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고유종 다람쥐, 프랑스에서 천덕꾸러기 된 까닭

입력 2017. 11. 24. 15:27 수정 2017. 11. 2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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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빙하기 고립 독립 종으로 진화, 남한 내에도 3개 집단 분화
1980년대까지 수백만 마리 수출, 라임병 숙주로 골칫거리

[한겨레]

설악산에서 촬영한 다람쥐. 한반도 고유종일 가능성이 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다람쥐가 바쁜 철이다. 숲 바닥에 떨어진 밤톨이나 도토리, 씨앗 등을 볼주머니에 가득 채운 뒤 땅속 깊숙이 파 만든 저장 창고에 들락거린다. 기온이 떨어지고 눈이 쌓이는 다음 달 중순께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람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비교적 흔하게 만나는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동물에 관해 잘 모른다. 한반도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다람쥐가 사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 다람쥐는 애완용으로 수백만 마리를 수출했고, 그곳에서 최근 라임병을 옮기는 침입종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밝힌 다람쥐의 기원과 생태를 알아본다.

다람쥐는 한반도 고유종

다람쥐의 자생지(짙은 부분)와 도입 지역(옅은 부분). 출처: 조영석 박사(2014)

다람쥐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와 중국 내륙,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유럽의 볼가 강부터 캄차카 북쪽까지 널리 분포한다. 이처럼 방대한 분포지역의 남쪽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한반도의 다람쥐는 형태나 습성 등에서 독특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최근 수행된 일련의 분자 유전학 연구는 한반도 다람쥐가 별개의 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가리킨다. 흔한 다람쥐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반도 고유종이라는 얘기다.

이무영 서울대 수의대 한국 야생동물 유전자원 은행 연구원(현 국립생물자원관 전문위원) 등 한국과 러시아 연구자들은 2008년 과학저널 ‘분자와 세포’에 실린 논문에서 한·중·러 3국 다람쥐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처음으로 한반도 다람쥐의 염기서열 변이가 다른 것보다 11.3%나 다른 것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미토콘드리아 사이토크롬 비 유전자에서 이런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은 한반도 다람쥐가 새로운 종일 수 있음을 가리킨다”며 “신종 확인을 위해서는 핵 유전자와 형태적 분석 등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후 고흥선 충북대 교수(현 명예교수) 등은 2010년 핵 디엔에이(DNA) 분석을 통해 한반도 다람쥐가 별도 종일 가능성을 뒷받침했고, 러시아 학자 등은 두개골 등 형태학적인 차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북한 다람쥐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이 큰 한계였다.

먹이를 찾고 있는 다람쥐. 강원도 홍천에서 촬영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총련 계열의 일본 도쿄 조선대학교의 정종률 교수가 돌파구를 열어줬다. 북한 다람쥐의 표본을 확보해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에 전달한 것이다. 이 교수팀은 교육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북유라시아 다람쥐과 동물 3종의 비교계통지리’ 보고서(2013)에서 “국내 다람쥐 개체군의 유전적 구조는 인접 국가 중국, 일본, 몽골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며 “한반도에 서식하는 다람쥐 일부는 고유종임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대륙 다람쥐와 한반도 다람쥐의 분포 경계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니었다. 이 교수는 “애초 추정과 달리 경계선은 더 아래 양강도와 자강도 선으로 내려왔다”며 “결과적으로 북한에는 대륙형과 한반도형 두 종이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반도 고유종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려면 더 많은 북한 쪽 표본 조사가 필요하고, 대륙형과 한반도형 사이에 잡종이 이뤄졌는지 등 추가로 분석해야 할 일이 남은 상태다.

이처럼 한반도의 다람쥐가 다른 종이 된 것은 빙하기 영향인 것으로 과학자들은 본다. 빙하기 때 한반도와 중국 내륙, 극동 러시아 등의 피난처에 고립된 다람쥐가 유전적으로 분화한 뒤 간빙기 때 서식지를 확대한 뒤에도 한반도에서는 그 차이를 유지해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무영 박사팀의 연구에서 그런 분화 시기는 100만∼300만 년 전인 빙하기로 밝혀졌고, 남한 내에 적어도 2곳의 피난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무엇보다 이 연구에서는 남한 안에도 지역적으로 북부·중부·남부 등 3곳에서 다람쥐의 유전적 형태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실질적인 의미가 크다. 이들 지역 다람쥐의 겉모습은 같아도 오랫동안 격리돼 유전적으로는 다른 진화의 경로를 밟은 독특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다람쥐를 함부로 포획해 판매하거나 놓아주면 안 된다”며 “예컨대 강원도 다람쥐를 잡아 부산에 풀어놓으면 유전적으로 분리된 두 집단이 뒤섞이는 사태가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유럽 간 한국 다람쥐

동작과 모습이 귀엽고 깜찍한 다람쥐는 1960년대부터 애완동물로 많은 개체가 수출됐다. 조홍섭 기자

한반도 다람쥐의 생물학적 가치가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다람쥐는 현재 환경부의 포획·채취 금지 야생동물로 지정돼 있지만 1980년대까지도 유력한 수출품이었다. 1962년 강원도 산 다람쥐 655마리가 마리당 1달러에 애완동물로 일본에 수출되기 시작했고, 1970년엔 30만 마리가 수출됐다. 남획이 문제가 되자 1971년 정부는 다람쥐 수출량을 한 해 10만 마리로 제한하고 수출용으로만 포획을 허용하자, 다람쥐의 인공사육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결국 산림청은 1991년 다람쥐 포획을 전면 금지했다.

다람쥐를 장기간 대규모로 수출한 나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다람쥐가 너무 늘어 문제가 되고 있다. 다람쥐는 유럽의 100대 침입종 가운데 하나이다. 귀여운 애완동물로 수입한 다람쥐를 기르다가 싫증이 나 놓아주거나 일부러 공원에 풀어놓거나 탈출한 개체가 야생에 자리 잡았다. 유럽연합의 외래종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유럽 22곳에 다람쥐가 야생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11곳이 프랑스에 있고 나머지는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도시 근교 숲과 도시공원에서 쉽게 눈에 띈다.

다람쥐를 외래종으로 안내한 벨기에 정부의 누리집. 국토의 상당 부분에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파리를 비롯해 북부에만 10만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한다. 벨기에 브뤼셀에는 1980년 17마리를 공원에 풀어놓았는데 20년 만에 2만 마리로 불었다. 다람쥐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라임병을 일으키는 보렐리아 박테리아를 진드기가 옮기는데, 다람쥐가 주요 숙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마우드 마르소 프랑스 국립 농학연구소 연구원 등이 과학저널 ‘플로스 원’ 2013년 1월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파리 근교의 다람쥐는 전통적으로 진드기의 주요 숙주였던 들쥐보다 진드기 감염률이 8.5배나 높았다.

프랑스 등 유럽에 확산하는 다람쥐는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산으로 드러났다. 베노아 피사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생물학자 등이 2013년 과학저널 ‘생물학적 침입’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프랑스의 다람쥐 자생지 11곳 가운데 5곳에서 포획한 다람쥐의 유전자는 모두 한국산과 같았다. 연구자들은 유럽에서 다람쥐가 성공적으로 퍼진 이유가 널리 분포해 적응력이 뛰어난 종이기 때문으로 추정했지만 조사해 보니 분포지의 극히 한 지역인 한반도로 드러난 데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워낙 많은 개체가 들어왔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다람쥐는 도토리보다 밤을 좋아한다

친근하지만 잘 몰랐던 다람쥐의 생태

지하 1m 바닥 낙엽 깔고 차곡차곡 쌓아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는 다람쥐. 다람쥐는 밤과 도토리 등 큰 열매뿐 아니라 작은 씨앗도 다량 거두어 저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겨울잠을 앞두고 다람쥐는 도토리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가 많은 숲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조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다람쥐는 도토리보다 밤을 좋아한다.

조영석 국립생물자원관 박사가 강원도 홍천에서 직접 조사한 결과 다람쥐 굴에서 나온 열매의 비율은 무게로 따져 밤이 77%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신갈나무 도토리가 12.1%, 벌노랑이 씨앗 2.1% 등이었다. 조 박사는 “숲에 압도적으로 신갈나무가 많고 드문드문 야생 밤나무가 있는 곳이어서 도토리가 많을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며 “아마도 밤 쪽이 열량이 높아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람쥐는 나무를 잘 타지만 잠은 땅속에 판 굴에서 잔다. 겨울잠을 자는 곳도 땅속이다. 조 박사가 조사한 결과 다람쥐의 굴은 깊이가 1m 가까웠고 잠자리와 화장실, 먹이창고로 나뉘었으며 터널로 연결돼 있었다.

흔히 다람쥐가 먹이를 감춘 곳을 잊어버려 결과적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조 박사는 “그런 속설이 있지만 다람쥐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열매를 여기저기 파묻는 청설모와 달리 다람쥐는 한 곳에, 그곳도 깊숙히 저장하는데, 싹이 트기에는 너무 깊다는 것이다.

다람쥐 굴의 구조. N은 둥지, L은 화장실, C는 먹이 창고이다. 출처: 조영석 박사(2014)

화전민들이 다람쥐의 저장고를 찾아내 숨겨놓은 열매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과연 저장한 열매의 양은 얼마나 될까. 조 박사는 “저장한 열매가 상당히 양이 많다. 바닥에 낙엽을 깔고 꼼꼼히 쌓아놓았는데 큰 열매뿐 아니라 작은 씨앗도 다양하게 쌓여 한 되 이상의 분량이었다”라고 말했다.

중국 다람쥐는 열매를 저장할 때 싹이 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갉아내는 등 사전 처리를 한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 다람쥐도 그런 행동을 할까. 조 박사는 “깍지를 뗀 도토리와 밤을 쌓아 놓았지만 전처리를 하지는 않았다”며 “여러 지역에서 더 많은 생태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야생동물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나라에 다람쥐 연구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번 현장연구에서 홍천 지역의 다람쥐는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겨울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람쥐의 겨울잠은 신진대사를 거의 중단하는 박쥐 등과 달리 기온이 올라가면 금세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하는 ‘가짜 겨울잠’이라고 조 박사는 말했다. 저장한 열매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식량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다람쥐에 관한 기초연구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내년에 시민참여형 다람쥐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다람쥐가 전국 어디에나 분포하기 때문에 등산객 등이 휴대전화 앱에 다람쥐를 관찰한 시간과 장소 등을 입력하도록 하면 전국 차원의 ‘다람쥐 빅데이터’가 구축될 터이다. 이를 분석하면 지역마다 다람쥐가 어떤 생태계에서 언제 활동을 시작하는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ee, MY,Lissovsky AA,Park SK,et al. Mitochondrial Cytochrome b Sequence Variations and Population Structure of Siberian Chipmunk (Tamias sibiricus) in Northeastern Asia and Population Substructure in South Korea[J]. MOLECULES AND CELLS, 2008,26(6):566-575.

B. Pisanu et al, Narrow phylogeographic origin of five introduced populations of the Siberian chipmunk Tamias (Eutamias) sibiricus (Laxmann, 1769) (Rodentia: Sciuridae) established in France, Biol Invasions (2013) 15:1201?1207. DOI 10.1007/s10530-012-0375-x

Yeong-Seok Jo & Hong Seomun & John T. Baccus, Habitat and food utilization of the Siberian chipmunk, Tamias

sibiricus, in Korea, Acta Theriol(2014). DOI 10.1007/s13364-014-0198-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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