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말 걸지 맙시다"..'언택트 마케팅' 뜨는 이유

선명수 기자 2017. 12. 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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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쇼핑 도우미 로봇 등으로 대면 접촉 없애는 ‘언택트 마케팅’이 뜬다
불편한 소통 대신 단절을 택하는 ‘나홀로 쇼핑족’이 늘어나면서 유통업계에서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식품기업 아워홈의 푸드코트 브랜드 ‘푸드엠파이어’에 설치된 무인 주문결제 키오스크. / 아워홈 제공

직장인 신모씨(31)는 택시를 탈 일이 있을 때마다 직접 택시를 잡기보다는 모바일 앱으로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택시를 타고 나서는 음악을 듣지 않아도 웬만하면 이어폰을 낀다. 그에게 피곤한 출·퇴근길 택시 안에서의 시간은 이른바 ‘멍을 때리는’ 잠깐의 휴식인데, 목적지까지 별다른 대화 없이 방해받지 않고 가고 싶어서다. 신씨는 “앱으로 택시를 부르면 목적지가 어딘지, 어느 길로 갈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고, 후미진 골목길까지 들어가 달라고 기사님한테 아쉬운 소리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모씨(34)는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소액대출을 받았다. 금리가 일반 시중은행보다 싼 것도 장점이었지만, 무엇보다 은행 대출창구 직원 앞에서 “왠지 모르게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하지 않고 모바일로 바로바로 대출이 이뤄진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금융거래를 인터넷으로 하는 그는 은행 점포를 마지막으로 찾은 지가 언제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들처럼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일까. ‘조용한 소비’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금융권을 휩쓸었던 ‘비대면 거래’에 이어, 유통업계에서도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언택트란 사람과의 접촉, 즉 ‘콘택트(contact)’를 지우는 일종의 무인서비스를 함축하는 개념으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18년의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꼽기도 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기술의 진화 역시 무인화 등 ‘언택트 마케팅’의 플랫폼이 되고 있다.(주간경향 1254호 표지기사 참조)

화장품 편집매장인 ‘올리브영’이 지난 9월 말 서울 서초구에 문을 연 강남 본점에는 기존 매장과 달리 가상 메이크업 앱, 스마트테이블, 키오스크 등 디지털 체험공간이 마련돼 있다. 색조화장품을 얼굴에 직접 바르지 않고도 색상이 잘 어울리는지 화면 속 거울에서 실시간으로 합성해 보여주거나, ‘스마트 미러’에 얼굴을 대면 사용자의 피부 나이와 상태를 분석해 알맞은 제품을 추천해 주는 식이다. 기존에 직원이 했던 역할을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아 소비자가 직접 체험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직원의 간섭이 없는 ‘나홀로 쇼핑’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각종 신기술 체험공간으로 마련한 강남 본점은 개장 한 달 만에 방문객 5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스타필드 하남과 고양 매장에 입점해 있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하우디’에는 대형 밴딩머신이 설치돼 있다. 고객이 키오스크를 통해 상품을 주문하면 로봇이 해당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역시 직원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마케팅 전략을 취했다.

이밖에도 롯데, 신세계 등 주요 유통 대기업들은 ‘쇼핑 도우미 로봇’ 도입 경쟁이 한창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4월 서울 소공동 본점에 업계 최초로 쇼핑도우미 로봇인 ‘엘봇’을 선보이며 ‘3D 가상 피팅 서비스’와 ‘픽업 데스크’ 이용법 등을 소개했고, 현대백화점은 지난 8월 외국인 쇼핑객들에게 음성인식 통역 소프트웨어인 ‘지니톡’을 탑재한 안내용 로봇을 선보였다. 신세계그룹 역시 지난 9월 쇼핑 로봇 ‘나오’를 시범 운영한 데 이어 10월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선보였다.

그러나 ‘언택트 마케팅’에서 기술의 진화가 전부는 아니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제는 소비자들이 언택트 기술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은 무엇보다 ‘연결성’을 강조하지만, 플랫폼으로 연결돼 막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소비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의 연결, 접촉을 중시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를 ‘피곤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커진 셈이다. “모든 것에 접촉하고 이어가는 기술사회의 성취는 역설적으로 사람 간의 접촉을 끊는 언택트 기술을 촉진하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트렌드코리아 2018>)이다.

이니스프리의 ‘혼자 볼게요’ 바구니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대표적인 ‘침묵 마케팅’으로 꼽힌다. / 이니스프리 제공

화장품 매장 이니스프리의 ‘쇼핑 바구니’는 이런 소비자의 변화하는 취향을 반영한, ‘돈 안드는’ 대표적 마케팅 전략으로 꼽힌다. 흔히 화장품 로드숍에 비치돼 있는 쇼핑 바구니가 이니스프리 매장엔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다. 두 바구니의 차이점은 ‘혼자 볼게요’,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쓰인 각각 다른 라벨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고객이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들면 점원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지 않고,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쓰인 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시작하면 다가가 제품을 추천하거나 피부 진단 등의 상담을 해준다. 이니스프리 관계자는 “10대, 20대 ‘밀레니얼 세대’ 고객들은 제품정보를 인터넷에서 습득하고 매장에서는 사전에 확인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테스트하는 방식을 추구해 점원이 다가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니스프리 강남 직영점 매니저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SNS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큰 호응을 얻었고,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8월에 처음 도입된 이 ‘혼자 볼게요’ 바구니는 초반에는 5개 매장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한 뒤, 현재 전국 46개의 이니스프리 매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침묵 마케팅’이 먼저 등장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의 한 의류업체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점원이 말을 걸면 긴장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점원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뜻하는 파란색 쇼핑백을 매장 내에 비치하기 시작했고, 지난 3월부터는 교토시의 한 운수회사가 기사가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이른바 ‘침묵 택시’ 운영을 시작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화보다는 ‘클릭’이 편한 세대의 출현 역시 언택트 마케팅의 확산 배경이다. 최근 누적 주문건수가 3000건을 돌파한 스타벅스의 ‘사이렌오더’는 모바일 앱을 통해 미리 주문과 결제를 하고 매장에서는 음료만 받아가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다. 매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반경 2㎞에서 주문이 가능하고, 미리 주문과 결제를 마치면 긴 줄을 서지 않고도 음료를 받아갈 수 있다. 스타벅스가 최근 사이렌오더 이용 고객 비율을 조사한 결과, 20~30대가 86%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전국 4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O2O 이용 경험 조사에서도 20대의 61.6%가 배달앱 등 O2O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어 30대가 48.5%, 10대가 45.9% 순이었다.

SNS 등 비대면 접촉에서도 ‘과잉 연결’에 시달리는 피로감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면 접촉을 ‘피곤한 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4명 중 1명(26.4%)이 ‘면대면 대화나 전화보다는 문자나 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더 편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이렇듯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20대의 모습을 가리키는 용어로 ‘관계’와 ‘권태기’를 합성한 신조어인 ‘관태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밖에 모바일 기기에 길들여진 젊은층이 메신저나 문자는 익숙한 반면 전화 통화를 두려워한다는 뜻의 ‘콜 포비아’란 신조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통화보다 메신저 대화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며 애인이 바뀌면 통신사도 함께 바뀐다는 통신사 커플요금제 역시 ‘흘러간 추억’이 됐다.

반대로 언택트 기술의 보편화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소외시키는 ‘언택트 디바이드(untact divide)’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근 금융권의 핀테크 열풍과 비용 절감으로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는 급증한 반면, 점포 축소 등으로 고령층의 금융소외 현상이 대두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비대면 접촉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굳이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기술로 대체하고, 보다 대면 접촉이 필요한 곳에는 인력을 재배치하는 기술과 방법이 병행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그동안 무료로 인식됐던 인적 서비스가 프리미엄화되면서 차별화의 핵심 요소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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