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자정보통신기술, 연구저변 확대부터

조동현 | 고려대 교수·물리학 2017. 11. 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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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세기 초 정립된 양자역학은 삼라만상의 구성원리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근본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990년대에 100년 가까운 양자역학 연구 경험으로 무장한 물리학자들이 인공 양자계를 만들고 이를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양자세계에는, 디지털 논리의 단순한 0과 1이 아닌, 한 입자가 두 준위 혹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혹은 얽힘 같은 오묘한 상태가 가능하다. 이를 이용한 도청 불가능한 양자암호통신이나 획기적인 알고리즘의 양자컴퓨팅이 제안되며 양자정보학은 물리학의 뜨거운 화두가 됐다.

미국을 필두로 유럽 각국과 중국, 일본 정부가 투자를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IBM과 구글이 양자컴퓨터 연구에 착수했고, 중국이 인공위성을 이용한 양자통신에 성공하며 주목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안한 양자정보통신기술의 산업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실제로 오랫동안 양자계 연구를 해온 물리학자들은 양자정보학의 산업적 응용성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20여년의 연구 결과, 양자컴퓨팅의 가장 뛰어난 계산은 ‘21은 7 곱하기 3’이다. 양자암호통신은 도청을 어렵게 할 뿐, 사물인터넷 등에서 더 큰 문제인 해킹을 막지 못하며, 그나마 단거리에서 시연된 정도다. 그 이유는, 디지털 신호의 0, 1과는 달리, 양자정보 처리의 마술을 가능케 하는 중첩과 얽힘 상태를 제어하는 일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인 어려움이며, 단기간의 기술 개발로 의미있는 응용분야에서 양자기술이 디지털 컴퓨터 및 통신, 암호기술을 앞설 가능성은 없다.

이런 이유로 초기 양자정보에 대한 흥분된 기대는 많이 가라앉았고, 선진 각국의 지원도 장기적인 기초연구에 집중되고 있다. IBM과 구글의 최근 연구는 첨단 이미지 홍보 목적이며, 양자컴퓨터라기보다는 독특한 구성의 물리학 실험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중국의 인공위성 실험 역시 소위 양자열쇠 분배가 가능한 거리를 확인한 기초연구였다.

이 시점에 우리 정부가 8년 뒤 양자정보기술의 산업화를 목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는 데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더욱이 얇은 연구자층과 그간의 소극적 지원으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어서, 자칫 국민 세금의 낭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자연의 근본 원리인 양자역학의 잠재력을 일깨워 응용하는 ‘퀀텀테크놀로지’는 분명 미래 첨단기술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기술적 어려움의 한계를 확실히 하고, 그 극복 방안을 찾는 연구는 치열하게 계속되어야 하며, 여기서 우리가 결코 뒤떨어져서는 안된다. 단, 양자기술의 발달 단계와 국내 연구 수준을 고려할 때, 섣부른 산업화가 아닌 연구 저변과 수월성 확보를 통해 최첨단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좀 더 긴 호흡의 투자가 요구된다.

<조동현 | 고려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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