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미얀마 어린이병원서 의료봉사

지난 22일 오후 수술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이의 주먹만 한 심장은 좁아진 동맥혈관을 잘라내고 동맥을 잇는 수술을 하는 동안 멈춰섰다. 한국에서 직접 가져간 심장과 폐 역할을 하는 하트렁머신(체외순환심폐기기)과 체온조절장치가 심장 기능을 대신했다. 숨죽인 수술실에서 반복적으로 울리는 '삐삐삐 삐삐' 소리는 수술팀에 안도감을 주는 위안의 신호였다. 미얀마 의사들은 자국에서 처음 하는 대동맥축착증 수술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한국 의료진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났다.
아예샌더오 부모는 "쩨주띤 바데(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아예 샌더 오를 비롯해 심실중격결손(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의 중간 벽(중격)에 구멍(결손)이 있는 질환), 승모판막역류증(승모판막이 수축할 때 잘 닫히지 않아 좌심실에서 좌심방으로 혈액이 역류하게 되는 상태), 동맥관 개존증(태아에게는 태아순환을 유지하기 위해 대동맥과 폐동맥 사이를 연결해주는 동맥관이라는 혈관이 있는데, 이는 출생 직후에 닫혀야 하지만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 있는 경우) 등을 앓는 심장병 어린이 환자 7명이 한국 의술로 새 생명을 얻게 됐다.
아시아 오지를 찾아 무료로 진료하는 의료진과 동행해 취재·보도하는 '메디컬원아시아(Medical One Asia: Bridging the Medical Divide)'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매경미디어그룹은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의 미얀마 의료봉사현장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찾아가 애환을 담아냈다. 소아성형외과·소아외과·소아심장 수술팀으로 구성된 서울대병원 의료진 36명은 이달 20일부터 25일까지 양곤어린이병원(Myanmar Yangon Children Hospital)과 얀킨어린이병원(Yankin New Children Hospital)에서 미얀마 의사들이 하기 어려운 구순구개열(언청이), 심장병, 선천성 담관낭종 및 선천성 거대결장증 등과 같은 중증질환을 수술했다. 수술을 하면서 미얀마 의료진을 교육했고 24일에는 미얀마 제1의과대학인 UM1과 공동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진료하고 수술한 어린이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다. 입술이 갈라진 구순열(口脣裂) 상태로 태어난 칫티네아웅(6)은 삐쩍 마른 할머니(63·맘니탄) 손에 이끌려 김석화 교수를 찾아왔다. 할머니와 손자는 차멀미를 참아가며 바고라는 지역의 산골마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나와 버스를 갈아타고 8시간 만에 양곤어린이병원에 도착했다. 칫 티네 아웅의 아빠와 엄마는 태국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수술은 언감생심이었다.
칫티네아웅의 행운은 지난달 할머니가 논농사를 짓고 있는 땅 주인 아들이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양곤에서 무료 수술을 해준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시작됐다. 할머니는 "태국에 있는 아들 부부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울먹이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이어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쁘다"고 환하게 웃었다. 칫티네아웅은 지난 22일 수술을 받고 입술과 인중에 약간의 흉터가 남았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예쁜 얼굴을 되찾았다. 아웅의 할머니는 "손자가 한국의 드라마에 나온 배우처럼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의료봉사로 10명의 어린이가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고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김현영 소아외과 교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난도 복강경을 선보였다.
김 교수는 항문이 없는 쇄항(鎖肛) 어린이 환자에게 장루를 만들어 배변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게 수술을 해줬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담도가 늘어나 생긴 '선천성 담관낭종', 장에 신경세포가 없어 장이 이완할 수 없게 돼 장 폐쇄 또는 변비를 초래하는 '선천성 거대결장증' '부신종양' 등을 복강경 수술로 제거해줬다. 김 교수는 "지난해 미얀마 의사들에게 복강경 수술을 가르쳐줬지만 여전히 쉽고 가벼운 수술만 하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양곤어린이병원에서 2011년 분리돼 심장 쪽으로 특화한 얀킨어린이병원에서는 김기범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미얀마 의사들이 1차로 검사한 심장병 어린이 환자에게 다시 한번 초음파검사를 실시해 '혹시나 놓친 게 없는지' 꼼꼼히 살펴봤다. 수술은 김웅한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이번 의료봉사 활동에는 조태준 봉사단장(소아진료부문 부원장), 소아성형외과 수술팀(김석화·김병준 교수, 정지혁 전문의, 구윤택 임상강사, 배한솔 전공의, 권향진 간호사), 소아외과 수술팀(김현영 교수, 윤중기 임상강사, 송안숙 간호사), 소아심장 수술팀(김웅한·김기범 교수, 장영은 임상강사, 민준철 전임의, 배정일·이준석·최윤영 전공의, 이은영 체외순환사, 이은미·정지혜·백숙영·박희숙·김소연·최성관·김젬마 간호사, 윤선희 코디네이터, 손태민 SA) 등 의료진을 비롯해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김계형 교수, 박만섭 행정팀장, 박광욱 파트장, 나현숙·김윤지 간호사, 김세영·임광수·황영민 씨, 피지영 씨 등이 참여했다. 현지 미얀마 어린이병원 의사들도 대거 참여해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수술과 진료 현장을 지키면서 열심히 배웠다.
김태수·최상목·오규만·윤종한·김희원·권대진 신한은행 직원도 참여해 미얀마 어린이 환우들에게 신이·한이 인형과 함께 풍선아트를 나눠주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며 의사봉사활동의 의미를 더욱 값지게 만들었다.
한편 미얀마(옛 버마)는 인구 5516만여 명이 한반도 약 3배(67만6578㎢) 크기 국토에 살고 있다. 수도는 네피도이지만 경제 중심지는 양곤이다. 국내총생산(GDP)은 723억달러(2017년 전망 기준·구매력 기준 3348억달러)이며, 1인당 소득은 1374달러(구매력 기준 6360달러)다. 인종은 버마족(68%), 샨족(9%), 카렌족 등이며, 국민 대부분이 불교를 믿는다.
■ 메디컬원아시아는
7년째 의료봉사단 동행취재 韓·아시아 의료협력 가교역

메디컬원아시아 프로젝트를 통해 2011년 7개국 9곳에서 의료진 230여 명이 9800여 명을 치료했고, 2012년에는 의료진 170여 명이 8개국에서 봉사 활동을 펼쳐 현지 주민 215명에게 무료 수술, 5620여 명에게 무료 진료를 해줬다.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메단), 몽골(울란바토르)을 찾았고 2014년에는 미얀마, 네팔,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을 찾아 약 2300명에게 무료 진료와 각종 검사를, 총 100여 명에게 심장병, 갑상선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수술을 해줬다. 지난해에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아동병원과 말레이시아 쿠칭, 미얀마 양곤·얀킨어린이병원을 찾아 약 130명에게 무료 수술과 진료, 의약품을 처방해줬다.
올해 11월에도 인제대백병원과 부산 고신대병원 의료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블루크로스 봉사단이 캄보디아에서 유방암 및 갑상선암을 무료로 수술해줬다. 그동안 매경미디어그룹이 동행했던 주요 의료기관 및 단체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의료원, 가톨릭의료원, 인제대백병원(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 이화의료원,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한림대의료원, 고려대의료원, 분당서울대병원, 대한병원협회, 인도차이나클럽(전국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 주축 봉사단) 등이다.
[양곤(미얀마) =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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