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과자 1만원어치 이상 사면 팬 사인회 응모기회 한 번 제공

남정훈 2017. 11. 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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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등골 브레이커'된 아이돌 마케팅/광고모델 기용.. 구매 부추겨/ 당첨확률 높이려 사재기까지/ 롱패딩 유행도.. 부모들 한숨/"10대 팬심 악용한 상술" 비판

서울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46)씨는 최근 중학생 딸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광고 모델인 과자를 사야한다며 자주 용돈을 달라고 하기 때문. 김씨의 딸이 과자를 사는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니다. 바로 팬 사인회 참가 응모를 위해서다. 이 과자 제조사인 A제과는 최근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 그룹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팬 사인회를 활용하고 있다. 과자 1만원 이상을 사면 팬 사인회 응모 기회 1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김씨는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려면 더 사야한다며 거의 매일 사들이고 있다. 지난 9일부터 이벤트가 시작해 이미 15만원 이상 썼다. 이벤트 마감이 29일까지라는 데 얼마를 더 써야하나 싶다”면서 “이 이벤트로 고작 330명을 뽑는다는데 이렇게 돈을 쓰고도 안 뽑히면 허탈할 것 같다. 아이돌 마케팅이 너무 과한 듯하다”고 푸념했다.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부러뜨릴 정도로 큰 경제적 부담을 안기는 상품을 뜻하는 ‘등골 브레이커’. 이 신조어는 2011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패딩 점퍼가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나온 말이다. 이제는 10대의 소비욕을 부추기는 ‘아이돌 마케팅’이 새로운 등골 브레이커로 등극하는 모양새다. 의류, 식료품, 화장품, 교복 등 10대들의 구매력이 큰 분야 기업들은 앞 다투어 아이돌 그룹을 향한 10대들의 팬심과 경쟁 심리를 부추겨 매출 증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10대 자녀들의 ‘덕질’ 때문에 학부모들은 한숨만 짓고 있다.

B음료회사는 커피제품 광고모델로 아이돌 그룹을 기용한 뒤 멤버 11명의 얼굴 스티커를 다 모으면 팬 사인회 응모 기회 1회를 부여하고 있다. 커피가 2000원이니 팬 사인회 응모권 1개를 모으려면 2만2000원이 든다. 10개를 모으려면 22만원, 100개를 모으려면 220만원이 든다는 얘기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OOO 처리법’ 등 팬 사인회 응모를 위해 사재기한 음료나 과자를 처리하는 방법을 서로 추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팬 이모(18)양은 “처음에는 과자나 음료수를 먹기도 했지만, 이제는 응모권 스티커만 취하고 그냥 버리기도 한다”면서 “친구들과 함께 아이돌이 광고한 과자나 음료수를 사 모으기 위해 ‘원정’을 떠나기도 한다. 사고 싶어도 이미 품절인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등골 브레이커의 원조격인 패딩에서도 아이돌 마케팅은 활용되고 있다. 최근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이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도 아이돌 그룹들이 공항패션 등으로 자주 입고, 광고 모델로 기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아이돌 브로마이드로 10대 청소년들의 구매욕을 상승시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브로마이드를 샀더니 패딩이 딸려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고교 1학년 딸을 둔 박모(48)씨도 “딸 아이가 반 전체의 2/3가 롱패딩을 가지고 있다면서 사달라고 졸라서 결국 사줬다”면서 “지난해에도 패딩을 샀었는데 ‘왜 사느냐’고 물으니 아이돌 그룹이 자주 입고 나오는 롱패딩이 대세라고 답하더라. 패딩업체들이 10대들의 팬심을 교묘히 이용하는 통에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일부에서는 기업들의 ‘팬심 마케팅’이 과소비를 조장하는 지나친 상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수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 간사는 “아직 소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은 미성년자들은 그저 팬심에 이끌려 액수에 상관없이 소비한다. 팬심 마케팅은 순수한 미성년자들의 마음을 악용한는 상술”이라면서 “지난 2015년 대형기획사가 판매하는 ‘아이돌 굿즈’가 품질에 비해 지나치게 고액이란 지적이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유권해석을 받은 결과 실정법 위반은 아니었다. 그러나 팬심을 기만하는 지나친 마케팅은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부모들이 아이돌 마케팅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도 많이 들어온다. 사주지 않자니 자녀와 갈등을 겪게 되고, 사주자니 지나친 가격이 부담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도 아이돌을 앞세운 상술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윤경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사무총장도 “청소년들은 팬심 하나만으로 가격을 재지 않고 물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이러한 팬심을 활용해 과소비를 조장할 수 있는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분명 문제다. 기업들이 먼저 자성적으로 이런 마케팅을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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