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IT 개발 기획자 필요한 이유

허범석 팀터바인 팀장

허범석 팀터바인 팀장

정보기술(IT) 서비스 개발에는 크게 세 가지 업무 영역이 있다. 개발, 디자인, 그리고 기획이다. 이 중 기획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기획자라고 부른다. 기획자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문서를 통해 구체화하고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며 진행과정을 관리한다. 그러나 IT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획자에 대한 산업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개발자가 수백명에 달하는 소셜커머스 기업 쿠팡에는 기획자가 없고, 대신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획자의 업무를 나눠 맡는다.

기획자 없는 IT 프로젝트 수행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개발 방법론의 변화가 있다. 전통적인 IT 개발은 처음에 크고 탄탄한 계획을 세우고 고객 요구 분석, 디자인, 개발, 검증, 유지보수 업무를 한 단계씩 차례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 트렌드에서는 고객 요구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기에 서비스 수정 또한 빨라져야 한다. 최근의 IT 개발은 장기적 계획 수립 없이 당장 필요한 기능을 하나하나 개발하고 테스트하며 서비스를 확장한다. 계획과 절차를 따르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여준다는 점에서 인력이 부족한 많은 스타트업이 이 서비스 개발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계획과 관리가 최소화된 환경에서 기획자에 대한 필요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전체적인 업무 흐름과 이력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각 기능들이 중구난방으로 추가되고 서비스를 꿰뚫는 본질이 흔들리게 되는 위험이 발생한다. 배에 조타수가 없다면 다른 선원들이 조타수의 일을 나눠서 해야 할진대 각자 노만 젓다 보니 배가 어디로 가는지, 왜 이쪽으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책임지지 않게 되는 형국이다.

빠름과 가벼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IT 개발 트렌드는 앞으로 심화될 것이며 전통적인 기획자의 업무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문서화, 관리, 계획은 지루하고 쓸데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서비스가 성장하고 직원이 늘어나면 더 이상 사업 초기 소수의 구성원들간에 이뤄진 표준화되지 않은 업무방식으로는 서비스를 관리할 수 없다. 어느 수준 이상의 관리와 문서화는 산업군과 직종을 불문하고 필요하다. 단, 그 업무를 전담할 사람이 없다면 모두가 전통적인 기획자가 도맡아 했던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기획자는 없지만, 모두가 기획자인 회사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