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국가보안법과 평행이론 연상시키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후 국보법 철폐 이슈 정국 핵으로 부상..진보 진영 지지
당시 보수 진영 '국보법 수호' 사활 걸어..이념 대결로 비화
대공수사권 폐지론도 '여권 드라이브→보수 반발' 비슷한 흐름
여권에선 '국가보안법-대공수사권 평행이론' 프레임 경계
대공수사권 폐지 이슈는 여권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보수 야당이 명운을 건 ‘결사 저지’ 태세로 나오면서 진영 간 이념대결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2004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로 몰아붙였던 국가보안법 폐지 이슈도 그랬다. 깃발을 든 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9월 한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국보법이 ‘반(反)정권 인사 탄압법’으로 악용된 과거를 들며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은 국보법 수호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이부영 전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나라당은 헌법보다 국보법을 상위법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와 ‘2+2 회동’을 벌이고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과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 등이 막후 협상을 벌인 끝에 국보법 전면 폐지 대신 찬양ㆍ고무ㆍ동조ㆍ회합ㆍ통신 등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강경파 의원들의 반대로 추인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전면 폐지는 물론 부분 개정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 여파로 당시 이 의장과 천 원내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도 지금까지는 꽤 비슷한 흐름이다. 대통령의 강한 추진 의지→정부 여당의 드라이브→진보 진영 지지 및 보수 진영 반발→이념 대결로 이어지는 전개 패턴이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인 만큼 관철 의지가 높고, 여기에 여권은 물론 진보 정당이 힘을 보태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방침에 정의당은 “중앙정보부의 망령은 이제 완전히 소멸돼야 할 것”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앞으로 국회 심의 과정을 밟겠지만 이른 시일 내 처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야당에서 대공수사권 폐지 문제를 놓고 “노무현 정부 때 국보법 폐지 데자뷔가 보인다”(11월 30일 나경원 한국당 의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여권 인사들은 ‘국보법 철폐와 대공수사권 폐지 평행이론’ 프레임을 경계한다. 2004년 국보법 폐지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통화에서 “13년 전과 지금의 대공수사권 폐지 이슈는 성격이 판이하다”며 “정보기관의 수사권 보유는 다른 나라 사례와도 맞지 않다.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다.
국정원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만약 표 대결로 갈 경우 이번에도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이는 국민의당은 신중론을 펴고 있다. 국회 정보위 국민의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대공수사권 폐지론에 대해 “대공수사권을 이양한다고 하지만 (이관 대상 기관과) 과연 원활한 협조관계를 가질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한 보다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한 의원은 “북한의 역대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안보 위기가 엄중한 상황이어서 타이밍이 안 좋다”며 “대공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성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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