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17. 11. 29.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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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 진입했는데 노인 차별 여전
세계 최고속도 고령화 탓에 준비 안 돼
연금 확충, 5세대 공존 교육 서둘러야

한국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노인 나라’가 됐다.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인구센서스)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유소년(0~14세)을 추월해 7000명 많아졌다. 229개 시·군·구 중 156곳이 노인 추월 상태다. 올 8월에는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됐다.

어딜 가더라도 노인이 아이보다 더 많다. 평균수명이 82세로 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실감한다. 100세 시대에는 증조모부에서 손자까지 5세대가 동시대에 살게 된다. 3세대 공존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80, 90세 노인이 아직 낯설다.

우리는 5세대 공존 사회에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다양한 형태의 노인 차별이 벌어지고 있다. 노인이 짧은 거리를 간다고 택시가 외면하고, 천천히 버스에 오르는 노인에게 “집에 있지 왜 나다니냐”고 폭언한다. 식당에서 “노인 오면 장사 안 된다”며 구석자리로 민다. 집에서도 자식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말해도 못 알아듣잖아”라고 무시한다.

노인은 3개 이상의 복합질병을 앓기 때문에 오래 찬찬히 진료해야 하는데도 ‘3분 진료’에 쫓겨 “그 나이엔 아픈 게 당연한 겁니다”며 진료실 밖으로 내몬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수당 등을 덜 줘도 아무 말 못한다. “일하려면 머리 염색부터 하라”는 모욕을 견뎌야 한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선진국도 연령차별이 없는 게 아니지만 우리만 하지는 않다. 선진국은 연금이 잘돼 있어 경제력이 있는 노인이 많다 보니 차별을 덜 당할 수도 있다. 한국 노인의 7.1%가 차별을 경험했다는데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국민연금 받는 노인도 38%에 불과하다.

한국은 고령화사회(2000년)에서 고령사회로 가는 데 1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는 115년 걸렸다. 젊은 세대, 노인 할 것 없이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됐다. 지금 노인은 노후 준비라는 걸 모른 채 한강의 기적을 일궜고 어느새 노인이 돼 있었다. 연금이 없어 70대가 돼도 일터로 나가야 하고, 젊은이와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우리 사회도 도로표지판 글자가 작고 교통신호등 시간이 짧다는 사실도 이제 인지할 정도다. 잘 모르는 노인 차별이 곳곳에 숨어 있다.

출산율만 발등의 불이 아니다. 고령화는 온몸에 번지는 불이다. 법률·제도·예산 같은 구조 개혁이 우선이다. 국민연금·기초연금 등을 확충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48%)을 낮춰야 한다. 노인 ‘15분 진료’ 제도, 노인 전문 의사·간호사 확충 등의 의료 인프라도 정비해야 한다.

유치원부터 평생교육원까지 5세대 공존에 맞는 교육이 시급하다. 40~50대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노인 준비 교육도 필요하다. 노인도 지하철에서 목청을 높이고, 훈계부터 하고 대우받으려 들면 곤란하다. 젊은 세대와 노인의 상호 이해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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