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유골 발견 알리지 말라"는 유족 부탁 따랐다? 해수부 변명의 모순

김형규 기자 2017. 11. 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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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철조 해수부 세월호현장수습본부장 / 김영민 기자

세월호 인양 후 유해가 수습된 단원고 조은화·허다윤양 가족들이 “앞으로 작은 뼈가 더 나와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해양수산부에 부탁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세월호 유골 발견 은폐’ 논란이 더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선 ‘가족들 부탁을 들어준 건데 뭐가 문제냐’며 은폐를 지시한 해수부 관료들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골 발견 사실을 숨겨 보직 해임된 해수부 현장수습본부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은 정말 잘못이 없을까.

24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조은화·허다윤양 가족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두 가족이 ‘뼈 발견 비공개’를 요청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이미 유해를 수습해 지난 9월 장례를 다 치른 상황에서 작은 뼈들이 추가로 발견될 때마다 중계방송 하듯이 언론에 알리지 말고 가족들이 조용히 수습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그리고 아직 뼈 한 조각 찾지 못한 나머지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의 심정을 배려하자는 것이다.

이런 부탁은 앞으로도 세월호에서 추가로 발견될 뼈들이 은화·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전제는 지금까지 수색 상황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가설이지만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3년 7개월 넘게 기다려온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은화·다윤양 가족은 결코 나머지 5명의 미수습자 가족에까지 뼈 발견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이철조 본부장과 김현태 부본부장은 17일 유골 발견 후 사흘 동안 누구에게도 유골 발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정상적인 업무 절차를 무시한 월권이고 독단이었다. 20일 뒤늦은 장관 보고 뒤 질책을 받고 ‘절차대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따르지 않고 뭉갰다.

이들의 일탈 행위가 은화·다윤양 가족의 부탁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과거 사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달 10일과 11일 목포신항 수색현장에서 유골이 연달아 발견됐다. 당시에도 은화·다윤양 가족의 부탁은 유효했고 발견된 뼈가 은화·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은 같았다. 그러나 대응은 전혀 달랐다.

당시 해수부는 현장 매뉴얼대로 즉시 선체조사위 미수습자 담당팀에 유골 발견 사실을 전파했다. 국방부, 해경, 국과수 등 관계기관의 실무자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에도 같은 내용이 공지됐다. 은화·다윤양 가족은 물론 5명의 미수습자 가족에게도 곧바로 발견 사실을 알렸다. 이후 DNA 검사 결과 유골은 각각 은화·다윤양의 것으로 확인됐다. 수습 현장의 정상적인 업무 절차를 지키면서도 은화·다윤양 가족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이때와 지난 17일 유골 발견에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다음날 5명 미수습자 가족들의 장례식이 예정돼 있었다는 것 뿐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6일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을 가슴에 묻겠다”고 밝혔다. 여론 악화에 눈물을 머금고 수색 중단을 결심한 것이다.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장례식만 끝나면 해수부는 미수습자 수색을 공식 종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유골 은폐 사실이 드러나기 직전인 22일 오후 3시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수색 공식 종료 여부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미수습자 가족들도 다 장례 치르고 (목포신항을) 떠나셨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조 본부장은 23일 해수부 진상조사 결과 발표 자리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장례식을 앞두고 극도로 심리 상태가 불안정했는데, 어떤 충격을 가중시키는 그런 역효과를 예상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유골 발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알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미수습자 가족들은 은폐 사실이 알려진 뒤 “분통 터지고 화가 난다. 알았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철조 본부장 등 해수부 관료들은 시종일관 미수습자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해 사실을 숨긴 것처럼 말했지만 드러난 정황을 놓고 보면 유골 발견 공개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충격을 입을 쪽은 해수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사 이후 지금까지 팽목항과 동거차도, 목포신항 등 현장을 누비며 인터넷 방송으로 세월호 소식을 전해온 유족 문종택씨의 말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나면 그동안 인양과 수색작업으로 골치 아팠던 해수부가 제일 반길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런 판국에 뼈가 나왔다 하면 미수습자 가족들이 결정을 번복할 수도 있고 장례식이 연기될 수도 있는데 해수부가 어떻게 판단할 지는 뻔한 거 아니에요?”

경향신문이 유골 발견 은폐 사실을 처음 보도한 지난 22일 해수부는 오후 5시쯤 비공식 채널을 통한 첫 해명에서 “발견된 뼈가 사람뼈인지 동물뼈인지 확인하느라 닷새가 걸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17일 발견 당시 이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사람뼈임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재차 지적하자 2시간여 뒤 “발견된 뼈는 은화·다윤양의 것일 가능성이 높고, 은화·다윤양 가족들의 비공개 부탁이 있어서 그랬다”고 말을 바꿨다. 두번째 해명은 은화·다윤양 가족의 인터뷰를 통해 일부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해수부 내 세월호 담당 공무원들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미수습자 가족과 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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