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한국 남자에 '푹 빠진' 일본 여성들

김동욱 입력 2017.11.30. 06:52 수정 2017.11.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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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욱 기자 ]


일본 요코하마 시에 있는 ‘요코하마 아레나’가 1만5000여명 관객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떠나갈 것 같습니다.

열렬히 내뱉는 목소리들의 데시벨은 살짝 높습니다. 바리톤이나 베이스라기보다는 단연 소프라노 음역에 가깝습니다. 예, 젊은 여성들이 내뿜는 응원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스타를 볼 때 마다 내지르는 ‘꺄야아아악~’하는 소리,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끊이지 않습니다. 모두들 들뜬 모습입니다.

지난 29일 저녁 한국의 콘텐츠 기업 CJ E&M이 일본에서 연 ‘2017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net Asian Music Awards·MAMA)의 현장 풍경입니다. 이 행사는 일본에서 아직 ‘한류(韓流)’산업의 잠재력이 죽지 않았음을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한류’라는 단어는 어느덧 낡은 이미지, 한물 지나간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기세가 많이 꺾이기도 했습니다.

2003년 일본에서 배우 배용준씨가 출연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송되면서 시작됐던 일본의 한류 열풍은 ‘막걸리 열풍’, ‘한식 붐’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보아, 동방신기, 빅뱅, 카라, 소녀시대 등 ‘K팝’ 가수들이 ‘K팝’ 열풍을 심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왕 사죄발언 등을 거치면서 급격히 꺼지다시피 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한·일 관계가 여러 정치적 갈등 탓에 ‘한류’는 잊힌 과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습니다.
침체기에 빠져 드는 것 같았던 일본의 한류 분위기에 최근 들어 다시 반전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한국 음악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이 꾸준히 퍼져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MAMA 행사장을 찾은 관객도 90% 이상이 10대 후반~20대의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평균 티켓가격 2만엔(약 20만원)이 넘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잘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행사장을 방문했습니다. 3시간의 행사시간 내내 일어선 채 ‘응원’을 하는 여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유명 걸그룹 트와이스 등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율동을 함께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 관객이 대부분이다 보니 공연을 하는 가수, 시상식에 참석한 탤런트들의 성별에 따라 맞이하는 ‘열기’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해서도 열띤 환호를 보내긴 했지만, 젊고 잘생긴 한국 남자 가수들을 향한 뜨거운 열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상식을 진행했던 탤런트 박보검, 서강준, 성훈 등 한국의 남성 대표들을 향한 격렬한 환호성, EXO-CBX, 세븐틴, 몬스타엑스, 워너원 등 남성 아이돌그룹의 일사불란한 군무와 열창에 대한 열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성 스타들의 소감 한마디, 서투른 일본어 한마디 한마디마다 ‘팬심’이 가득담긴 응원으로 답을 합니다. 모두 ‘한국 남자’에 푹 빠져버린 듯한 모습입니다.


이날 행사는 한국의 Mnet을 비롯해 Mnet재팬, tvN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14개 국가 및 지역의 주요 채널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동시 생중계 됐다고 합니다. Mwave를 통해서 전 세계 180여개 국가 및 지역에서도 시청할 수 있었다는데요.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지역에 여전한 한류 열기와 젊어진 팬 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사실 한류 관련 산업은 일본은 물론 글로벌 주요 지역에서 기로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 초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공개한 ‘2016-2017 글로벌 한류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미주, 유럽, 중동 주요국에서 향후 ‘한류 콘텐츠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이 사상 처음 감소로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기존의 한류가 획일적인 콘텐츠 위주였던 탓에 식상함을 준 데다가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정치·외교적 갈등으로 반한감정이 일어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주요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 움직임도 없지 않고, 자국 보호주의까지 겹치면서 한류 콘텐츠 소비가 줄어드는 조짐마저 보였습니다.

그랬던 한류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것도 대중연예인들과 민간 기업입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의 한류를 민간 차원의 교류 활성화로 다시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것입니다. 올 5월 도쿄에서 CJ E&M이 연 한류종합페스티벌 ‘케이콘 2017’에 4만8500여명의 관객이 몰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CJ E&M은 올해 MAMA 행사를 베트남, 일본, 홍콩의 3개 지역에서 개최해 본격적인 한류 부흥을 노리고 있습니다.

일본 젊은 여성들의 열띤 지지를 받는 한류가 또다시 나래를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코하마·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