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흥국 퇴출, 진보성향 연예인 탄압 물타기
[경향신문] ㆍ국정원, 2011년 작성 ‘MBC 협조 결과 문건’ 확인
ㆍMBC, 김미화씨 퇴출 시점에 ‘보수성향’ 김씨도 DJ 배제
ㆍ당시 사측 “스스로 하차”에 삭발했던 김씨 “지나간 사건”
가수 김흥국씨(58·사진)는 2011년 6월12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두시 만세>에서 하차했다. 방송인 김미화씨 등 정부에 비판적인 연예인을 좌편향으로 분류해 MBC에서 퇴출시키던 시점이었다. MBC는 “김흥국씨가 일신상의 이유로 스스로 하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흥국씨는 “라디오본부장으로부터 ‘선거 유세현장에 간 게 문제가 됐다’며 하차 통보를 받았다”며 사실상 퇴출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후 서울 여의도 MBC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삭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과 MBC가 정부에 비판적인 연예인 무더기 퇴출에 대한 물타기용으로 보수성향의 가수 김흥국씨를 내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다. 연예인 퇴출 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김씨를 희생양으로 활용한 것이다.
3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2011년 6월15일 국정원 작성 ‘MBC 대상 종북성향 MC·연예인 퇴출조치 협조 결과’ 문건을 보면, 국정원 2국은 김씨가 하차하고 이틀 뒤인 6월14일 김재철 당시 MBC 사장(64)의 측근이던 보도부문 간부 ㄱ씨에게 김씨 퇴출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자 ㄱ씨는 “MBC 경영진이 이번에 ‘보수성향’인 김흥국의 퇴출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전격적으로 쫓아낸 것은 매끄럽지 못했음을 인정한다”면서도 “이번 김흥국 퇴진은 MBC 내 종북성향 진행자와 연예인에 대한 퇴출 작업의 ‘종착점’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국정원에 전했다.
문건에 따르면, ㄱ씨는 “김 사장이 취임한 이래 가장 시급한 순위로 보도·시사 분야 인적쇄신, 노영방송 주도 노조 와해, VIP 관심사인 <PD수첩> 때려잡기 등에 몰두해왔는데, 이제 여력이 생겨 종북성향 진행자·연예인 척결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ㄱ씨는 “노조가 김미화 축출 시 형평성 원칙을 제기하며 김흥국을 대표적 사례로 거론했다. 김흥국을 빼지 않으면 추후 퇴출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봤다”며 김씨 퇴출 경위를 밝혔다.
ㄱ씨는 “보수 연예인은 김흥국 1명이지만, 축출 대상 종북 방송인은 여러 명”이라며 김씨 퇴출의 의미를 설명했다. ㄱ씨는 “결국 김흥국의 희생은 여권에 ‘1 대 4~5’의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고, 국정원 관계자는 이를 문건에 적어 보고했다. MBC가 김씨 퇴출을 정부 비판 성향 연예인 4~5명을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셈이다. 이후 국정원과 MBC는 김여진·김제동·윤도현씨 등을 쫓아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ㄱ씨는 국정원에 “앞으로 국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가장 지능적이고 신속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 가겠다. 일단 믿고 맡겨주기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문건에 적시돼 있다.
김씨는 경향신문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이제는 지나간 사건”이라며 입장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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