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상비약이 뭐길래..약사 자해소동까지
국민편익보다 밥그릇 지키기 비판에도 약사들 거세게 반발
"약물 오·남용 위험 심각"지적..미국은 대부분 슈퍼마켓 판매
4일 보건복지부는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인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제5차 회의를 열고 속쓰림에 쓰는 제산제 '겔포스'와 설사를 멎게하는 지사제 '스멕타'의 편의점 판매 허용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강봉윤 정책위원장이 자해를 시도하는 돌발상황이 연출되면서 회의가 전면 중단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오늘 회의에서 결론을 내릴 계획이었지만 위원회 의견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다음 회의를 열기로 했다"며 "제6차 회의는 이달 중순 이후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 수십 명은 이날 새벽부터 회의가 열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안전상비약 제도 철폐와 품목조정 논의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안전상비약이란 의사 처방 없이 환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중 약국이 아닌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품목을 말한다. 약국이 문을 닫는 야간이나 공휴일에도 소비자들이 필요한 의약품을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2012년 11월부터 시행됐다. 약사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이 성분·부작용·함량·제형·인지도 등을 감안해 20품목 이내로 안전상비약을 지정할 수 있다.
현재 편의점에서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4개 효능군, 13개 안전상비약이 판매되고 있다. 복지부는 편의점 판매 품목을 확대하거나 품목은 유지하되 효능군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이번에 안전상비약에 포함될 예정이었던 겔포스와 스멕타는 그간 여론조사 등에서 소비자들의 편의점 판매 허용 요구가 높았던 제품들이다.
그러나 국민 편익을 도외시하는 밥그릇 지키기라는 일각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편의점 판매 확대로 영업에 타격 받을 것을 우려한 약사단체는 "약물 부작용과 오·남용 위험이 커진다"며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의약품 편의점 판매금액은 2013년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안전상비약 판매금액은 285억원으로 전년 239억원 대비 19% 증가했다. 최근 3년간 평균 성장률만 28%를 넘어선다. 같은 기간 부작용 보고 건수는 123건에서 367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판매 1위인 진통제 타이레놀과 관련해 설사·구토·불면증·간염 등 부작용 보고가 많았다.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은 "현재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은 편의점주나 아르바이트생들이 판매하고 있다"며 "전문가의 복약지도가 전무해 안전성뿐만 아니라 오·남용에도 무방비"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의약품 판매는 무엇보다 안전성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며 "국민 편의를 위해서는 편의점 판매품목을 늘리는 대신 심야시간에도 문을 여는 공공약국 확대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국민편의성을 위해 편의점 상비약 판매품목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안전상비약에 현재 포함돼 있지 않은 지사제와 제산제, 알레르기를 완화하는 항히스타민제, 화상연고 등을 추가할 예정이다.
최상은 고려대학교 교수팀 연구용역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약 중 43%가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 사이에 판매됐다. 토요일과 일요일 판매량도 39%에 달했다.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에 상비약 판매가 많다는 점에서 국민 편의성 제고를 위해 편의점 상비약 판매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복지부 주장이다. 안전상비약 부작용 우려도 전체 의약품 부작용 증가세를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의약품 부작용 보고 건수는 2013년 18만3260건에서 2016년 22만8939건으로 늘어났다. 이 중 안전상비약과 관련된 부작용 건수는 전체의 0.1%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일반의약품 판매가 대부분 슈퍼마켓에서 이뤄지고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약국외 의약품 판매 비중이 높다"며 "한국도 선진국 기준에 맞춰 안전상비약 접근성을 높이되 소비자에 대한 의약품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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