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봇'이 올린 100만 댓글, 미국이 낚였다

샌프란시스코/강동철 특파원 2017. 11. 30.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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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통신위 여론조사, 사람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성해 논란]
- 온라인 여론 왜곡하는 스팸 봇
트위터의 트럼프 지지 글 3분의 1, 스팸 봇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져
게시자 이름은 다르지만 단어만 바꾸고 문장 구조는 비슷

미국의 인터넷·통신 정책을 관장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 22일(이하 현지 시각) "망(網)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 폐기에 대해 다음 달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업체들이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업체들로부터 돈을 받고 특혜를 제공하거나 네트워크 속도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한 달에 100번 이용하는 차량이든 한 번 이용하는 차량이든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FCC는 이 원칙 폐기를 논의하는 배경으로 FCC 홈페이지에 올라온 일반 시민들의 게시물과 댓글을 분석한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홈페이지에 의견을 낸 대부분의 시민이 망 중립성 원칙 폐기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FCC 홈페이지에 올라온 댓글과 게시물 중 상당수는 사람이 아닌 '스팸 봇(spam bot·자동으로 댓글·게시물 등을 생산하는 프로그램)'이 작성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쿼츠는 28일 "FCC 홈페이지에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해야 한다고 올린 게시물 중 상당수는 스팸 봇에 의해 조작된 글"이라며 "FCC는 시민이 아니라 봇이 만든 여론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 셈"이라고 했다.

실제로 FCC 홈페이지에는 "망 중립성 원칙이 혁신을 질식시키고 있다(smothering innovation)"는 글이 81만 개 이상 올라와 있다. 게시자 이름은 다르지만 표현은 같다. 쿼츠는 이를 두고 "명백한 사실은 (81만 개의 글이) 모두 같은 출처"라며 "모든 글이 봇에 의해 쓰인 건 아닐지 몰라도 상당수는 봇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가인 제프 카오(Kao)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FCC 홈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과 댓글 22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100만 개 이상이 스팸 봇에 의해 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FCC 홈페이지에 망 중립성 원칙을 없애라고 청원한 글 중 100만 개 이상이 동일한 문장 구조"라며 "같은 문장에 일부 단어만 조금씩 바꿔가면서 여론을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팸 봇을 활용한 여론 조작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작년 미국 대선 때도 수많은 스팸 봇이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상에서 여론을 조작했다. 미국의 시사 전문지 애틀랜틱은 "작년 대선 TV 토론회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트위터 메시지의 3분의 1,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트위터 메시지 중 5분의 1이 스팸 봇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작년 미 대선 때 3만6000여 개의 트위터 봇을 운영하면서, 140만 회 이상 대선 관련 트윗(단문 메시지)을 날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대선 여론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스팸 봇에 의한 여론 조작이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빠르게 이뤄진다고 말한다. 스팸 봇들은 1~2분 정도의 시간에 구글·페이스북·트위터 계정 수십만 개를 만들 수 있다. 또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미디어에서 일반 사람들의 이메일 주소와 소셜미디어 계정도 대량 수집한다. 이렇게 확보한 이메일이나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가짜 뉴스나 특정 정책에 대한 비판·옹호 등을 담은 글을 대량 살포한다.

미국 보안회사들이 지난 8월 적발한 한 가짜 뉴스 배포용 스팸 봇에는 7억1100만 개의 이메일 정보가 들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대량 살포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론의 향배를 짧은 시간 안에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컴퓨터를 이용한 선전(propaganda) 프로젝트' 연구팀은 "온라인 여론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빠르고 극단적으로 움직인다"며 "스팸 봇은 온라인 여론을 왜곡하는 데 최적화된 도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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