽은 통역을 맡은 최성애 에이치디(HD)행복연구소장.

대형 서점 ‘자녀교육’ 코너에 가면 애착육아에 관한 책이 눈에 띈다. 애착은 대부분 자존감과 관련 있으며 어릴 때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아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나와 있다.

‘애착손상’은 보통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 결핍으로 발달 트라우마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 겪는 증상이다. 원초적 불안감과 불신감 때문에 성숙한 자아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해 ‘정서적 흙수저’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 학생들 간 언어폭력과 집단폭행 등 심각한 사고가 잇따랐다. 피해자를 때리다가 멍이 든 자신의 주먹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자랑삼아 올리거나,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를 보며 웃고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애착손상을 입은 이들이 모두 폭력적이진 않지만 폭력적인 사람들 가운데 애착손상을 입은 이들이 많다”고 했다. 사람들은 애착 형성은 중요시하지만 이미 생긴 애착손상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는다.

주양육자와 정서적 유대감 부족으로
불안·불신감…자아정체성 형성 못해
애착손상 전문가 라이닝턴 박사 방한
감정적 어려움 왜, 얼마나 겪는지 등
‘알아차림’ 통해 아이 회복 도와야

지난달 11일 서울 교대에서 열린 감정코칭협회 학술대회에 참석한 마크 라이닝턴 박사가 강연이 끝나고 최성애 에이치디(HD)행복연구소장과 이야기나누고 있다.

지난달 11일 감정코칭협회가 ‘감정코칭과 애착’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감정코칭은 감정 문제를 인식하고 그 상황을 통해 올바른 감정발산법과 표현법을 가르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뜻한다. 학술대회에서는 ‘아동과 성인의 애착과 트라우마 치료’를 주제로 마크 라이닝턴 박사의 특강도 열렸다. 그는 애착 연구의 세계적 기관인 영국 존 볼비 센터 이사장으로, 애착 기반 정신분석 심리치료사다. 복합 트라우마가 있거나 학대를 당한 지적장애 아동과 성인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하고, 런던교육청에서 자폐, 에이디에이치디(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지적장애 청소년 전문치료를 진행했다. 에이치디(HD)행복연구소장 최성애 박사가 통역을 맡아 애착손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애착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깊고 지속적인 유대감이다. 애착손상은 영유아기에 증상이 두드러지지 않아 ‘숨겨진 트라우마’라고 불리기도 한다. 라이닝턴 박사는 “발달 트라우마라는 카테고리 안에 애착손상이 있다. 하지만 발달 트라우마는 애착과 상관없는 이유로 외상을 입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애착손상은 돌봄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 최 박사는 “발달 트라우마는 선천적인 게 아니라 어린 시절 아이가 정상적 발달을 위해 필요한 정서적 돌봄이 없을 때 생긴다. 이와 반대 증상이 ‘사고 트라우마’다. 성폭행이나 학대 등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 벌어질 때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이닝턴 박사는 양육자가 아이를 기를 때 ‘가용성’과 ‘반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용성은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파서 힘들어 달려갔을 때 ‘누가’ 있는지를 의미한다. 요즘은 사회에서는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부모는 일하느라 집에 없는 경우가 많다. 반응성은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뜻한다. 양육자가 상처받은 아이에게 “놀랐구나”, “많이 아팠겠다”고 반응해주지 않고 차갑게 대하거나 무시하면 아이는 위축되거나 문제를 회피해버릴 수 있다.

그는 “실제 상담해보면 집도 잘살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어릴 때 부모가 돈 버는 데만 집중해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 부자가 되기 위해 부모들 스스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른 셈이다. 교사도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볼 때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가정형편을 따질 게 아니라 가족의 친밀감이나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최 박사는 “한국 사회도 50~60년 동안 경제 성장에 올인해왔다. 일과 돈에 집착해 아이를 어린이집과 학원에 내맡겨 애착손상이 대량으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두 박사는 “가정이나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애착손상을 알아차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에 따르면, 학교 양호교사나 전문상담교사가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이해하고 다독여줄 수 있게 감정코칭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아이들끼리 토론하며 결론을 도출해볼 수도 있다. 대충 덮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스스로 깨닫게 하고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최 박사는 아이와 상담할 때 ‘접점 찾기’부터 시작한다. 상처나 불신감이 큰 아이들은 대부분 상담자를 잘 믿지 않는다. “자해를 하며 자살 시도했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찾아왔다. ‘왜 그랬니’, ‘학교에서 뭘 잘못했니’가 아니라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는 ‘화가 나 있다’고 했다. ‘전에 정신과 진료받고 약을 먹은 걸 알고 애들이 미쳤다고 했기 때문에 이런 데 오기 싫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대뜸 “낚시”라고 했다. 최 박사는 부모의 허락을 받아 아이와 인천에 가서 낚시하는 걸 보고 왔다. 이후 아이는 그날의 일과 감정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부산에 살다 부모가 이혼해 서울에 왔는데 아빠랑 전에 낚시를 많이 갔었다고 했다. 낚시란 단어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한테 혼날까 봐 연락하지 못한 서운함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접점 찾기는 장점 찾기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잘하고 흥미를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을 인정해주는 걸 알고 가까워지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그렇다고 애착손상의 원인이 이들 탓만은 아니다. 설령, 부모 자신이 어릴 때 올바른 애착관계를 형성했던 경험이 없더라도 아이와 함께 노력하면 애착손상을 치유할 수 있다. 최 박사는 “모르면 배우면 된다. 중요한 건 아이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하기 때문에 부모와 아이 모두 새로운 경험을 통해 손상된 뇌를 회복할 수 있다. 감정코칭, 회복 탄력성(고난과 역경에 대처하는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해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훈련이 애착 증진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라이닝턴 박사도 애착 문제를 이야기할 때 누구 탓이냐를 따지기보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애착은 유산처럼 물려받은 부가 아니라 ‘획득된 안전’”이라며 “애착손상을 겪었다면 심리치료나 애착 기반 프로그램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가면 된다. 가정에서 힘들면 학교나 회사 동료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했다.

애착손상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최 박사는 남편 조벽 교수와 함께 쓴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흙수저, 금수저가 이슈다. 잘나가는 부모로부터 부를 거저 받은 사람을 경제적 금수저라고 부른다. 돈은 많지만 집에선 서로 싸늘하고 갈등이 많다면 그 아이들은 ‘정서적 흙수저’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경제적 금수저를 추구해왔다면 이제는 서로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서적 금수저를 추구해야 한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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