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관진 석방, 떼창으로 욕하자" 판사에게 또 적폐 공격

조백건 기자 2017. 11. 2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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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사법판단 '집단린치'.. 네티즌 이어 정치인·법조인도 합세]
"뭔가 있는 것 같다" 음모론 제기
"부역자 추가.. 재선충 같은 존재"
이재용·정유라 영장기각 때도 판사 신상 털고 유언비어 퍼뜨려

'김관진' '신광렬'. 지난 23일 오전부터 이 이름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신광렬 부장판사가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51부가 하루 전인 22일 오후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석방 결정을 내린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와 관련한 댓글, 인터넷 커뮤니티 글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대부분은 신 부장판사를 '적폐'로 매도하고 '처단하라'고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진보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엠엘비 파크' 등에는 신 부장판사를 향해 '적폐 부역자 하나 추가' '역사책에 적폐 표본으로 (이름) 석 자 새겨야' '길에서 누구한테 터졌으면' 같은 비방성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다음 아고라에도 '소나무 재선충 같은 존재' '적폐를 몰아내고 처단해야 한다'는 글들이 봇물을 이뤘다. 소셜 미디어에는 신 부장판사의 사진과 이력 등이 돌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신광렬 등 우병우(전 민정수석)의 판사들 교체 청원' '김관진을 석방시킨 법원을 개혁해달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부 인사도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비난 행렬에 올라탔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23일 "신광렬 판사는 (박근혜 청와대의) 우병우 전 수석과 TK(대구·경북) 동향, 연수원 동기로 같은 성향"이라고 공격한 데 이어, 같은 당 안민석 의원도 24일 페이스북에 '적폐 판사들을 향해 국민과 떼창으로 욕하고 싶다'고 썼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가카새끼 짬뽕'이란 패러디물을 올렸던 이정렬 전 판사는 이날 라디오에 나와 "(김 전 장관 석방을) 법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013년 창원지법 부장판사 시절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의 차량을 파손한 일로 경찰에 입건된 직후 사표를 냈었다.

올 들어 판사들이 인터넷과 정치권 등으로부터 집단 공격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가 '신상 털이'를 당하고 아들이 삼성 취업을 약속받았다는 거짓 유언비어에 시달렸다. 조 판사는 아들이 없다. 일부 네티즌은 서울중앙지법 영장계 전화번호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항의 전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6월 최순실씨 딸 정유라(21)씨 영장을 기각한 강부영 판사는 부부의 출신 학교, 고향, 성적표 등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지난 7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황병헌 판사는 '과거 라면을 훔친 도둑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적이 있다'는 가짜 뉴스를 정치인들이 소셜 미디어 등에 퍼 나르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이런 현상에 대해 법조계에선 "판사가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과 맞지 않는 결정을 내리면 일제히 달려들어 인신공격하고 매도하는 행태가 일상화되는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비난하는 수준이 도(度)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입맛에 안 맞는 판결을 했다고 해서 법관을 집단 공격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인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특히 국회의원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현 대한변협회장은 "판사 신상 털기 같은 감정적 대응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게 아니기 때문에 법원 결정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인터넷 등에서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이날 밤 신광렬 부장판사는 김관진 전 장관과 함께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던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의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을 결정했다. 김 전 장관을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어준 지 이틀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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