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돈 받아먹으려고 왔냐" 청소노동자 인권 후려친 공무원

강현석 기자 2017. 11. 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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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광주시 광산구청, 상습적 인격모독 논란

27일 광주 광산구 한 가로청소노동자가 낙엽을 치우고 있다. 정의당 광주시당 제공

광주 광산구 가로청소노동자들은 매일 평균 5.4㎞에 이르는 도로 청소를 마치면 오후 4시까지 구청 인근 ‘가로환경관리원 안전교육장’에 모인다. 구청 공무원이 업무가 끝난 청소노동자 64명을 모아 놓고 복무점검을 하는 이 시간은 ‘점호’라고 불린다. 점호는 청소노동자들에게 고욕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청소 상태 등을 들먹이며 노동자들에게 “돈 받아먹기 위해서 왔냐, 청소하기 싫으냐” “일할 사람 뒤에 줄 서 있다”는 등의 막말을 했다.

가로청소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지난 20일부터 얼굴인식 출퇴근 확인시스템을 시범운용 중인 광산구가 이들의 인권을 상습적으로 침해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향신문이 27일 ‘광산구 인권보장증진위원회 권고문’을 확인한 결과 청소담당 전 팀장 ㄱ씨는 노동자들에게 인격모독적인 행동을 일삼아 왔다.

광산구 인권위원회는 지난 8월 노동자 4명이 “공무원 ㄱ씨로부터 상습적인 언어폭력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정을 내자 두 달여간 조사를 진행했다. 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담을 한 인권위는 지난 10월 노동자들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결론 내고 권고문을 냈다.

권고문에 따르면 ㄱ씨는 복무점검을 위한 점호시간에 노동자들에게 “기강이 해이해졌으니 정신 차려라. 올해 말까지 내가 당신들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휴일 근무 때 시간 때우려 왔는가. 여러분들 아니어도 기간제로 하면 된다. 일 못하겠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인권위는 “해고 등 불이익을 시사하는 발언이 공식적으로 이뤄져 고용불안을 야기했다”면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복무점검 차원을 넘는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끼는 언행으로 직위를 이용한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청소노동자에게는 ‘벌’을 주기도 했다. ㄱ씨는 지난 8월 휴가에서 복귀한 노동자 ㄴ씨에게 사무실로 출근하도록 지시했다. 담당구역 청소가 미흡하다는 이유였다. 구청으로 출근한 ㄴ씨는 별다른 업무도 없이 사무실에서 전화 등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 말 정년을 앞두고 있는 ㄴ씨는 동료들에게 “너무 창피하고 괴로웠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ㄴ씨의 사무실 근무는 진정을 받은 인권위가 조사에 나서면서 3일 만에 끝났다. 인권위는 “현장업무에서 사무실 업무로의 변경은 징계에 해당함에도 적절한 절차 없이 이뤄졌고, 체벌의 형태로 부과됐다”고 밝혔다. 광산구는 노조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들은 초과근무가 많아 매월 140만원 이상의 급여를 더 받게 되는 ‘기동반’ 업무에 투입하지 않았으며 ‘외출’을 불허하고 반차 등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지난 10월16일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인권위는 ㄱ씨에 대해 10시간 이상의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노동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도록 권고했다. 광산구는 ㄱ씨를 다른 부서로 인사조치하고 구청장이 직접 노동자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청이 한 달 뒤 가로청소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출퇴근 확인을 위한 얼굴인식기를 도입하자 ‘보복 행정’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당 대변인은 27일 “광산구에는 1000여명의 공무원 등이 있는데 유독 청소노동자에게만 얼굴인식기를 이용한 근태관리를 시행하는 것은 ‘진정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이 들기에 충분하다”면서 “청소노동자들을 같은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산구 관계자는 “청소노동자들의 효율적인 복무관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생각한 것이지 보복성은 절대 아니다”라면서 “여러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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