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돋보기]전기요금이 묘하다

성문재 입력 2017. 11.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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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비 명세서 중 전기요금 관련 항목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우리나라 주택 중 75%는 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처럼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공동주택 형태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의 도움을 받아 공동주택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거나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꼭 알아둬야 할 상식은 물론 구조적인 문제점과 개선방안, 효율적인 관리방법 등을 살펴본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난방비 논란만큼이나 전기요금 체계에도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입주민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일반 단독주택이나 빌라 같은 곳은 한국전력(015760)이 직접 220V(볼트)의 전기를 공급합니다. 오래전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1층 현관에 전기 계량기가 있는 곳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상황이 다릅니다. 단지 내 특정 공간에 변전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전에서 2만2900V라는 고압의 전력을 해당 단지로 보내주고 단지 내 변전시설을 통해 220V로 낮춰 공급하고 있죠. 관리사무소에서는 이 설비를 관리하는 책임자도 별도로 고용합니다. 그리고 입주민들은 단지 내 일정 공간을 변전설비에 내줘야 하죠.

문제는 변전시설 구입 비용이나 관리책임자의 인건비, 공간 사용 기회비용 등을 모두 입주민들이 부담하고 있다는 겁니다. 앞서 한전이 직접 220V를 공급하는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공동주택에 사는 입주민들이 부담하고 있는 셈입니다. 전기요금도 한푼 안 깎아주면서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전에서 아파트 단지 내 변전설비 설치·유지관리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나라 법에서는 이부분에 대해 별도로 강제하거나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 제기는 이뤄졌죠.

한전은 결국 각계 전문가들과 고민 끝에 새로운 요금체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단일계약방법(단일요금제)입니다. 그런데 앞서 불거진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고요. 비용을 조금 깎아주는 식의 우회책입니다. 단지 전체 사용전력량을 아파트 세대수로 나눠 평균사용량을 산출한 다음에 구간별 요금을 적용해 사용료를 계산합니다. 여기서 구간별 요금이 기존 요금보다 조금 낮습니다. 그래서 전체 사용료는 조금 낮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요금체계에서는 공용사용량과 개별사용량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아파트 단지에서 1주일에 1번 야시장 행사를 한다고 칩시다. 공용전기 사용량이 늘어나겠죠? 그런데 공용과 개별사용량을 합쳐서 계산하기 때문에 실제 세대 내에서 사용한 전력량에 비해 요금이 많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전기차 충전기가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되고 보편화하면 공용사용량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연체·미납 시에도 문제가 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앞서 살던 사람이 전기요금을 미납했을 경우 새로 이사온 사람은 개별사용료에 대해서는 승계 의무가 없지만 공용사용량은 승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일요금제는 공용전기요금이라는 항목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개별사용량과 공용사용량을 정확히 나눠서 계산한 것이 아니어서 분쟁의 소지가 큽니다. 실제로 현재 소송까지 걸려있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조금 복잡하지만 여기까지 확인해보니 단일요금제보다는 종합계약방법(종합요금제)이 더 합리적입니다. 종합요금제는 세대별 사용분은 주택용 전력 저압전력요금을 적용하고, 공동설비 사용분은 일반용전력 고압 전력요금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요금체계로만 봤을 때 종합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이 마땅하죠.

그럼에도 현재 아파트 단지들의 80% 정도가 단일요금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일요금제가 조금 더 저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전에 따르면 공용사용량이 단지 전체 사용량의 25~30% 이하일 때는 단일요금제가 더 저렴합니다. 이 이유로 많은 단지들이 언뜻 보기에도 불합리한 단일요금제를 선택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공용사용량이 단지 전체 사용량의 25~30% 이상이면 종합요금제가 유리합니다.

결론적으로 묘한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 잡는 최선의 선택은 단일요금제가 아니라 종합요금제 자체를 개선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부과방식만 놓고 보면 종합요금제가 더 투명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문제 제기된 변전설비 관련 비용 부담은 한전이 종합요금제의 구간별 요금을 낮춰주는 걸로 절충할 수 있습니다. 단일요금제에서 구간별 요금을 낮췄듯이 말이죠. 그럼 종합요금제가 단일요금제보다 비쌀 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통신요금 체계처럼 선택요금제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1~2인 가구가 확대되고 있는 것을 감안해서 전기 사용량이 적은 세대는 낮은 기본사용량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집은 기본요금이 좀 비싸지더라도 누진제 부담 증가를 최소화할 수 있는 요금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성문재 (mjse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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