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만명 빚 탕감한다는 정부 .. '버티면 된다' 인식 심을라

한애란 2017. 11. 3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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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공약 12월부터 시행
연체 10년 넘은 1000만원 이하 부채
월소득 99만원 이하면 전액 면제
재산 등 상환능력 심사한다지만
성실히 갚는 사람과 형평성 문제
금융권 팔 비틀어 재원 마련 지적도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빚 100% 탕감’ 정책이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원금 1000만원 이하 연체기간 10년 이상인 장기소액연체채권이 탕감 대상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출원금 전액을 탕감해주는 정책은 전례가 없다. 지금까지 빚을 완전히 없애주는 건 법원에서 개인파산 선고를 받은 경우만 가능했다.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금융 실험이다.

애초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에 한해 채권 소각을 해주겠다고 공약했다. 29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대책’은 이보다 대상을 대폭 넓혔다. 행복기금이 아닌 민간 금융회사나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연체채권까지 포함했다.

구체적으로는 연체 발생시점이 2007년 10월 31일 이전이어야 한다, 또 올해 10월 31일 기준으로 채무원금 잔액(이자 제외)이 1000만원 이하인 경우만 대상이다. 여기 해당하는 연체자 수는 159만2000명, 대출금액은 6조2000만원으로 추정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장기소액연체자라고 해서 무조건 원금을 100% 면제해주는 건 아니다. 국세청과 국토부 자료를 이용해 소득과 재산을 심사해서 ‘상환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때 소득 기준은 중위소득 60% 이하로 잡았다. 1인 가구는 월 99만원, 2인 가구(피부양자 포함)는 169만원이 기준선이다. 동시에 회수할 재산이 없어야 한다. 단, 생계형 재산(압류금지 재산, 10년 이상 된 차량, 장애인 차량, 1t 미만 영업용 차량 등)은 예외로 인정한다.

그럼 159만2000명 중 몇 명이나 실제 빚 탕감을 받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우선 행복기금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 중 아직 한 푼도 갚지 않은 미약정 연체자는 40만3000명이다.

이들은 별도 신청 없이 일괄적으로 다음달 국세청이 소득심사를 한다. 여기서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추심을 중단하고 3년 안에 채권을 소각한다.

이미 행복기금과 약정을 맺은 장기소액연체자(42만7000명)와 민간금융회사나 금융공공기관에 장기소액연체 채무가 있는 사람(76만2000명)은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은 내년 2월부터 서민금융진흥원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받는다. 얼마나 신청이 들어오느냐가 관건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대한 많이, 대상자 159만 명 중 최소한 반 이상은 (채권소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을 사들이는 비영리 재단은 내년 2월 설립된다. 재정 투입 없이 금융권 기부금을 받아 운영한다. 금융권 팔 비틀기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예컨대 행복기금과 약정을 맺고 원금을 일부 감면받아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는 연체자라면 억울할 수 있다. 이들은 상환능력이 없는 장기소액연체자라도 남은 대출 잔액만 탕감받게 된다. 그동안 이미 갚은 원금을 돌려받지는 못한다. 일반 채무자들에게 ‘버티면 빚을 탕감해준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덕적 해이 논란은 정부도 걱정한다. 대상자의 금융자산, 거주지 임대차 계약서, 카드 사용 내용 등을 꼼꼼히 따져서 심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다. 소득이나 재산을 숨기고 빚을 탕감받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전국 39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부정감면자 신고센터’도 운영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생계형 빚에 한해 일회성 탕감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무 탕감이 직접적으로 소득·소비를 늘려준다고 보긴 어렵지만 연체자들에 일 할 의욕을 북돋워 주는 간접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화끈한 원샷 정책(빚 탕감)이 보기엔 좋지만 돈을 빌려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다”며 “자칫하면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돈 빌리기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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