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잠자리 있어도 안 간다는 노숙인..왜?

이승진 2017. 11. 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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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저 사람 넘어간다"27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비틀비틀 길을 걷던 노숙인 한명이 '쿵'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시 관계자는 "시민 편의를 위해 아침부터 저녁 시간까진 노숙인들이 지하보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며 "야간에만 유관기관에 양해를 구해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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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특별보호대책 가동…노숙인 최대 1336명에 응급잠자리 제공
희망지원센터 20~30% 여유 있지만 술 못 마신단 이유로 이용 꺼려
노숙인 지하보도 이용시간 제한 등 시민 불편 해결책 마련 고심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임에도 많은 노숙인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침낭 하나로 겨울을 지낸다. (사진=이승진 기자)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어어, 저 사람 넘어간다"
27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비틀비틀 길을 걷던 노숙인 한명이 '쿵'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놀란 시민들은 황급히 쓰러진 노숙인에게 다가갔다. 이내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노숙인 자활센터인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직원과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119구급대원이 응급조치를 했다. 119 구급차가 노숙인을 싣고 떠난 자리엔 막걸리 한 병이 놓여있었다.

최근 급격히 추워진 날씨로 노숙인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서울시는 지난 20일 노숙인 특별보호대책을 가동했다. 시는 노숙인 동사 사고 예방을 위해 노숙인 이용시설인 종합지원센터와 임시 보호시설 등을 활용해 최대 1336명에게 응급잠자리를 상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숙인들이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기피하며 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 한명이 길을 걷다 뒤로 쓰러졌다. 놀란 시민들이 황급히 달려가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사진=이승진 기자)


6개월 전 교도소를 출소해 노숙을 시작했다는 이모(61)씨는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이씨는 "시설은 그냥 들어가기 싫다"며 "추우면 지하보도에 들어가 자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인 정모(49)씨는 "시설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 없다"며 "여기저기서 방한 물품들을 줘 추위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는 대화를 나누는 중 추위에 여러 번 몸을 떨었다.

노숙인들은 '시설이 꽉 찼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시에 따르면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등 노숙인을 위한 시설은 항시 20~30% 여유 공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 관계자는 "노숙인 10명 중 9명은 들어갈 시설이 없다고 얘기 한다"며 "하지만 노숙인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자인데 시설에서 술을 금지해 이를 견디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숙인 임모(60)씨는 "술도 못 마시게 하고, 시간표에 맞춰서 움직여야 해 들어갔다가 금방 나왔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의 시설 기피는 시민 불편으로도 이어진다. 이날 오후 5시가 되자 서울역 지하보도엔 상자를 들고 다니는 노숙인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렇게 지하보도를 다니다 오후 8시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에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직장인 박모(37)씨는 "늦은 밤 노숙인들이 점령한 지하보도를 다니면 무섭고, 냄새 때문에 불쾌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오후 5시가 넘어서면 지하철 1ㆍ4호선 서울역 지하보도엔 노숙인들이 박스를 들고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사진=이승진 기자)


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고심만하고 있다. 노숙인들을 강제로 시설에 입실시킬 수 없고, 지하보도에서 내쫓았다간 자칫 동사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시민 편의를 위해 아침부터 저녁 시간까진 노숙인들이 지하보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며 "야간에만 유관기관에 양해를 구해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36개조 89명의 노숙인 순찰ㆍ상담반을 편성했다. 노숙인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시민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는 올해 1~9월까지 노숙인 시설에 평균 2950명이 거주했고, 거리에선 290여명이 생활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전체 노숙인 규모는 4000여명 수준으로 예년에 비해 5% 정도 감소한 수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길거리 노숙인 사망자 제로'를 공약했다. 2013년 노숙인 한명이 동사하며 공약이 한차례 깨졌지만 현재까지 공약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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