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쩌다 고3..대학 안 가는 선택도 있는 거죠" 입시 거부한 '투명가방끈' 학생들

김경학 기자 입력 2017. 11. 27. 21:31 수정 2017. 12. 26. 12: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박성우, 아고, 정재현군(왼쪽부터)이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부산 친구들이 놀러와서 대학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친구는 경영학과에 가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고, 한 친구는 연극영화과에 가겠대요. 면접과 답안 준비도 다 해왔다는데 살펴보니 거짓말투성이더라고요. 대학에 가기 위해 이렇게까지 포장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18살 ‘아고(별명)’는 대학입시를 거부한 학생이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아고는 입시를 거부하게 된 계기를 묻자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를 소개했다.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다던 친구는 연극배우가 꿈이지만 연기학원에서 노래와 춤, 그리고 ‘개인기’를 배우고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친구는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 포기할 수 없다”면서 울어버렸다. 초등학교부터 대안학교에 다녔던 아고는 날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2011년 만들어진 투명가방끈은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에 반기를 들고 ‘대입 불복종 운동’을 하는 청소년 단체다. 아고를 비롯해 입시를 거부한 고3 학생을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지진 때문에 연기됐다가 일주일 뒤 치러지는 전국적인 소동을 지켜보며 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경기 파주 금촌고에 다니는 3학년 박성우군(17)은 왜 입시를 거부하느냐는 질문에 “왜 대학에 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학교에 다니다보니 어쩌다 고3이 됐어요. 대입 원서를 쓰려니, 왜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안 썼어요.”

지난 추석 무렵 인터넷에서 유행한 말이 있다. 대학 걱정, 취직 걱정, 결혼 걱정이라며 툭툭 던지는 어른들을 비꼰 “걱정은 돈으로 주세요”라는 말이었다. 박군은 그 표현을 언급하면서 “대학에 가지 않을 거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뭐 먹고 살 건지’ 경제적인 걱정을 가장 많이 하지만, 대학을 나와도 대다수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대학에 다닐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경기 일산 정발고에 다니는 정재현군(18)의 생각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받은 교육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 좋은 직업, 돈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간다고 돈을 잘 버나요? 오히려 대학에 가자마자 등록금 때문에 마이너스 인생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요.” 올봄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전체 고교 졸업생의 68.9%였다. 2011년 72.5%였던 대학 진학률은 그후 조금씩 줄고 있다. 반면 특성화고 등을 나와 일자리를 찾은 ‘고교 졸업자 취업률’은 올해 34.7%에 달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8%에 달한다.

아고는 더 솔직한 속내도 털어놨다. “공부하기 싫은 것도 있어요. 입시가 만만한 게 아니잖아요. 친구들 보면 하루에 너댓시간 자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군은 음악과 철학, 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다만 그런 것을 대학이 아니라 유튜브 강의나 스터디모임을 통해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아고는 학교를 졸업하면 청소년 인권이나 페미니즘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알바 해서 여행도 가보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학교 토론대회 때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나’라는 주제가 나왔어요. 미적분 공식은 줄줄 외는 친구들도, 자기 생각을 얘기하라고 하면 제대로 말을 못해요. 상대를 설득하려면 어떤 논리를 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이게 정상인가요?” 정군의 얘기다. 아고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정작 필요한 인권이나 성교육은 하지 않으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이프와 포크 쓰는 법을 배우는 식이예요. 학교는 경쟁위주 교육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들은 교육정책 담당자들에게도 하고픈 말이 많았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겐 또래 젊은이들과 만날 공간이 마땅찮다. 아고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청년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 대안 대학이나 마을 공동체에서 새로운 것들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군은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학생에게 쏟아지는 불편한 눈빛들을 얘기하면서 “학교가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고는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자 ‘왜 연기하느냐’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단 하루의 입시에 문제가 생기면 1년에서 3년, 길게는 10여년이 뒤틀리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군은 “만약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두 달 수능이 연기됐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반문했다. “시험 하나에 사회 전체가 매달리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경쟁과 점수따기일뿐인 시험이 사회를 뒤흔드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