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남편, 첫사랑에게 정신적으로 지배 당했다"

부산=이은지 중앙일보 기자 입력 2017. 11. 2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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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 내막.."서울서 취업하려다 부산 내려오라는 지시 따라"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지난 8월 노르웨이에서 검거됐지만 사건이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사건이 워낙 미스터리한 데다 사건 발생 당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집한 증거가 거의 없어 단서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은 2015년 11월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 최아무개(35)씨와 남편 전아무개씨가 2016년 5월 자택인 부산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발생했다. 연극배우인 아내 최씨는 2016년 5월27일 오후 10시쯤, 남편 전씨는 5시간 뒤인 28일 오전 3시쯤 귀가하는 모습이 아파트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이후 전씨 부부가 아파트를 나가는 모습은 CCTV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전씨 가족의 실종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사건 발생 석 달 뒤인 2016년 8월 전씨의 첫사랑인 30대 여성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노르웨이에 있던 A씨는 전씨 부부가 실종되기 직전인 5월 중순 한국으로 입국했고, 전씨 부부가 사라진 뒤 6월초 부랴부랴 노르웨이로 출국하는 등 의심 가는 정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 pixabay·시사저널 미술팀

 

“부부 실종 후 살아 있다는 흔적 찾지 못해”

부산 남부경찰서는 A씨가 전씨를 정신적으로 지배해 왔다고 보고 있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전씨가 서울에서 취업하려고 하자 부산에 있던 A씨가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고 전씨는 이를 따랐다”며 “이후 전씨가 부산에서 연어 참치집을 운영한 것도 당시 노르웨이에 있던 A씨가 노르웨이산 연어를 팔아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전씨가 A씨에게 정신적으로 지배당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씨가 아내 최씨의 실종 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항한 흔적 없이 아내 최씨를 자택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 이는 남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또 실종 다음 날 아내의 동료가 전화하자 남편 전씨가 대신 받아 “아내가 당분간 출근하지 못한다”고 말한 뒤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손수호 변호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마치 실종을 예고하는 듯이 남편이 ‘내일 못 가요’라고 말한 것이 희한하다”며 “아내는 실종되자마자 연락이 완전히 끊겼지만, 남편은 통화도 하고 문자를 보낸 흔적이 남아 있다”며 남편이 사건을 주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찰은 사건 초기에는 남편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지만 남편 역시 피해자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전씨 부부 둘 다 실종 이후 살아 있다는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며 “A씨가 사는 노르웨이에서도 전씨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밀항하지 않고서는 둘 다 살아 있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아내 최씨는 실종 당시 임신 상태였기 때문에 살아 있다면 최소한 의료기록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런 흔적도 전혀 없는 상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부산 신혼부부 실종 사건 © 사진=SBS 캡쳐

 

“유일한 용의자 A씨 국내 송환되기만 기다려”

경찰은 이번 실종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A씨를 지목한 것과 관련해 5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첫째 전씨가 최씨와 결혼하려 하자 A씨가 최씨를 괴롭혀 왔다는 점, 둘째 전씨 부부가 사라지기 직전 한국에 입국한 A씨는 전씨 부부가 사라진 직후인 6월초 출국 예정일을 2주 앞당겨 노르웨이로 출국한 점, 셋째 A씨가 한국에 입국하기 직전 친정어머니에게 “아프리카 여행을 가겠다”며 현금 1000만원을 송금해 달라고 한 뒤 아프리카가 아닌 한국으로 입국한 점, 넷째 한국에 머무는 한 달간 신용카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현금만 사용한 점, 다섯째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A씨가 노르웨이 현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선 점 등이다.

게다가 전씨 부부는 예금통장에 3000만원의 현금이 입금돼 있고, 다른 채무관계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전씨 부부 지인들을 탐문한 결과, A씨 외에는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전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A씨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떳떳했다면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실종 당시 아내 최씨는 임신한 상태였고, 전씨 부부 사이에 갈등 요인은 A씨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A씨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종 사건 발생 초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다. 당시 부산 남부경찰서 형사과와 여성청소년과가 동시에 수사를 한 탓에 책임지고 수사를 지휘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될 렌터카 업체와 전씨 부부의 마지막 발신지 주변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인 2명이 CCTV에 찍히지 않고 아파트를 빠져나오려면 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 부산에 소재를 둔 렌터카 업체만 조사를 했다”며 “전국으로 확대해 조사했다면 당시 아파트를 드나들었던 차량 가운데 전씨 부부가 이동할 때 사용했던 렌터카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전씨의 휴대전화는 2015년 6월2일 오전 8시 부산 기장군에서 꺼졌고, 최씨의 휴대전화는 이날 오후 8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인근에서 꺼졌다”며 “마지막 발신지 주변을 샅샅이 수사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A씨가 국내 송환되면 A씨가 지난해 5월 한국에 입국한 이유, 한국에서 머문 한 달 동안의 행적, 예정일을 2주일이나 앞당겨 노르웨이로 출국한 정황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할 방침이다. A씨가 전씨 부부 실종 사건 전후의 알리바이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할 때 이 점을 파고들어 범죄 혐의를 밝혀낼 계획이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실종 당시 두 달간 탐문조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수집한 증거와 의심 가는 정황들이 있다”며 “A씨에게 이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면 사건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일한 용의자인 A씨가 뒤늦게 검거되면서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아내 최씨와 최씨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사건의 전말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며 “A씨가 국내로 송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노르웨이 현지에서 신병 인도 재판을 받고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A씨는 국내로 송환되는 대로 구속 수사를 받게 된다. 

부산=이은지 중앙일보 기자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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