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노조-회사 간 단협체결이 '야합'으로 비판받는 이유

2017. 11. 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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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새노조에 통보없이 1노조-회사 일방 협상
새노조가 '최대노조' 됐는데도 의견 배제
'공정 대표 의무' 위반 논란

[한겨레]

전국언론노조 주최 KBS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고대영 사장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방송>(KBS)노사, 5년 만에 단체협약 극적 타결’.

한국방송은 23일 밤, 이 같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한국방송은 노조와 117개 중 12개 조항을 개정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힙니다. △통합뉴스룸국장 등 주요 국장 3인 중간평가△삭감된 지역국의 제작비 복원 등이 골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시작 후 석 달을 향해 가는 ‘한국방송 정상화’ 파업이 해결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발표였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이 합의는 한국방송 구성원의 ‘방송 정상화’ 파업을 가로막는 ‘편법’이라는 비판이 거셉니다. 노사가 합의했다는데, 이게 왜 문제인지 ‘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짚어보겠습니다.

■ KBS, 파업 철회한 1노조하고만 단협 체결

우선 회사가 어떤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는지가 이 사안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방송 내에는 여러 개의 노조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방송 노동조합(1노조),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에 대다수 조합원이 소속돼 있습니다. 이를 보통 한국방송 내 ‘양대노조’라고 합니다. 회사가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것은 1노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1노조 집행부는 이제껏 ‘방송 정상화’ 파업을 두고 새노조에 비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1노조는 지난 9월 초 총파업에 돌입했다가 같은 달 말 기자·피디·아나운서 직군 일부만 파업을 하는 지명파업으로 전환했습니다. 또 지난 10일에는 파업을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1노조는 파업 철회 이유로 고대영 사장이 “방송법 개정을 조건으로 사퇴하겠다”고 한 말을 ‘거취표명’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방송법 개정이 국회에서 언제 처리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그의 ‘조건부 사퇴’는 사실상 임기 유지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는데도 말이죠.

이 같은 1노조 집행부의 모습은 1노조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거셉니다. 1노조 소속 한 지역 지부장은 <한겨레>에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새노조의 방송 정상화를 가로막는 일“이라면서 “지부장 사퇴와 1노조 탈퇴를 고심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노조를 탈퇴한 뒤 새노조에 가입하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1노조는 이번 파업 과정에서 새노조에게 회사 내 최대노조의 지위를 내줬습니다. 새노조의 발표와 각 구성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재 새노조 조합원은 22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1800여명 수준인 1노조의 조합원을 파업 과정에서 앞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 ‘공정대표 의무’ 외면한 1노조

물론 1노조는 아직 다른 노조를 대표해 회사와 교섭하는 노조입니다. 한국방송은 2년에 한번 교섭 대표 노조를 정해왔습니다. 1노조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노조들을 대표해 회사와 협상을 하게 돼 있죠. 2년 전만 해도 1노조는 사내 최대노조였기에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섭 대표 노조라고 해서 마음대로 단체협약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법은 교섭 대표 노조가 합리적 이유 없이 이외의 노조나 노조원을 차별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공정대표 의무’라 합니다.

1노조의 협상은 공정대표 의무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번 단체협상 체결 과정에서 조합원 수가 가장 많아진 새노조에게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노조는 1노조와 회사의 협상 과정이 “일방적인 교섭 진행과 교섭 사실 비공개, 진행 상황 및 협약안의 은폐”였다고 지적합니다. 또 합의안도 사실상 6년 전 단체협약을 그대로 체결한 것이라며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힙니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변호사는 “단체협상안이 타결되는 과정에서 소수노조 조합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 공정대표 의무 위반소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24일 새노조는 “한국방송과 1노조의 단체협약이 무효”라는 가처분 소송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기했습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공정대표 의무 시정신청도 한 상황입니다. 또 새노조는 이날 1노조 대신 교섭 대표 노조가 되기 위한 절차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 KBS의 ‘불법’ 주장에도…‘방송 정상화’ 파업은 계속된다

한국방송 쪽은 이번 단체협약 타결 이후 진행될 새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 주장합니다. 노조가 파업을 벌인 목적이 달성됐다는 이유에섭니다. 그러나 단체협상 타결에도 새노조의 파업은 합법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올해 2월 1노조와 새노조는 △방송법 개정△공정방송 사수△단체협약 쟁취 등을 내걸고 총파업 찬반을 거쳐 하루 동안 총파업을 했습니다. 이후 파업을 잠정 중단한 뒤 지난 9월 재개한 것이 현재의 파업 국면인 것이죠. 기존에 내건 파업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김민아 노무사는 “현재는 당초 파업 목표 중 단체협약만 체결된 것이다. △방송법 개정△공정방송 사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새노조의 파업은 합법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금처럼 고 사장·이인호 이사장이 임기를 이어 가면, 새노조 파업은 계속 ‘합법’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파업의 당초 목표였던 ‘공정방송 사수’에 이사장·사장 퇴진이 포함된다는 해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한국방송은 지난 8월 말 파업의 진정한 목적을 이사장·사장 퇴진으로 볼 수 있다면, 불법에 해당하는지 ㄱ 법무법인에 법률 자문을 통해 물었습니다. ㄱ 법무법인은 “사장 및 이사장 퇴진은 노조의 입장에서 공정방송 사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된 쟁점”이라며 불법이 아니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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