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10배 뛴 비트코인 정부는 먼 산 보 듯?

임지선 기자 입력 2017. 11. 28. 22:31 수정 2017. 11. 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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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10대서 70대까지 가상화폐 광풍…커지는 규제 목소리

그래픽 | 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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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올해 가장 수익률이 높은 재테크 수단을 꼽으라면 흔히 ‘부동산’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상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다.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에만 10배 이상 상승했다. 청소년이나 70대 노인들까지 가상화폐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유인해 사기 사건이 일어나는가 하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는 해킹사건이 일어나 집단소송까지 벌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상화폐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급기야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이낙연 총리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가상화폐가 투기화되는 현실”이라면서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현상이나 병리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대응을 주문했다.

■ 1000만원 넘은 비트코인

올해 1월1일 비트코인 가격은 1단위당 121만6000원이었으나 28일 현재 1122만원까지 올랐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11개월 동안 10배 가까이 올랐다. 지난 12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이뤄진 비트코인의 거래량은 6조5000억원으로 코스닥 일일 거래량(2조4200억원)의 두 배를 훨씬 넘었다. 가상화폐 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코인마켓캡 자료를 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지난 27일 기준 180조9528억원으로 코스닥시장(280조원)의 65% 수준에 도달했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1%에 불과한 실정인데 세금 한 푼도 내지 않고 약간의 수수료만 부담하면 고스란히 고수익을 가져갈 수 있으니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70대 노인마저 뛰어들 정도로 ‘광풍’이 부는 것이다. 국내에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고 빗썸 등 국내 최대 3개 거래소는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다. 투자자들이 몰리자 취약한 보안체계를 가지고 있는 거래 사이트에서는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지난 12일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비트코인캐시 가격이 뛰면서 투자자들이 몰리자 1시간30분가량 빗썸 거래소 서버 과열로 거래가 중단됐다. 많은 투자자들이 매도 기회를 놓쳐 피해를 봤다며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빗썸 고객 3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됐다.

2009년 1월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당시에는 160원(1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다 지난해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점인 빅카메라에서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이수정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지난 4월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비트코인을 정식 지급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면서 개인 투자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들어 비트코인이 여러 개로 나뉘고 미국을 중심으로 투자자산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다시금 가격이 급등했다. 최근 일본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기업 보유자산으로 인정키로 하면서 가상화폐 가격 상승세에 힘이 실렸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ME)는 올 4분기 중으로 현금으로 거래하는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할 예정이다.

■ 비정상적 광풍에도 안이한 정부

정부가 가상화폐와 관련해 대책을 발표한 적은 지난 9월 딱 한번이다. 가상화폐 거래 시 은행을 통해 실명을 확인하겠다는 정도였고, 서버 다운 등 당장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거래소 자체에 대한 규제는 자율 권고 수준이다.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있지만 실무적인 회의만 진행할 뿐 9월 이후 추가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기자들에게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묻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인식하는 가상화폐 성격은 애매하다. 한마디로 ‘가상화폐는 화폐도 아니고 금융자산도 아니다’로 요약된다. 금융당국에서는 “교환 가치와 내재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이를 금융투자자산으로 보기 어렵다” “거래 자체가 도박에 가까운데 규제를 하게 되면 도박장을 정식으로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성격 규정이 애매하니 과세 문제는 아예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내년 세법개정안에 넣을 정도로 진전된 것은 아니고 여러 사항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데에는 해외 각국의 입장이 제각각인 이유도 있다. 러시아와 베트남은 거래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중국은 한동안 거래소를 차단하고 가상화폐를 통한 자금조달인 ICO(Initial Coin Offering·신규 가상화폐 발행)를 아예 금지했다. 영국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반면 미국은 재산으로 취급해 소득세를 부과하고, 일본은 거래 차익에 세금을 매길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일단 거래소 자체에 대한 규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종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가상화폐는 사실 계모임과 같은 성격인데 이걸 당장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가상화폐 거래소가 금융회사는 아니지만 전자금융업자로서 기본적인 요건을 지키도록 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가상화폐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권유하는 것부터 제한하도록 시급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범죄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이나 외국의 입법례를 고려해 규제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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