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성소수자 강연 비공개 처리..손아람 등 연사들 줄줄이 "내 강연도 내려달라"

이유진 기자 2017. 11. 2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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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 활동가인 강동희씨(24)가 출연한 ‘세바시’ 방송 갈무리. 현재 해당 영상은 비공개 처리가 됐다.

CBSTV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이 일부 교회 집단과 교인들의 항의를 이유로 성소수자 강연을 비공개 처리했다. 그러자 세바시 강연에 참여했던 일부 연사들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자신의 강연 동영상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바시 측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 활동가인 강동희씨(24)의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입니다’라는 강연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세바시는 “열심히 강연을 준비한 강씨와 이 강연에 공감해준 모든 분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세바시는 연사를 초청해 트렌드, 교육, 경제, 평화 등을 주제로 15분 동안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세바시는 지난 23일 CBSTV 채널이 아닌 유튜브,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강씨의 강연을 공개했다. 세바시 강연은 CBSTV 채널을 통해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방송되지만, 세바시 측은 CBS가 기독교 방송이라는 점을 고려해 강씨의 강연을 CBS 채널로 방송하지 않은 것이다. 강씨는 강연에서 “우리 주위에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많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의 존재를 너무 쉽게 부정하고 지워버리는데 이것은 일종의 폭력”이라며 “이들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차이’를 느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25일 세바시는 온라인에 게시한 강연 영상도 비공개로 전환했다. 세바시는 강연을 비공개 처리한 이유를 두고 “이 강연으로 인해 CBS가 한국교회 일부 집단과 교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면서 “세바시의 콘텐츠 기획과 제작은 CBS와는 독립적으로 이뤄지지만, 한국교회를 기반으로 방송 선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CBS가 세바시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거나 오해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세바시의 이런 결정이 알려지자 세바시에 출연했던 일부 연사들은 자신들의 강연도 비공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바시 848회 ‘차별은 비용을 치른다’ 편에 출연한 손아람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대응 압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부탁드린다”라며 “역대 최단 기간 2만 공유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제 강연 영상을 함께 내려주셨으면 한다”고 썼다. 이어 “(세바시 측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울테니 도와드린다. 나도 성소수자다”라고 했다.

세바시 719회 ‘당신은 디지털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겠습니까?’ 편의 연사였던 이선희 다큐멘터리 감독, 460회에 출연한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씨 등도 페이스북에 강연 영상을 내려달라는 글을 썼다.

논란이 거세지자 세바시 측은 26일 “차별과 폭력을 거부하기 위한 강연회를 열어왔던 우리가 거꾸로 저희를 믿고 강연해준 강연자와 그 강연에 공감해준 분들에게 차별과 폭력을 저질렀음을 고백한다”며 “강연의 재공개는 내부 절차에 따라 부득이하게 27일 정오까지 결정해 알려드리겠다”고 다시 공지했다.

강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런 상황이 올 걸 예상했지만 세바시 측이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고 비공개 결정을 내린 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연사들의 강연 비공개 요청 움직임을 두고는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본 것 같다. 다양성과 인권, 그리고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세바시는 CBS와 청아람아카데미가 공동으로 기획해 지난 2011년 6월부터 CBS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세바시는 현재 CBS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래는 강동희씨와의 인터뷰 전문.

- 본인 소개 간단히 부탁드린다.

“2015년부터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와 행동하는성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는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를 기본으로 교수들의 혐오 발언이나 행정 문제 등을 지적하고 대응하는 일을 한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다양한 성소수자 관련 의제 사업을 하는 단체다. 노동권, 청소년 인권 운동 등을 하면서 다양한 연대 활동 주로 한다.”

- 세바시 강연에는 어떻게 섭외가 됐나.

“여가부와 양성평등 교육진흥원, 세바시가 공동으로 ‘청년 폭력 예방’이라는 테마의 기획을 진행 중이었다. 청년이 주제이다 보니 대학생을 섭외해보자 하는 과정에서 기획에 참여하던 지인이 연사로 나를 추천했다. 지난 9월 중순쯤 강연 초안을 내라고 해서 냈고 공모에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연 초안에 이미 성소수자 인권 관련 얘기를 한다고 명시를 했다.”

- 강연에 나서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서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은 자기를 전면에 못 내세운다. 나는 상대적으로 학교에서나 사회적으로 지지기반이 있고,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자원이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강연을 제안 받았다.”

- 세바시 측에서 강연 영상을 비공개한 것은 사전에 합의된 것인가

“강연 영상이 비공개된 사실을 접한 것은 지난 25일 영상이 내려가고 나서다. 영상이 이미 다 내려간 상태에서 세바시 대표 PD에게 메일을 받았다. ‘CBS가 이런 상황이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 양해를 구한다’는 일방적 통보였다. 동성애 반대 세력으로부터 항의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등의 사전 합의는 전혀 없었다.”

- 비공개가 결정된 사실을 알았을 때 강연자로써 심정이 어땠나.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인 걸 뻔히 알고 시작했다. 또 애초에 CBS가 기획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굴까 1차적으로 화가 났다.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저도 예상을 했다. 하지만 일종의 도움이나 협의를 요청할 수 있었음에도 협의가 없었던 것에 화가 났다. 또 세바시 측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많이 양보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CBS의 입장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바시 측이 지운 것은 성소수자의 인권이다. 강의가 있던 날, 그날 강연장에서 주변에 성소수자 지인이 있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그 자리엔 제가 불러서 온 성소수자 친구들도 있었다. 세바시 페이스북 댓글창에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당신들이 지운 건 내 인권’이라는 댓글도 있더라. 세바시가 오늘 자기들이 지운 것이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이었고 깊이 사과 드린다는 내용의 글을 또 하나 올렸다. 뒤늦은 반성과 성찰로 보인다. 솔직히 밉다. 강연 전 수차례 같이 인터뷰 원고도 수정하고 했었는데 의견 조율 없이 일이 이렇게 돼 아쉽다.”

- 당시 강연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성소수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의 존재를 너무 쉽게 부정하고 지워버린다. 이건 일종의 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에 대해 차이를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젠더 민감성이 필요하다. 젠더 민감성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로부터 시작되고, 그 차이를 내가 왜 차별로 인지하는지 고민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젠더 민감성을 가질 때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달라보일 것이다. 장애인도 생각하게 될 것이고, 성소수자의 존재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요지의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젠더 민감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정말 5분만 불편해져도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 세바시의 영상 비공개 소식이 알려진 뒤 손아람 작가를 비롯 다양한 연사들이 자신의 동영상도 비공개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너무 슬퍼서 페이스북에 ‘우리의 시대는 많이 달라졌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런데 변했더라.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본 것 같다. 세바시라는 영향이 있는 매체로부터 사건이 터져서 그런지 몰라도 혐오나 차별에 있어 이렇게 폭발적인 대응이 나온 건 처음 봤다. 그래서 세상이 많이 바꼈구나 생각을 했다. 다양성과 인권, 그리고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손아람 작가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강연 영상을 내려달라는 글을 쓴 뒤에서야 세바시 측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섭섭하지만 세바시가 오늘 다시 입장을 낸 것도 이들의 연대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성소수자들에게는 이게 그렇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너무 일상적이다. 늘 겪고 있으며, 부모에게 겪고 교수에게 겪고 친구들에게 겪는 일상적 차별과 혐오다. 그래서 지금 저는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 세바시 사태를 통해 대대적으로 터져나왔다고 본다. 많은 분들이 이 사태를 계기로 고민해보셨으면 좋겠다. 본인의 위치가 어떤 것이며 말이 가지는 중요성이 어떤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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