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금징어'도 씨가 말랐다

이유진·백경열·최승현·김지혜 기자 2017. 12. 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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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중국 어선들 싹쓸이에 어획량 감소
ㆍ횟집 오징어 1마리 1만원 ‘귀하신 몸’
ㆍ‘보리밥·개떡 취급’은 이젠 옛말
ㆍ어민들 업종 바꾸고 공장 폐업 속출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서 해풍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오징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오징어 성어기를 맞아 분주해야 할 주문진항은 어획량 급감으로 어민들이 대부분 조업을 포기해 썰렁한 모습이었다. 주문진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

제주에서 전해오는 이 속담은 이제 옛말이 됐다. 개떡 취급을 받던 오징어가 요즘엔 ‘금(金)징어’로 불린다. 마트에서 한 마리에 1000~2000원대면 살 수 있던 국내산 생물 오징어 가격은 5000원 가까이 올랐다. 횟집에서 파는 산 오징어 한 마리는 1만원을 훌쩍 넘는다. 오징어잡이 어민, 유통업자, 소비자 모두가 아우성이다.

이는 오징어 어획량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어장이 북한 수역으로 이동한 데다 북한 수역에서 자행되는 중국 어선들의 무분별한 포획이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오징어 주산지인 강원도의 오징어 어획량은 2010년에는 1만5438t에 달했지만 매년 감소해 지난해 6748t, 올해(11월 말 기준)는 3770t에 그치고 있다. 일부 오징어잡이 어민들은 업종을 바꾸고 있다. 밤샘 노동을 해도 기름값조차 건지지 못해서다. 명물 오징어를 전국에 공급하던 강원 주문진항과 경북 포항 구룡포항 등 국내 대표적 항구에는 출항을 포기한 채낚기어선들이 줄지어 정박돼 있다.

오징어 가공 공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강원 주문진을 중심으로 한 가공 공장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미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공장들도 폐업을 고민하는 곳이 적지 않다. 업체들은 당장의 부도를 막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특별자금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의 생물 오징어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 매대는 수입 냉동 오징어가 차지한 지 오래다.

오징어가 들어가는 먹거리를 파는 식당에서는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 종로구 한 오징어회 전문점은 오징어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을 결정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마른오징어를 불려 생물 오징어처럼 만드는 요리법도 공유되고 있다. 머지않아 오징어가 서민음식 명단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가히 ‘오징어 파동’이라 할 만하다.

▶그 많던 오징어는 어디로…“하루 10마리밖에 못 잡아요”

>>한숨 짓는 어민들

텅 빈 바닥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 구룡포 수협 활어위판장에서 어민들이 경매가 끝난 오징어를 상자에 담고 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강릉 주문진은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오징어가 주인공인 도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비유가 그야말로 ‘옛말’이다. “주문진에서 오징어를 잡아 먹고사는 시대도 이젠 끝난 것 같다”는 어민들의 한숨이 이어지고 있다.

■ “출어경비도 못 건질 판”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 북쪽 항포구. 이곳엔 출어를 포기한 오징어채낚기어선 10척이 정박해 있었다. 집어등과 낚시도구를 손질하는 선원들도 보이지 않아 적막감마저 흘렀다. 채낚기어선들이 인근 앞바다에 나가 환한 빛을 발하는 집어등을 켜고 한가득 오징어를 잡아 항구로 돌아오던 시끌벅적한 10여년 전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다. 바로 옆 부두에서 잡어용 그물을 배에 싣고 있던 한 어민은 “오징어채낚기어선엔 요즘 파리만 날린다. 주문진항에서도 요즘 산 오징어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오징어채낚기어선 ‘명국호’ 윤국진 선장(59·강원도연안채낚기연합회 회장)은 올 들어 90일가량밖에 조업을 하지 못했다. 그는 “3~4년 전까지 연간 8개월가량 조업을 했는데 올해는 오징어 씨가 말라 출어일수가 3개월에 불과하다”며 복잡한 속내를 털어놨다.

선원 4~5명이 승선한 9~10t급 ‘연안 오징어채낚기어선’이 오후 2시에 출항해 밤샘조업을 하고 이튿날 오전 6시쯤 돌아오려면 기름값 35만원을 비롯, 부식비·낚시재료비 등 모두 70만원가량의 경비가 소요된다.

윤 선장은 “최근 산 오징어 위판가격이 20마리에 7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400마리(140만원)는 잡아야 경비를 제하고 선원들 일당을 겨우 줄 수 있다”며 “하지만 요즘엔 하루 10~20마리밖에 잡지 못하는 날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출어를 포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만 해도 하루 1만마리 이상을 잡을 때도 있었는데, 이젠 모두 옛이야기가 돼버렸다”며 “어획량이 크게 줄어들자 채낚기업을 포기하는 어민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2004년 2만2000여t에 달하던 강원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은 2013년 1만4568t, 2014년 9461t, 2015년 7641t, 지난해 6748t 등으로 급감했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어획량도 3770t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 6045t에 비해 38%가량 줄어들었다.

급기야 강원 동해안 대표어종 자리도 2년 전부터 붉은대게(홍게)에게 내줬다. 오징어의 위상이 흔들리자 5년 전까지 300척에 달했던 강원도 내 오징어채낚기어선은 현재 90척으로 줄었다.

11월 이후 오징어 어군이 동해안 남부 쪽으로 옮겨가긴 했으나 경북지역 오징어채낚기 조업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39t급 ‘201대원호’ 최인철 선장(57)은 “지난달 28일 포항 구룡포항에서 1시간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해상에서 밤새 조업해 오징어 1000마리(50박스)를 낚았다. 수년 전까지 이 시기엔 하루 4000~6000마리를 잡았다”며 “어민은 물론 선주도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포항 구룡포항에 정박하는 오징어채낚기어선 50~60척 중 조업에 나서는 배는 10~25척 수준에 불과하다. 물량이 적다 보니 위판장 분위기도 다소 가라앉았다. 지난달 29일 오전 5시30분 포항 구룡포 수협 활어위판장에 오징어 수백마리가 깔리자 빨간 모자를 쓴 도소매 중개인 7~8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딸랑딸랑’ 금종을 흔들며 “이천오백, 삼천~”이라고 외치는 경매사를 향해 손가락을 펴 응찰가를 제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경매사는 “오늘 활어차에 바로 실리는 산 오징어 1마리당 3500원에 거래됐다”며 “지난해엔 2000원 선이었는데 올해는 어획 부진으로 도매 가격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오징어 1번지’로 통하는 울릉군의 오징어 어획량도 2008년 5000여t에서 지난해 985t으로 떨어졌다. 울릉군 어민들은 “15~20년 전만 해도 겨울 성어기에는 200여척이 오징어 조업에 나섰으나 올 들어서는 20여척에 그치고 있다”며 “금띠 두른 오징어가 됐다”고 전했다.

■ “불법 공조조업부터 막아야”

오징어 어획량은 20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났다. 특히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서 조업을 시작한 2004년 이후 동해안의 오징어 어획량 감소세가 두드러지자 “대책도 없이 언제까지 앉아서 그냥 당해야 하냐”는 어민들의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2004년 2만2000여t에 달하던 강원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이 지난해 6748t으로 70%가량 감소한 것만 봐도 심각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 어선들이 그물로 바다 밑바닥을 훑는 ‘쌍끌이 조업’으로 러시아 인근 해역에서 북한을 거쳐 동해로 남하하는 오징어를 싹쓸이하고 있는 탓이다.

북한 수역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2004년 140척에서 지난해 1238척으로 12년 만에 9배가량으로 늘어났다. 35년 경력의 구룡포 베테랑 선장인 임학붕씨(61)는 “추석 이후 오징어를 2~3박스(40~60마리) 정도 잡은 날도 허다하다”면서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서 활개를 치다 보니 요즘엔 작은 오징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어민 김용규씨(77)는 “40년간 오징어잡이 배를 탔는데 올해가 가장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울릉군은 최근 경북 동해안 상생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포항·경주·영덕·울진 등 4개 시·군과 함께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내 조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 측에 건의키로 했다.

70~140t급 국내 트롤어선(쌍끌이 저인망어선)과 채낚기어선의 불법 공조조업도 큰 문제다. 채낚기어선이 집어등으로 오징어를 모으면 트롤어선이 바다 밑에 자루모양의 그물을 끌고 다니면서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방식이다.

채낚기어선 2척을 운영하고 있는 선주 최갑용씨(65·포항 구룡포)는 “수십척의 트롤어선과 오징어채낚기어선이 새벽시간대 주요 어장 곳곳에서 불법 공조조업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8월엔 불법 공조조업(수산자원관리법 위반)을 한 대형 트롤어선 선주와 채낚기어선 선장 등 36명이 동해해경에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2015년부터 지난 2월까지 불법 공조조업으로 오징어 2100여t을 잡아 63억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어민들은 “단속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트롤어선의 불법 공조조업을 차단하지 못하면 오징어 자원 고갈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광어 따라잡은 오징어회…“테이블당 한 마리만 팔아요”

>>‘오징어 품귀’ 현상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여기 오징어 한 접시 더 주세요!” 지난달 27일 오후 9시쯤 서울 종로구의 한 오징어회 전문점. 사장 ㄱ씨(57)는 오징어회 한 접시를 추가 주문하는 손님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다른 메뉴를 권했다. 카운터로 돌아온 ㄱ씨는 “테이블당 두 마리 이상은 못 판다. 오징어가 금값이라 물량을 많이 들여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주라도 하나 더 팔려면 한 마리라도 아껴두었다가 새로운 손님에게 파는 것이 낫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ㄱ씨는 날로 치솟는 생물 오징어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장사를 접기로 결정하고 가게를 내놓은 상태다. 이 가게에서 오징어 한 접시는 2만4000원으로 광어, 우럭과 같은 가격이다. 손님 중 일부는 무슨 오징어가 광어만큼 비싸냐며 항의하기도 한다. ㄱ씨는 “요즘은 광어보다 오징어 원가가 더 비싸다. 오징어보다 광어 파는 게 훨씬 더 남는데 손님들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오징어 원가가 1만7000원까지 치솟은 날에는 아예 도매처에서 오징어 사오기를 포기했다. “오징어 전문점에 어떻게 오징어가 없냐고 따지는 손님도 있다”고 전하는 ㄱ씨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오징어 몸값이 뛰면서 오징어가 들어간 음식을 파는 식당들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종로구의 또 다른 횟집 메뉴판에 표시된 오징어회 가격은 ‘시가’이다. 이 횟집을 운영하는 배복선씨(51)는 “오징어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른 데다 수급조차 쉽지 않다. 도매처에 열 마리를 주문하면 다섯 마리밖에 안 줄 때도 있다”며 “손님들은 옛날 생각만 하고 ‘속초 가면 열 마리에 만원’이라는 등 볼멘소리를 한다”고 토로했다.

시장 먹거리 골목도 여파를 피해갈 수 없다. 종로구 광장시장의 전집 종업원 김미숙씨(57)는 “더 이상 오징어전을 팔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전집을 찾은 손님 장완영씨(73)는 “강원도 출신이라 오징어전을 워낙 좋아하는데 안 판다니 너무 서글프다”고 말했다.

종로구에서 떡볶이 노점을 운영하는 김민지씨(58)는 “원래는 국산 오징어를 썼는데 수입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떡볶이를 즐겨 사먹는다는 김지수씨(23)는 “단골 분식집에서 얼마 전부터 오징어튀김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며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던 오징어튀김이 사라지니 허전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해물찜 전문점은 지난달부터 찜에 들어가던 생물 오징어를 냉동 오징어로 바꿨다. 종업원 오모씨는 “처음 가격 뛰고 일주일 동안 오징어를 아예 못 넣은 적도 있다”며 “찾는 손님들이 많으니 생물은 힘들고 냉동 오징어를 쓰고 있다”고 했다.

오징어볶음을 서비스로 내놓는 굴보쌈 전문점 사장 이모씨(66)는 “오징어 가격이 두 배로 뛰어 부담이 많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중단할 수는 없다”며 “남기는 거 없이 장사한다는 마음으로 팔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낙원상가 앞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정모씨(59)는 삶은 오징어를 주문하면 구운 계란을 덤으로 주고 있다. 정씨는 “삶은 오징어 3마리에 1만2000원 받고 있다. 양이 너무 적어 손님들에게 미안해 계란도 하나씩 구워서 넣어준다”고 했다. 오징어숙회를 팔고 있는 종로구 안주 전문점 김애자씨(57)는 “오징어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팔고 있다. 서민들이 주요 고객이라 가격을 올리기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주부들 역시 고민이 늘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주부 윤영숙씨(50)는 수산물 코너 앞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윤씨의 한손에는 6000원짜리 국산 생물 오징어 한 마리가 담긴 팩이, 다른 손엔 4900원짜리 원양산 해동 오징어 2마리가 담긴 팩이 들려 있었다. 윤씨는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와 애가 좋아하는 오징어 무국을 해주려 했는데 생각보다 오징어가 비싸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윤씨는 결국 원양산 해동 오징어를 골랐다. 그는 “예전엔 고민도 안 하고 국산 오징어를 골랐는데 가격이 너무 오르다 보니 그냥 싼 해동 오징어를 많이 사서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유진·백경열·최승현·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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